총의 시대에 칼싸움 영화가 아직까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잡담.
구로사와 아키라가 <요짐보>에서 서부극을 칼싸움으로 번안해 버린 뒤로, 총격전을 가지고 액션영화를 만든다는 행위는 대충 다음과 같은 질문에 부딪히게 되기 마련이다. (a) 총싸움을 더 '영화적'으로 그리면서, (b) '주인공의 강함을 (설득력 있게)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가? 당연히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1) '영화적'이란 무엇인가?
(2) 총격전에서 '영화적'으로 주인공의 강함을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3) 총싸움을 그리면서 '주인공의 강함을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왜 아직도 총잡이에게 자리를 내준 지 오래인 칼잡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영화가 만들어지는가?
여기서 '영화적'이라는 건 "스크린 상에서 더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게 하는 것" 정도로 정의하도록 하고, 우선 (2)번과 (3)번 질문에 집중해 보자. 총격전에서 '영화적'으로 주인공의 강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세르지오 레오네의 달러 3부작 -그러니까,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을 포함한 수많은 서부극의 총격전 장면이 영화사에 남아 있는 상황 속에서 (2)번의 질문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2)번의 질문에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라고 답하고 (a)와 (b)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가기에는 (3)의 질문이 발목을 잡는다. 대체 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인 칼잡이들이 아직도 총잡이를 대신하여 액션의 주체로 등장하는 액션영화들이 존재하는가?
물론 대부분의 칼잡이들이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시대극이기 때문에 총을 등장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시대극이 아닌 영화에서도, 억지로 갖은 변명을 붙여주며 칼싸움 장면을 넣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듄>의 '일정 속도 이상의 투사체는 모두 반사하기에 칼로 상대를 찔러야 하는 방어막'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포스와 광선검, 그리고 <하이랜더> 시리즈의 목이 잘려야 죽는 불멸자들이란 '칼싸움 장면'을 위한 설정은 왜 등장했는가. 그리고 그런 설정이 존재하지 않은 <존 윅> 같은 작품에서도 칼싸움 장면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은 두 요소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총이라는 무기의 특징"이며 다른 하나는 "'영화적'으로 주인공의 강함을 더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일단 총이라는 무기는 활이나 칼, 창 등 기타 냉병기에 비해 다루기가 쉬운 무기이다. 물론 이것이 총이라는 도구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개인의 숙련도가 완전히 배제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올림픽 경기 종목에 사격이 있는 이유가 뭐겠나. 그러나 칼이나 창에 비해, 총이라는 도구가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건장한 성인이라면 모두가'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며, 앞으로도 그런 경향으로 개량되고 만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는 영상화될 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낳는다. 칼싸움에 비해서, 총싸움은 주인공의 강함을 더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싸움에서는 '극적 진행을 위해 주인공보다 수준이 떨어져야 하는 적'들이 어째서 수준이 떨어지는지를 묘사하기가 쉽지가 않다.
https://www.youtube.com/watch?v=HkDSS-MlB6M
<요짐보>를 살펴보자.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다른 칼잡이들을 마음대로 도륙 내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칼잡이들 대다수가 (검술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어디서 굴러들어 온 어중이떠중이기 때문이다. 숙련된 살인 기술자인 주인공은 영화 도입부에서,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뭐라도 된 것처럼 구는 이 어중이떠중이들에게 훈련된 살인 기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스크린 상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칼을 휘두르는 주인공", "순식간에 죽거나, 팔이 잘리는 어중이떠중이들", "거기에 겁을 먹고 대응하지 못한 채 도망치는 이들"의 모습으로 구현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rsO91mfBw
반면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의 도입부를 보자. 여기서 주인공의 숙련된 살인 기술은 주인공이 4명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적들보다 먼저 빠르게 총을 뽑은 주인공"이 "다수의 적을 순식간에 맞추는 것"으로 요약된다. 물론 이 또한 인상적인 장면이다. 블리자드의 게임 <오버워치>를 비롯한 수많은 대중매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 장면임이 틀림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도입부부터 결말의 대결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변주되며 반복되는 <요짐보>의 칼싸움 장면과의 달리, <황야의 무법자>의 도입부의 장면은 있는 그대로 반복되지 못한다. 이후의 총격전에서 주인공의 강함을 묘사하는 방식은 적들보다 "먼저 겨누고 먼저 쏜다"는 심심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결말의 대결에서 주인공이 이기는 이유는 그의 총싸움 실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옷 속에 철판을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싸움에 총을 들고 온 악당을 단검을 던져 처리하기는 하지만) 결말까지 칼싸움 실력에 의존하던 <요짐보>의 주인공에 비하면, 뭔가가 부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는 냉병기와 구별되는 총의 또 다른 특성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총은 사용자가 타자를 죽일 때, 되도록이면 사용자가 움직이지 말 것을 요구한다. 군대에서 총을 쏘는 걸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는 크게 3단계를 거친다. (가). 안정된 자세를 잡는다. (나). 호흡을 멈춘다. (다). 방아쇠를 최대한 천천히 당긴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는 모두 총기가 발사된 뒤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숙련된 총잡이일수록, 타자를 살해할 때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를 고려했을 때 심각한 문제로 작용한다. 위에서 우리는 '영화적'이라는 표현을 "스크린 상에서 더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게 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스크린상에서 인상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어떤 장면을 '더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움직임'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그리고 이야기 전개상으로 변화를 유발하는' 움직임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있다.
흔히 '인상적인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때 쓰는 단어인 '극적인 장면' 또는 '극적인 것'을, 홍재범은 논문 <'극적'인 것'의 생성 맥락에 대한 고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빌려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극의 흐름에 따라 형성된 인물의 파토스가 행위를 통해 표출되는 것.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극 중에서 쌓인 인물들의 감정이 행위를 통해 '움직임' 또는 그로 인한 '변화'로 표출되는 것이 '극적인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을 보라. 거기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ㄱ) '무지'에서 '지'의 상태로 변화를 겪는다. 이는 (ㄴ) 당연하게도 여기에 수반되는 감정적 충격을 낳고 이는 최종적으로 (ㄷ) '자신의 눈알 찌르기'라는 행위로 표출된다. 이처럼 '극적인 것'은 인물의 변화가 '행위'를 통해 표출되는 것 정도로 정의가 가능하며, 그 과정에서 행위는 (그 주체가 인물이든, 배경이든 간에) 필연적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대로 총기라는 도구의 특성상 '숙련된' 총잡이는, 액션의 과정에서 움직임이-행위가 없어야 한다. '숙련된' 칼잡이가 '이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것과 다르게 말이다. 결국 숙련된 칼잡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칼싸움 영화가 숙련된 총잡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총잡이 영화보다 더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기가 쉬운 것이다. 특히 '이상적인 움직임-그것이 화려한 검무이건, 절제된 움직임이건 간에'-은 섬세한 연기로 표현이 가능한 영역임에 반해, 후자는 그냥 연기의 부제로, 즉 총을 들고 있는 인간의 이미지로 흘러갈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요짐보>와 <황야의 무법자>를 비교해 봤을 때, 총싸움이 칼싸움보다 인상적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은 명확해진다. <요짐보> 도입부의 칼싸움 장면에서, 관객은 주인공의 표정과, 칼의 움직임, 칼에 맞는 이들의 표정과 반응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황야의 무법자> 도입부에서, 우리는 총이 발사되는 순간, 주인공의 표정을 보지 못한다. 그 대신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표적을 찾아 빠르게 움직이는 손과, 그 손에 들린 총, 총을 맞고 쓰러지는 피사체들의 모습이다. 즉, <황야의 무법자>의 도입부에서, 우리는 발사 전과, 발사 후의 주인공의 얼굴은 볼 수 있지만, 발사 중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보지 못한다. 어째서일까? 결국 (이상적인) 총싸움에서는 움직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황야의 무법자>는 (z)발사 순간에 프래임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손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y)같은 프레임 속에서 주인공의 손에 비해 원경에 배치되어, 손과 비슷한 크기로 보이는 적들의 모습으로 인해, (x)결과적으로 거대한 손의 움직임에 의해 쓰러지는 인간들의 모습이 하나의 프레임에서 동시에 그려지는 기교를 통해, 인상적인 움직임을, 극적인 순간을 보여줘야 한다.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포기하고서까지 말이다.
결국 총싸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총이라는 도구의 특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칼싸움 영화에 비해 '설득력-즉 어째서 악당은 죽었는데 주인공은 살아있는가의 문제'나 '인상적인 장면'의 측면에서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총싸움 장면을 간직한 영화들이 종종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지상 최대의 작전>과도 같은 '액션영화'가 아닌 '전쟁영화'에 속한다는 사실은 이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명확한 인과의 부제야말로 전쟁의 속성이며,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기 힘들다는 사실은 '집단의 군무' 등을 통한 스펙터클의 유발로 보충 가능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