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꿀 좀 사 오니라>
저의 어머니가 새댁인 아내에게 그랬습니다.
'아야 꿀 좀 사 오니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시간대에 어머니가 아내에게 '꿀' 좀 사 오너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마침 시장을 간다고 하니 가는 길에 '꿀'을 사 오라고 그랬던 겁니다.
아내는 뜬금없이 궁금해졌습니다.
'아니 이 겨울철에 왠 '꿀'을 사 오라고 하시지?'
아내는 시장을 보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잊지 않고 괜찮은 벌꿀 한 병을 사 들고 왔습니다. 장인어른이 양봉업을 하셨기에 아내는 적어도 '벌꿀'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여기 꿀 사 왔습니다'
‘아야 쑥섬 가자‘
어머니는 자꾸만 보따리를 싸셨습니다.
'아야 꿀 좀 먹게 쑥섬 가자'
치매로 버거운 시간들을 보내시는 동안에 잠시 잠깐 정신이 돌아오면 그렇게 쑥섬을 가자고 보채셨습니다.
겨울철에 가두워진 요양병원의 그 답답함을 못 견뎌하시며 쑥섬을 가셔야겠다고 주말에 면회를 오는 자식들을 붙들고 애원을 하셨습니다. 다들 사느라고 바쁜 자식들은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누가 곁에서 돌봐 주어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지를 못하여서 어찌하지를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고향집은 아직 유지를 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급기야는 보따리를 싸서 문 앞에서 구르면서 시위까지 하시며 쑥섬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의논해서 쑥섬으로 다시 모시기로 결단을 하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쑥섬 집에서 보호를 해 줄 요양사를 구하고 때마침 안양에서 혼자 계시던 쑥섬 친척 누님이 쑥섬으로 내려가고 싶어한다고 연락이 와서 쑥섬집을 조금 손 보고 쑥섬으로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쑥섬으로 들어가시던 날 어머니는 젤로 먼저 갯바탕으로 뛰어 들어가서 쑥섬마을에서 겨우내 채취하고 난 뒤의 남은 ‘꿀’을 덩이 채로 캐 와서는 마당에 솥에다가 불을 지펴서 데쳐서는 까 드셨습니다.
‘워메 요것이 월마나 묵고 잡었는디’
<꿀에 대하여>
꿀*을 사 오라고 했등마 꿀을 사 왔드라고
절라도 울 엄니가 갱상도 울 각시한테
이날이 평상* 숭*을 볼 것이 없을라치먼
아야 가서 꿀 좀 사 오니라 그러시더니
객지에서 떠돌던 정신 마지막으로 수습하여
쑥섬으로 들어와선
막아 논 갯바탕*도 아랑곳 않고 꿀을 따와선
꿀은 따땃할 때 까 묵어야 쓴다며
왼손엔 다 떨어진 목장갑
오른손엔 다 무디어진 정지칼을 들고
꿀을 까 자시고 있다
워메 요것이 월마나 묵고 잡었는디 잡것들이 나를 잡아놓고
시설로 보낸다 요양원으로 보낸다 그려 워메 달디 단거!
우리 엄니
꿀 까 자시느라 다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다.
*꿀 : 바다 굴(석화)을 쑥섬에서는 ‘꿀’이라고 부른다.
*이날이 평상 : 지금까지도 계속
*숭 : 흉
*갯바탕 : 굴이나 바지락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갯가를 갯바탕이라 하고
쑥섬 어촌계에서 허락한 시기만 채취가 허용된다.
출처 : 제4 시집 쑥섬이야기 중
쑥섬에는 꿀이 많이 납니다.
굴이 잘 자랐다면 지금 겨울철이 제철이니 쑥섬에서는 제법 실한 굴을 많이 따서 명절을 쇠거나 어디 자식들한테 보내자고 깨끗이 씻어서 그물망태에 넣어서 물속에 넣어 놓고 있을 겁니다.
아니면 이 추운 계절에도 탐방객들이 들어오시고 계신다면 그 맘이 고마워서 쑥막걸리 한 잔과 쑥섬 굴로 지진 굴전을 안주로 해서 겨울 쑥섬의 찰진 맛을 대접해 드릴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자연산 굴은 날이 추운 계절인 동짓달부터 시작해서 정월 보름 즈음까지 길게는 영등사리철까지 채취를 하는데 쑥섬은 주로 정월 보름 즈음에 많이 채취를 합니다.
쑥섬에서 굴이 나는 곳은 나로도항에서 건네다 보이는 곳에 '칫등 또는 칫둥'이라고 부르는 '갯바탕'입니다. 여기서 '칫등'은 썰물이 되어 간조 때 드러나는 곳을 말합니다.
남서부 도서지방에서 나고 자란 분들은 대충 알고 계시듯이 여기서 '칫'은 '치'를 이야기하고 짐승의 꼬리처럼 지형이 튀어나온 곳을 이름하고 '등'이라고 하면 사람의 등과 같이 바닷속에 조류의 영향으로 퇴적층이 생겨서 썰물 때 드러나거나 수심이 얕아지는 그런 곳을 말합니다.
그런 곳이 쑥섬에 우끄터리에도 있었는데 방파제 조성 후에는 조류의 흐름이 끊겨서 뻘이 가득 차서 더 이상 굴이 서식을 하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안몰짝 칫둥'에서는 정상적으로 굴이 자라고 있어서 제법 많은 '돌꿀'을 채취를 할 수가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쑥섬 갯바탕에서 나는 굴은 모두 공동채취를 해서 모두 외지에 팔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을 회관에는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굴을 앞에 두고 쑥섬부락 아낙들이 몇 날 며칠을 까서 모두 외지로 팔았을 만큼 나는 양도 많았고 품질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이야 남아 있는 주민들이 많지 않고 연세들이 많아서 칫둥에서 나는 굴 정도만 채취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꽃과 돌꿀'
굴의 다른 이름은'석화'입니다.
현지에서 여전히 석화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쑥섬에서 나고 자란 저는 그 이름 대신해서 '꿀'이라고 해야 '돌꿀'이 가지고 있는 그 본연의 맛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석화는 한자로 ‘石花‘라고 씁니다. 돌 석(石)에 꽃 화(花)이니 ‘돌꽃‘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알맹이인 굴은 갯바위 위에 피어 있는 '돌꽃'의 '돌꿀'인 셈입니다.
굴을 굴이라 하지 않고 '꿀'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 삼동에 쑥섬 바닷가에 피어있을 ‘돌꽃’들이 궁금합니다. 봄.여름.가을 내내 쑥섬 정원에서 피우느라 땅힘을 다 썼을 몬당과 ‘압먼/앞면’ 꽃밭들이 쉬고 있을 이 시기에 쑥섬의 ’갯바탕’에서는 ‘돌꽃‘들이 피어나고 있을 겁니다.
이름하여 ‘쑥섬의 돌꽃‘입니다.
이 계절의 풍미를 돋구어 줄 돌꽃과 돌꿀이 궁금해 집니다.
쑥섬의 동백꽃길을 지나오면서 동백꽃에 입마춤 하시옵고 '쑥섬 돌꽃'으로부터 이 겨울의 풍미를 맛 볼 수 있는 '쑥섬 돌꿀'을 맛 보시고 나오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아야 꿀 좀 사다 먹자'
어제 퇴근길에 서울 큰누님이 전화로 그러셨습니다.
어짜든지 쑥섬꿀을 덩이꿀로 사서 한번 데쳐서 묵어봐야 이 겨울을 넘길 것 같다시며.
쑥섬 '칫등'에서 채취한 자연산 '돌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