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창호 단상
‘대창호 단상’
여수하고 나로도를 오가던 완행 여객선 대창호.
친구야 니는 나로도 안에 살면서 아는 것도 많어.
쑥섬이나 내섬이나 축정에 사는 친구들도 다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기억하는 친구가 고맙고 감사하네.
대창호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쑥섬에선 '대창호 뱃고동 소리에 저녁밥 짓는다' 라는 말이 있었제.
내나로도와 외나로도 사이의 물목인 '와다리/와교'를 지나오면서 대창호는 항상 같은 시간대에 뱃고동을 울렸었는데 아마 그때가 저녁밥을 짓는 시간대였던 것 같은디.
그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쑥섬서는 집집마다 밥을 짓기 시작한다는 말이었제.
5시 반과 6시 사이.
내나로도 소영리 살던 고향 선배는 옛날 LP 듣다 보니 기억이 살아난다면서 카톡으로 그랬어.
‘창포 끝에 대창호가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울리며 봉남을 향해 나아갈 때 어렴풋하던 노래는 이미 소영포구 앞에 다다랐을 때 동네 아이들은 마루치 아라치를 들으러 집으로 향하였네. 마치 수채화 같았네. ^*‘
창포-봉남-소영리-축정으로 들어오는 그 뱃고동 소리가 울리면 여늬없이 쑥섬 누님들은 그물일 가거나 갯것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서 저녁밥을 짓기 시작했었고 그 시절 '동각/마을회관'에 딱 하나 있었던 '동각시계'를 보러 가곤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네.
뱃고동 소리는 아직도 나에겐 유효한 탓인지 지금도 오후 다섯 시쯤 어디가 되면 어디서 뱃고동 소리 안 울리나 둘러보게 돼. 기적소리나 뱃고동 안 울리나 싶어서 .
그럼 내가 자릴 일어서제. 집에 가서 저녁밥 지어야 한다고 귀가를 서두르제.
선배님들 말씀으로는 나로도를 거쳐 운항했던 여객선들
여일호.유명호.한성호.삼산호.장구호.태안호.대창호. 길자호,조도호.등이 있었고 한양호.금성호,청해호는 부산까지 배가 운항을 했다더군. 하두 오래 전 기억이라 다 조금씩은 다르긴 하지만 더 찾아보면 또 있을 거라더라군.
그 배들 중에 친구 자네 기억처럼 목포에서 부산까지 가는 긴 여정의 배들이 있었는데 여수 쪽에서 올 때는 '올라오는 객선'이라고 했고 목포 쪽에서 오는 배들은 '내려가는 배'라고 했던 것 같어.
그 여객선들이 올라올 때 울리는 뱃고동 소리는 반가운 손님이 아래에서 오는 것이었고.
여수였거나 부산이었제.
여객선들이 올라오는 시간대는 오전 10시 즈음이었고 우리가 기억하는 그 여객선들의 뱃고동 소리는 여수이거나 부산에 이사 간 친구들이나 친척이거나 아님 서울서 내려와 여수에서 하룻밤을 자고 온다는 누님들이 오는 소리였는데 그 소리에 얽힌 기억은 마을마다, 친구들마다 다 다르것제.
모두가 객지로 떠나간 피붙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나는 누님들이 온다는 소식과 그 뱃고동 소리와 창인이네 집에서 울리던 전축소리서 나오던 조미미의 구성진 노랫가락, '바다가 육지라면'의 가사를 다시 떠올리고 남진이의 '가슴 아프게' 노랫소리가 문득 그리워지네. 다음에 만나면 우리 노래방에서 그 노래 한번 오랫만에 함께 불러보세.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사람은 ~' : 이건 순이 몫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 이건 철이 몫
당시에 그 노랫소리를 입에 달고 낚시를 다녔어.
'물어 물어 찾아왔소 그 님이 계시는 곳~'의 나훈아의 '님 그리워' 원곡을 고쳐서 '물어 물어 노래미가 물어~~' 하고 그렇게 목이 메도록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도 반가운 뱃고동 소리를 따라 그리던 반가운 손님이 안 오면 내섬과 쑥섬 사이로 빠져가는 객선에 대고 괜시리 '갠마이뽕(이게 뭔지 알제?)'을 먹였제. 그것도 아주 큰 것으로다. 처음에는 손에서부터 시작해서 다리로 하다가 마지막에는 머리로 먹였던 것 같은디. 거기서도 그랬등가?
그리고 여름방학이면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수영을 하면서 커다란 객선들이 오가며 일으킨 '늬(파도)'을 맞으러 선창에서 뛰어내리거나 나룻배를 타고 가다 뛰어내리며 '산더미 같은 뉘'를 타며 괴성을 질렀던 기억이 또렸허네.
또 기억나는 게 친구 자네처럼 부산 작은집에 아버지 따라가는 길이었는데 아버지가 그때 돈을 넣은 지갑을 안주머니에 넣고 잠을 청하여 주무시길래 나는 그 옆에서 행여 누가 그 지갑을 빼어서 갈까 봐 배가 삼천포-통영을 거쳐 부산에 도착한 새벽녘까지도 잠을 자지 못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어.
다들 시간 속으로 묻혀 들어가 버렸는데 친구 자네가 끄집어내어서 그윽하게 눈을 감기게 허네
그 시절을 그리게 하며 퇴근을 주저하게 만들어 부렀어.
이럴 땐 따땃허니 고향친구와 함께 소주 두어 잔의 취기를 빌어 그 시절을 주절거리는 것도 객지 사는 맛이겠다 싶어.
쑥섬을 건네다 보면서 술 한잔을 걸친다고 생각하니 석 잔이면 맛이 가는 내 주량이 또 세병은 되어서야 취기가 돋을 것만 같네.
그립네 아득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