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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룡 Apr 01. 2024

광주의 캠브리지

- 이수정 교수님의 벚꽃 만찬 후기

    평온한 학교 생활을 하다 이렇게 차려입고 만나니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긴장이 되더군요. 스무 살이 오래 지나 희끗희끗하게만 떠올랐는데, 후배들을 보니 그때 겪었던 많은 선물들이 기억났습니다. 솔직히, 모두가 반쯤만 눈 뜨고 어찌어찌 살아가는 인생에서 무슨 조언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광주에 오기 위해 처음 KTX를 탔던, 그 2시간 30분이 너무도 길어 무척 따분해했던, 스무 살이 어떻게 스물다섯이 되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 아마, 광주와 서울을 오가는 여정을 족히 100번은 견뎌야 했을 텐데요. 다만, 주위 사람들의 또, 환경의 많은 선물 덕에 이렇게 건강하고 밝게 나이 들 수 있었겠나니 추측할 따름입니다. 우연히, 신관 해동학술정보실에서 발견한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과 또 우연히, 귓동냥으로 들은 창글 수업에 한 자리가 남았다는 소식, 또 우연히, 뻔뻔하게도 시를 모아 교수님께 보여드려야겠다는 충동이, … 그 밖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연과 우연이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는 까까머리를 만들었더군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충분히 있었을 수 - 그 말은 어디에도 없었을 수도 - 있는 육체가 여러 우연을 징검다리 삼아 다름 아닌 이곳에서만 이런 정신과, 이런 모양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전공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동아리에 드는 것이 좋은지, 사람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지 묻다가도, 진지한 열정을 보이며 자신이 만들고 싶은 로봇에 대해, 연구하고 싶은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후배들을 보자 그저, 생긋 웃게 되더군요. 그 질문들에 대해선 19년도의 저도, 지금의 저도 그 답을 모르고, 그 열정들에 대해선 저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그들을 위해 준비된 충동이니까요. 결국, 제가 받아 온 선물들을 같이 풀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배들은 원하던 도움을 받지 못해 벙벙했을지 모르지만, 그들만의 우연과 우연이 그의 어깨 뒤에서 열을 이루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 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짜 도움이 될 은인들이지요. 많은 선물을 받기로 되어있는 행운아들을 보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기대감을 품게 되거든요. 레스토랑을 나서며 통창에 비치는 밤송이 같은 두상을 보며, 제 뒤에도 그런 우연들이 받쳐줄 준비를 하고 있겠나니 믿으며 또 하루하루 걸어갈 생각입니다. 저에게 또 다른 큰 우연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어깨 뒤로 열을 이뤄 기다리고 있는 우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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