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섬을 태우다, '뇌성화야'
'뇌성화야'
웬 불덩이 하나가 쑥섬의 몬당에 있는 너럭바위인 '멀마산포' 즈음에서 주문과 함께 터져 나오더니 그 불덩이는 마치 도깨비불처럼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으로 둔갑을 하면서 쑥섬의 여기저기로 몰려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외침은 계속됩니다.
'뇌성화야, 뇌성화야'
그 외침들은 '멀마산포'에서 시작되어 섬 가운데 몬당에 있는 너럭바위인 '간내산포'로 이동하더니 다시 이 언덕 저 능선을 오가면서 자그마한 원에서 제법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합니다.
그 불덩이들은 다시 몬당 근처로 이동을 하면서 흩어져 있던 불덩이들이 한 군데로 모여 돌기 시작하더니 어느 사이에 '팽널이'로 내려가는 '비렁길'에서 '배밑에'로 가는 '비렁길'로부터 커다란 화력으로 불이 붙어 아래에서 오르는 바람을 타고 쑥섬 '뒷먼' 벼랑을 태우면서 기세 좋게 몬당 쪽을 향해 타 오르기 시작합니다.
'뇌성화야, 뇌성화야'
버얼겋게 타 오르는 불덩이들이 쑥섬 '뒷먼 비렁'에서 화력을 키우며 쑥섬 '뒷먼'을 순식간에 화안하게 밝힙니다.
뒷먼 비렁길에서 몬당길을 거쳐 '간내산포'에 오른 불덩이들이 다시 한데 모여 원을 그리면서 커다란 달을 마주하고 한번 더 커다란 외침을 합니다.
'우리 쑥섬 나간 복을 다시 데려다 줏씨요'
어느새 정월 대보름 달이 휘영청 동산에 돋아 올라 있습니다.
'당숲만 조심해라'
어른들의 당부사항은 바로 그것뿐이었습니다.
불이 번져서 당숲으로까지 번지는 것만 조심하게 하고 정월 대보름 날 '자장궂은 아이들'의 불놀이를 허용을 했는데 불을 놓을 수 있는 부위는 쑥섬의 뒤쪽 '비렁길' 주변이면 어디든지 태울 수 있게 했습니다.
쑥섬 아이들은 '뇌성화'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잔득 기름을 멕인 솜뭉치로 만든 불덩이를 돌리면서 그렇게 '구복(求福)'을 하였던 것입니다.
설 명절을 쇠고 정월 초사흘에 당제와 당굿을 모시고 나면 어른들은 샘굿을 시작으로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밟기를 했습니다.
풍물패는 종일 집집마다 돌면서 풍물을 일었고 집 문 앞에서 풍물을 일어대면 집주인은 대문을 열고 술 상을 들고 나와 풍물패를 맞이하여 집안으로 들이고 그 풍물패는 집안 여기저기를 드나들며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엌이며 대청마루 그리고는 마당을 빙빙 돌면서 한바탕 풍물을 이는 사이에 안주인은 다시 한번 덕석을 펴고 거기에 거나하게 술 한상을 봐서 풍물패를 대접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쑥섬 아이들은 솜뭉치를 만들어서 등유에 담가 놓거나 배에서 쓰는 중유나 경유를 얻어 담가서 '뇌성화'를 위한 채비에 들어갔습니다. 밤새 쑥섬을 불 태울 '쥐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른들은 쑥섬부락 곳곳을 돌며 지신을 밟으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고 아이들은 정월 대보름 달이 오르기를 기다려 쑥섬 곳곳에 불을 놓아 다시 한번 쑥섬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일구월심으로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쑥섬은 한 때 70여 척이 넘는 어선을 부리는 부촌이었다가 60~70년대에 접어들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만큼 어떻게든 예전의 영화를 다시 한번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옛날의 쑥섬의 영화와 영광들을 불러들이는 의식을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시간대에는 그 복들이 다시 되돌아올 것이라고 정말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뇌성화야, 뇌성화야, 우리 쑥섬에서 나간 복을 다시 데려다 줏씨요'
쑥섬이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일구월심으로 염원하였던 '복(福)'이 다시 들어오고 있습니다.
'뇌성화야' 하고 불러대던 그 '존재'가 어쩌면 불덩이를 이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 어떤 '절대자'를 지칭하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지신밟기'와 아이들이 하는 '뇌성화'를 통해서 쑥섬마을의 옛날의 영화를 다시 찾고자 했던 그 염원들의 덕분으로 지금의 '꽃섬'이 찾아든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지금의 쑥섬이 있게 되기까지 온갖 애를 쓰신 모든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오는 정월 대보름날에 모쪼록 쑥섬 온 동네를 아우르는 풍물패들의 지신밟기가 재연되고 쑥섬 몬당에 이는 '뇌성화야' 하는 외침소리의 활력이 돌아서 모름지기 '꽃섬'에 걸맞는 흥도 함께 일어나기를 바래 봅니다.
'뇌성화야, 뇌성화야, 우리 쑥섬으로 들어온 복을 오랫동안 지켜 줏씨요'
'뇌성화야'
뇌성화야
우리 동네 잡귀들은 모두 물러가고
멀리 나간 오복일랑 다시 들어오소
뇌성화야
우리 쑥섬 풍년 풍어 기원이요
쑥섬 사람 무사 무탈 구원이요
뇌성화야
먼 바다 나간 쑥섬 배들 모두
만선 깃발로 무사 귀항하게 하고
뇌성화야
타지나가 형님 누나 모두 모두
건강 건승 만사 형통 하시옵길
뇌성화야
뇌성화야
우리 쑥섬 나간 복을 다시 데려다 줏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