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맞으러 가자
<벼락 맞으러 가자>
며칠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한용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두꺼운 장갑을 껴서도 한기는 살을 파고듭니다.
극한 추위가 느껴집니다.
눈도 많이 내렸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빙설로 해서 미끄럽다고 기상경보 메시지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강물도 얼었다고 뉴스에 뜹니다. 영하 10도의 추위가 사나흘은 지속되어야 한강이 언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런 날이 계속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퇴근길에 눈이 내린 풍경이 좋아서 여기저기 멋진 설경들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얼른 집에 닿기 위해 미끄러운 귀갓길을 재촉을 합니다.
와중에 갑자기 퍽하고 가로수 가지에서 눈 덩어리가 정수리 위로 떨어집니다.
난데없는 ‘눈벼락'을 맞고서는 갑자기 잊고 있었던 '벼락 맞으러 가자'라는 말이 떠 오릅니다.
아주 어릴 적의 일이 말입니다.
어릴 적 어느 시간대에 갑자기 할머니가 외장을 꾸리시고는 '물 맞으러 가자' 합니다. 득득 살을 긁어 파고 있던 나는 영문도 모르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따라나섭니다.
유달리 버즘이 많고 피부가 약했던 유년시절이었던 만큼 그날도 머언 눈으로 긁어대고 있는(지금 생각하면 아토피였을 것으로 생각됨) 손주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할머니는 그렇게 손주의 손을 이끌고는 집을 나섰던 것입니다.
'물 맞으러 가자'라고 한 곳은 다름 아닌 섬 뒤에 있는 일명 '평널이'라고 하는 반석 근처에 있는 벼랑 밑이었습니다.
'벼락바위'였습니다.
평널이 청자갈밭까지 가기 위해서는 옹삭한 바윗길을 한참을 가야 했습니다.
그곳으로 할머니는 나를 이끌고는 기를 쓰고 벼랑 밑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겨우 당도한 곳이 바로 '벼락바위' 밑입니다.
밑에서 치어다보면 벼랑 끝에 구름이 흐를 정도로 가파른 이른바 '벼락바위' 아래였습니다.
할머니는 그곳에 이르러 벼랑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정수리에 떨어지도록 나를 세우고는 같이 옆에서 위로부터 떨어지는 물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오후 내내 그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을 맞았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 정수리에 닿는 순간의 그 엄청난 충격 하며 등골을 타고 내리는 한기의 전율은 하루를 꼬박 이어졌습니다.
하나 둘 셋 쿠웅, 하나 둘 셋 쿠웅
그 물방울의 위력은 대단해서 가히 한 방울로도 능히 온몸을 적시고 남을 만한 냉기와 벼락소리가 나는 듯했는데 그때서야 왜 그 벼랑을 '벼락바위'라고 했는지를 알만 했습니다.
'물 맞으러 가자'
그 소리는 바로 '야야, 벼락 맞으러 가자' 하는 소리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그 ‘벼락 맞으러’ 섬 뒤 켠 벼락바위 밑을 다녀오곤 하였는데 그런 벼락을 맞아서인지 어째서인지 크면서 자연치유가 된 것인지 버즘은 없어졌고(그 자리가 이제는 머리가 빠지고는 있지만...) 피부는 정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젊을 적부터 저는 이 한 겨울에도 아침에는 냉수로 샤워를 하는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는 질색입니다.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합니다만 어릴 적에 느꼈던 그 '극한의 한기'를 여전히 탐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한 방울이 갖는 그 냉기의 위력을 상기하면서 어쩌면 그 한기의 물방울들이 어릴 적 피부건강을 되찾아 주었다면 이 한 겨울에 극한의 냉기를 가진 냉수들이 몸의 건강을 담보해 줄 거라고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한번 다시 평널이 청자갈밭에 있는 벼락바위로 가서 아직도 그 '벼락같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이제는 물방울들이 무엇을 치유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무수의 시간을 구르며 모를 닳게 해서 거기 모여 있는 청자갈들 위로 낙숫물로 떨어지며 위와 아래가 어떻게 교감을 하고 만남을 갖고 있는지,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그 스카이 라인을 내어다 보면서 누가 와서 그 물방울들을 맞고 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이 추운 겨울에도 거기 파도가 벼랑을 타고 오르고 있을 벼락바위 아래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