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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31)

쑥섬 고양이

by 명재신

'쑥섬 고양이'


웬일인지 쑥섬에선

왠갖 짐승 마다하고 유독

고양이만을 길렀지


아무도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쑥섬 고양이 한 마리가

할머니 손질하다 비운 자리

꼬박 생선을 지키고 앉았다가는

제 몫으로 챙겨주는 것만 먹고 살았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어느 해 겨울

어머니 다듬던 자리 지키기를 마다하고

울타리 맴돌며 밤 내 울어 쌓더니

소리 거두어 간 곳이 묘연하였지


이듬 해 날이 풀리고

섬 뒤 벼랑 아래 양지 바른 곳에

죽어 살이 다 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지.



다들 위로받고 싶은 모양입니다.


모두 힘든 시간대를 지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길양이를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길양이에게 손짓을 하고 가지고 있던 무어라도 챙겨서 주고서야 마저 길을 갑니다.


모처럼 주말 휴일을 맞아 가족들과 집 근처 찻집에 내려와 오후 시간을 보내는 중에 찻집 바깥으로 겨울볕을 쪼이고 있는 길양이를 만났습니다. 잠시 나가서 반가운 내색을 하고 마악 들어온 창문 너머로 그 사이 젊은 커플이 다가가 어르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떠나가더니 다시 젊은 아가씨가 고양이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다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모양이구나. 세상 사람들은 늘 누군가에게 고달픈 내 세상살이를 하소연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구나.


그것은 지금의 저들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고독함과 외로움으로 치를 떨던 시간대에 한 길양이를 만났습니다. 떠돌이 고양이었습니다. 아니 원래 주인이 있었을 건데 거기 두고 간 아이였습니다.


처음부터 정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번 정을 주면 그 정을 떼지 못하여 더 힘든 시간들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억지로 정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허기의 길양이는 그런 속정이 있는 나를 알아보기라도 했는지 떠나지 않고 숙소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사우디 알코바의 숙소인 ‘유로비안빌리지’에서 다시 해외 파견생활을 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저는 그 길양이가 아이를 가진 어미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짐승이다’


할머니의 말씀을 다시 떠 올렸습니다.


다시 정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정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너를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다시 구하는 것이다.


10여 년이 넘어가고 있는 해외생활과 이런저런 개인사 가족사로 지친 영혼을 어쩌든지 구제를 하고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다시 정을 주고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사우디 머언 땅에서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하루를 다 소진하고 빈 껍데기로 퇴근을 하면 문 앞에서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뛰쳐와 꼬리와 머리를 비비며 반기는 일점이와 이점이를 어루며 하루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그 사이 잊고 다시 아이들의 재롱으로 의기는 충만해지고 다시 하루를 채울 수 있을만큼의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우디에서 파견 생활을 하던 3년 5개월 동안 그 어미가 새끼를 낳고 다시 그 새끼들이 아이들을 낳도록까지 4대를 키우며 13년이 넘는 해외 생활을 잘 마치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길양이와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고 피붙이가 되었습니다.


‘세상사람을 구하는 짐승이다’



할머니는 고양이에게 참 관대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집에서 모든 가족들 또한 고양이를 항상 잘 챙기게 했습니다.


없는 살림에도 고양이 몫은 늘 끼니때마다 챙겨서 주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부뚜막도 내어 주도록 했습니다.


더러는 저희가 할머니와 함께 쓰던 방안까지 들여 키우는 것도 허용을 했습니다.


고양이에게 먼저 당신의 밥 한 술을 떠서 주기도 했었고 먹고 남은 생선은 잘 챙겨서 살만 발라 남은 밥하고 섞어서 고양이들이 먹도록 별도의 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잘해야 쓴다'


고양이에게는 늘 잘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집에서는 개나 닭은 키우지를 못하게 했지만 고양이는 늘 집에 두어 마리는 두고 키우셨습니다. 어쩌다가 새끼라도 낳게 되면 주변에서 달라고 하는 때까지 두고 키우게 했습니다.


'사람 목숨을 살리는 짐승이니라'


할머니가 문득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뚜막에서 잠자고 있는 고양이를 챙겨 와서 함께 이불속에 넣고 잠을 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으시던 어머니한테 '뒤지게'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바로 고양이가 밤에 방 안에서 어떻게 용변을 해결하지 못하고 이불속에다가 놔 버린 게 사단이었습니다.


혼이 난 저희들을 위로하며 할머니가 그랬습니다.


'섬사람들 목숨 구하는 짐승이여'


고양이가 사람을 살리는 집 짐승이라는 말을 처음 그때 들었습니다.


그 때는 그저 당제를 지내는데 성가시게 하지 않는 짐승이었기 때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또 다른 이유로 오랜 세월 동안 쑥섬사람들에게는 고양이는 쑥섬사람 목숨을 구하는 짐승이었기에 집집마다 두어 마리씩은 키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섬은 작았지만 천혜의 피항처로 쑥섬에는 배가 많았고 그 배들이 정박해서 수리를 하거나 출항을 위하여 보급을 받는 그런 어항으로 잘 발달이 되었기에 쑥섬 주변으로는 배의 모릿줄을 걸 수 있는 나무말뚝과 돌로 깎아서 만든 돌말뚝이 우끗터리에서 안몰짝 작은섬 돌아가는 길목에까지 수도 없이 박혀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배들도 피항을 위해서 와서 정박을 했을 것이고 쑥섬에서 부리는 배들 또한 많았다고 하니 한창때에는 쑥섬 앞바다에 배들이 넘쳐 났을 것입니다.


가까이는 나로도와 거문도 해역에서 주로 어로활동을 했겠지만 멀리는 영광 칠산바다를 넘어 연평도 조기잡이까지 다녀왔다고 어른들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동해안의 죽변항 앞바다에까지 오징어잡이까지 다녀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쥐란 놈들이 배 밑창을 갉아 묵는단다'


목선에 숨어든 쥐가 배의 밑창(배의 가장 아래 바닥)을 갉아서 구멍을 내게 되면 침수가 발생을 하게 되고 바로 배의 침몰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나드는 배들에서 버리는 온갖 음식 찌꺼기들과 상품가치가 없는 생선들을 정박해 있는 동안 바다에다 버리는 까닭에 쑥섬의 바닷가에 돌로 쌓은 '방천/방둑'의 돌틈에는 쥐들이 많이 서식을 했습니다.


그 쥐들이 보급이나 수리를 위해 정박해 있는 동안 배로 숨어 들어가 식량을 축내는 것뿐만 아니라 괜히 멀쩡한 목선의 이곳저곳을 갉아대면서 배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배의 밑바닥의 판재 두께를 얇게 만들고 종래는 파도가 심한 날 배가 요동을 치면서 그 얇아진 밑창이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구멍이 나게 되면서 침수의 화근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쑥섬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내력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 할아버지에게 풍어로 돌아오게 해 주십사 비손을 하면서도 어쩌든지 무탈하게 귀항을 하게 해 주십사 하는 마음이 우선이었을 겁니다. 정한수를 떠 놓고 새벽 비손을 하는 아낙들은 모두가 바다에 나간 식구들이 무사하게 되돌아오게만 해 달라고 비는 마음보다 더 지극한 바람이 없었을 겁니다.


그 바램이 이루어지도록 해 주는 존재가 바로 고양이였다는 것입니다.


집에 키우는 고양이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면 그 바램을 고양이는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배에 제발 덕분으로 쥐가 배에 타지 못하도록 집 안팎에서 고양이가 그 몫을 다해 주기를 일구월심으로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쥐를 잡을 수 있는 고양이를 집집마다 키우게 되었을 것이고 먼 뱃길에 고양이를 태우고 출항을 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비단 쑥섬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는 그렇게 해서 할머니에게 그리고 쑥섬사람들에게 '목숨을 구하는 짐승'으로 자리하게 되고 집집마다 끼니를 챙겨주는 존재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사람 목숨을 구하는 짐승이여'


그런데 이제야 할머니의 그 말씀이 의미하는 또 다른 이유를 알만도 할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을 바깥 세상으로 나아가 그 끝을 돌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서야 왜 할머니가 굳이 고양이가 ‘사람 목숨을 구하는 짐승‘이라고 했는지를 말입니다.


겨울볕이 내리던 바깥에 이제는 길양이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는 2월의 바람이 지나고 있습니다.



쑥섬 고양이(3)


사는 데까지 살아남자

떠나가는 사람들 비어 가는 집집


지키는 데까지 지켜내자

돌아오는 그날까지 들어오는 그때까지


없던 너구리 들어와 터박이가 되고

없던 까마귀 들어와 설치고 다니도록

들고양이 되어 길 없는 길

흘러 흘러 비렁길을 타더래도


우다시배ㆍ중선배ㆍ나가시배

머언 바다 난바다까지 따라갔다 오던 시절

더러는 물귀신이 되어 영영 불귀의 몸이 되었지만


명을 구하고 대를 이어서 쑥섬을 지켜 왔듯이

살아만 남자 살아만 있자


빈 집에 등불이 내 걸리는 날까지.


쑥섬 고양이들이 집으로 찾아와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들어와 살거냐고 항의방문이라도 하는 거 같습니다.
사우디 알코바 숙소에서 함께 하던 일점이(3대)와 그 아이(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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