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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30)

겨울 쑥섬

by 명재신

<겨울 쑥섬>


겨울 쑥섬행은 역시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로 출발해야

제격이다.


군밤 장수 같은 빵모자 뒤집어쓰고

군고구마 장수 같은 동잠바 혹은

목장갑으로도 넉넉하다.


겨울 햇살 가득히 들어오는 왼쪽

겨울 햇볕 가득히 내려앉는 오른쪽에서

졸다 깨다 가는 길


들를 곳 다 들르고 간간히

한 두어 번 뿌앙뿌앙 내 대신 소리도 질러주는

겨울 쑥섬 가는 길은


이 한 겨울에도 언 땅 밀치고

쑥향 전하려 움 틔우고 있을 겨울 섬

몬당까지 오를 양이면

추운 삼동 쑥섬행은 역시

영등포역에서 완행으로 출발을 해야

제 맛이다.




영등포역 하면 무슨 생각이 떠 오르세요?


저는 남행열차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떠올립니다. 설명절에 고향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서울 기점으로 땅끝마을까지가 418킬로미터이고 쑥섬으로 건너가는 나로도항까지의 거리도 418킬로입니다.


자가용으로 가지 않고 쑥섬을 가는 길은 몆 가지가 있습니다만 자가용으로 가는 방법이 제일 먼저이지요 하지만 총 거리 418킬로를 가야 합니다.

부산 영도까지의 거리는 410킬로입니다.


그래서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니,

- 김포공항에서 여수공항까지 가서 근처에서 택시로 바로 나로도항까지 이동하는 방법

-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흥공용버스 터미널까지 바로 가는 방법

- 용산역 또는 영등포역에서 KTX나 무궁화열차를 타고 순천을 경유해서 고흥을 경유해서 나로도항으로 가는 방법

- 용산역 또는 영등포역에서 여수로 가서 여수항에서 나로도항으로 바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가는 방법


여러 방법이 있더군요


이래저래 근 10 시간이 걸리는 머언 거리입니다.


어느 해 겨울날 저는 겨울 쑥섬을 다녀올 요량으로 가장 느린 방법을 선택을 해 보았습니다.


바로 영등포역에서 순천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가서 거기서 고흥까지 직행을 타고 간 뒤에 고흥에서 나로도까지 완행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을 선택을 해서 한번 내려가 봤습니다. 그 방법은 오래전에 서울로 돈 벌로 올라온 지금 서울 사는 큰 누님과 둘째 누님이 명절 때 고향으로 내려갈 때 탔던 가장 오래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 길은 불편이라는 표현보다는 고향을 간다는 행복함이 우선이었을 그런 길이었을 겁니다. 타향으로 향하는 길이 아닌 고향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어찌 고단하고 고달픈 길이였겠습니까? 부모형제를 만나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집을 가는 길인데 말입니다.



겨울 동백


그대여

겨울 나로도를 다녀가셨군요.

내려오시는 길에 녹동에도 들르셨군요

소록도 한하운 시비

아직도 누워 있어 가슴이 메이셨군요.

언제 다시 띄워질까 궁금하셔서

하방금리 우주 발사기지도 가셨군요

고향집 내어 주고 함께 방출된 사람들

안부도 여쭈어 보았을 터지요.

다시 섬을 돌아가시는 걸음

축정까지 와서 잠시 잠깐 쑥섬에 들를 일이면

쑥섬 몬당 비밀정원 가는 길

마을회관 바로 옆 빠알간 양철지붕

조개껍데기처럼 저의 고향집이 있습지요.

그대여

겨울 쑥섬 빈 집

겨울 볕만 가득한 빈 화단에

그대를 맞아 피어 있을 겨울 동백에

입맞춤하고 계셨을

그대 모습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고향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난 것은 바로 따뜻한 겨울볕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바람이 지나는 들녘으로 내리는 겨울볕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보리가 겨울을 나고 있었고 마늘이 푸른 대를 꿋꿋하게 세우고 겨울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완행버스가 들르는 마을 마을마다 차가운 기운보다는 따뜻한 겨울볕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리고 타는 나이 많은 어른들의 움직임도 시간하고 거리가 머언 흐름이었습니다. 모든 시간들은 완행으로 시선을 둘만 한 모든 곳에 다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바라보고 그리고 한마디를 거들고서야 출발을 했습니다.


겨울 속을 지나가는 바람조차도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리해서 도달한 고향 섬 쑥섬에 들 즈음은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었습니다. 축정항에서 잠시 잠깐이면 닿는 쑥섬에는 넘어가는 석양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곧 어둠이 내릴 거라는 조바심보다는 쑥섬 몬당에 걸쳐 있는 겨울볕의 넉넉함을 즐겼습니다.


고향집 화단에 홀로 피어있는 동백나무에는 진한 그리움의 여백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동백나무 이파리의 윤기가 겨울 속에서 동백꽃과 함께 오랜 식구를 맞이하는 부모님의 얼굴로 오랜 지기를 맞아들여 주었습니다.


고향은, 무궁화호를 타고 왔건 KTX를 타고 왔건 어떻게 왔던지 간에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면서 진심으로 맞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시간대가 얼마가 되었건 언제가 되었건 따뜻한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고향은 어머님의 품이다라고 하는 말은 그런 까닭일 겁니다.


저하고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쑥섬 한번 다녀오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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