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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36)

늘 꽃길만 걸으세요

by 명재신



'동백꽃길'


친구야,


정말 오랜만이었어.


지난 달 인천에서 잠시 너를 만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이십 년도 넘었지?


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어머님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주신 선물이었던 거 같아. 살면서 이렇게라도 얼굴 보고 살라고.


지금 즈음이면 우리가 떠나온 쑥섬 우끄터리 동백꽃길에는 동백꽃들이 마악 피어나고 있을 거야.


실제로는 겨울이 시작되면서 피어나고 있었지만 영등사리철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피어나서 적어도 삼월 중순과 하순이 되면 동백꽃길에서 동백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일 거 같어.


기억나지? 우리 어머니들의 애환이 서린 그 동백꽃길.


그 길은 주로 너의 어머님이 그랬고 나의 어머님이 '자장궂은' 우리들 겨울옷가지를 '대야/함지'에 가득 이고 '빨래샘'으로 빨래를 하러 가거나 '자석/자식'들 세숫물이라도 쓰게 물을 길어 갔다 오는 길이었었어.


식구들의 빨래는 당연히 '빨래샘'으로 가져와서 해 왔잖아. 너희 형제들도 6남매 우리 형제들도 6남매. 그 많은 자식들을 추운 삼동에 남보다 좋은 옷은 못 입히더래도 깨끗하게는 입혀서 키워야겠다고 얼마나 거길 자주 다녀오셨겠나 싶으니 눈물이 나려고 해.


그 길은 마을로부터 한참을 걸어서 가야 했는데 가고 오는 길에 지금의 동백꽃길을 거쳐야 했어. 그 동백꽃길이 바로 쑥섬에서 '초분골'이라고 부르는 숲을 끼고 한참을 걸어야 하는 길이고 바닥길도 갯모래와 잔돌들로 덮여 있었긴 했었지만 여전히 거친 길이었잖어.


그 숲에는 애기무덤인 '독단불'이 있었고 어른무덤인 '초분'까지 있었고.


'빨래샘'에서 허드레물을 길어 올 때면 늘 그 숲을 지나야 했고, 분명 샘을 나설 때는 물을 가득 담아서 이고 왔는데 집에 와서 보면 물은 거의 절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잖어.


'빨래샘 물 절반은 애기들이 먹는다'


물을 길어 오는 중에 그 길에 접어들면 어찌 그냥 지나쳐서만 올 수 있었겠니.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우리는 잘 알잖아. 그 길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환청처럼 들렸을 테고. 어쩌면 펑펑 울면서 그 길을 건넜을지도 몰라. 그러면서 물동이 안의 물이 출렁대면서 넘쳐흘렀을 것인데 '애기들이 엄마 젖 달라고 하면서 당겨 먹는다'라고 그랬어.


친구야 기억하지?


그래 맞어. 쑥섬 사람들에게는 늘 초분골 길은 가슴 아픈 길이었지.


아마도 너의 어머니도 마지막 가시는 길에 어쩌면 그 길이 생각나셨을지도 몰라.


그래서 엄동설한 마지막 가시는 길에 따뜻한 남쪽 우끄터리 동백꽃길에 들러 이제 마악 피어나기 시작하는 동백꽃에 입맞춤하고 가실 거라고 믿어.


친구야 이번 봄에 쑥섬 한번 다녀오지 않을래?


어머니 다녀 가신길에 들러 우리 한번 동백꽃을 함께 영접해 보자.


친구야.



'돌탑 이야기'


선배님,


하지만 몇 해 전에 쑥섬을 찾아들었을 때는 그 길가에서 의미 있는 것을 확인을 했습니다.


돌탑이었습니다.


누군가 그 초분골 길 가에 돌탑을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선배와 저희들이 기억하는 한, 쑥섬의 '초분골'은 그렇게 노래만 불러서는 안 되는 길이라는 말씀 전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애환과 우리들의 유년시절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묻힌 채로 그 누구도 그 숲에 얽힌 내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들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을 노래하고 있다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시던 우려의 말씀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동백꽃들이 피어나면 선배님과 저희는 그 숲으로 찾아가 시누대 빨대로 동백꽃물을 빨아먹으며 허기를 채웠고 그 동백나무 아래에 잠들어 있는 쑥섬의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다.


이 험한 세상으로 나와 살면서 한시도 그 숲 속을 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꽃길에서 누군가가 쌓기 시작한 돌탑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쑥섬을 다녀가시는 길에 갯가에 많은 돌들을 보고 어느 탐방객이 가족의 건강과 만복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아서 하나둘씩 쌓기 시작해서 이루어진 돌탑일 수도 있었겠지만 저에게는 그 작은 돌탑들은 누군가 그 동백숲의 내력을 알고 있어서 쌓아둔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가슴 따뜻한 돌이었습니다. 가슴을 막고 있던 그 무언가가 내려가면서 하나씩 모여 있는 그 작은 돌탑들이 아직도 그 숲에서 떠돌고 있을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고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있도록 위로하는 마음이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지금도 누구라도 쑥섬을 탐방하실 일이 있으시면 동백꽃길 그 길 가에 돌탑을 보고는 잠시 가는 걸음을 세우고 작은 갯돌 하나 얹어 주고 계실 겁니다.


이제는 저하고 이 동백꽃들이 피어나는 쑥섬의 동백꽃길에 한번 들러야겠습니다.


적어도 그 동백꽃들과 함께 돌탑들을 쌓아주고 있는 탐방객들을 맞아 손이라도 잡아 주며 고맙다고 이 숲 안에 잠들어 있는 쑥섬의 아이들을 안아 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도 하고 이 따뜻한 봄날에 동백꽃에 가득 담겨 있을 동백꽃 꿀물을 빨아 드시러 쑥섬에 한번 내려가시지요.


선배님,

누군가 동백꽃숲의 내력을 아는 분이 시작을 했을까요? 작은 돌탑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돌 하나 하나에 담긴 마음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돌탑들이 쌓여가면 이 숲속의 어린 영혼들도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백꽃길 돌탑'


누가 누가 시작했나 초분골길 돌무덤


낳다가 죽은 애기들 크다가 죽은 아이들

갯돌 깔고 섬돌 쌓아 울음 울어 떠나보내던

꽃도 피지 못하고 떠나간 쑥섬 아가들

독단불 돌무덤으로 애기 울음 들렸지


누가 누가 쌓기 시작했나 동백꽃길 작은 돌탑


동백꽃 무장무장 피어나면

멋드러진 동백꽃길 만들어지면

동백꽃 하나에 작은 돌 하나 얹어

하나가 모여서 열이 되고 백이 되었네

오다가 돌 하나 얹고 가다가 돌 하나 얹고


아가야 아이야

이제 꽃으로만 피어라 동백꽃으로만 살어라

섬돌 따라 돌탑 타고 하늘로 가거라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30쪽)



'꽃길만 걸으세요'


누님,


참으로 사람들은 현명한 거 같습니다.


같은 동백꽃을 보고도 저는 어제를 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내일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초분골길'이라고 부르는데 이제는 사람들은 그 길을 '동백꽃길'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애환의 길을 희망의 길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면서 우끄터리 동백꽃길이 쑥섬을 다녀 가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만사 시름을 잊게 해 주는 힐링의 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쑥섬 한 바퀴 탐방하고 내려오는 그 마지막 길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가득 얻어서 내일로 가는 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꽃을 좋아하고 섬을 좋아하는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동백꽂철과 봄이 가는 수국철에 많은 탐방객들이 다녀가시고 사진과 글들을 SNS에 올려서 아름다운 섬의 꽃들과 풍광들을 공유해 주고 있답니다.


우리의 고향 쑥섬은 이제 긍정의 에너지를 얻어가는 그런 몬당길과 동백꽃길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화려하고 예쁜 꽃들로 거듭나고 있는 쑥섬의 동백꽃 숲 안의 내력에까지도 애정을 갖고 돌 탑에 마음 하나씩을 얹어 주시고 가는 걸음걸음이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과거의 숨은 내력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의 쑥섬의 긍정의 시간들로 만들어가는 것이 멋져 보여서 박수를 보내 드려야겠습니다.


다녀가시는 모든 탐방객들에게 쑥섬의 동백꽃들이 지금 즈음 지천으로 피어나 가시는 걸음 꽃길만 걸으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함께 한 시간들 함께 걸었던 동백꽃을 기억하면서 이 서울의 땅에서 늘 건강하십시요. 누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누님과 쑥섬을 다녀가시는 모든 분들께 기원합니다.


'늘 꽃길만 걸으세요'




'동백꽃길'


늘 꽃길만 걸으셨던가요?


간난 했던 여정 돌아보니 어떻던가요

신난 했던 시간들 어떻던가요

오고 가고 피고 지고 언제라고 꽃길만 걸었을라고요

가시밭길 지나면 돌담길, 돌담길 지나면 보리마당

사람 사는 길로 나아가면 빈 집들 수두룩해요


지금 여기에서 쉬었다가요 이 시간을 꽃피워요

노래 불러요 사랑하는 그댈 위해

고맙다고 말해요 여기 함께 한 그대에게

함께 온 길 감사하다고 남은 길 같이 가자고

손 내밀어 줘요 손잡아 줘요


지금이 꽃길이에요

붉은 사랑 겨우내 함께 했던 동백꽃길이에요


늘 꽃길만 걸으세요.


제4시집 '쑥섬이야기' 중(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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