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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41)

꽝치는 날 - 사바리, 사바리

by 명재신

<꽝치는 날- 사바리, 사바리>


망했다.


그놈의 '진대/바다 배도라치'가 첨부터 올라 오더라니.


희한하게 '진대'만 올라오면 '복쟁이/새끼 복어'조차 입질을 안 하니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삼월 들어 첫 출조여서 동네대밭에 가서 왕대 실한 놈을 골라서 대나무 낚시대를 새로 다섯 개나 만들고 해서 공을 많이 들였는데 이렇게 입질이 없다니.


오늘은 음력으로 이월 스무사흗날(음력 23일)이니 '한 조금/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물 때'이라서 '물빨/조류 세기'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입질이 없을 수는 없었다.


우끄터리 갯바위에는 제법 미역이 붙었기에 적어도 노래미라도 제법 잡힐 줄 알았다.


동생은 벌써 '도런바구'로 자리를 옮겨서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어쩔 수가 없었는지 '풋노래미/작은 노래미' 두 마리 낚아 놓고는 토옹 입질을 못 받고 있었다.


'새집앞끄터리/쑥섬 북단에 돌출된 바위'에서 적어도 씨알 좋은 '바닥 노래미' 서너마리는 초썰물때 낚었어야 했는데 입질 한번 못 받었었다.


썰물이 다하고 초들물로 바뀌도록 '풋노래미' 두 마리여서 형제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대나무 낚싯대를 나는 세 대를 가져왔었고 동생은 두 대를 챙겨 왔다.


'왓따 오늘 우끄터리 노래미 씨를 말리겄다'


거창하게 왕대나무 낚싯대를 어깨에다가 걸쳐 메고 우끄터리로 낚시를 하러 가는 모습을 본 동네어른들은 '본마당/동네마당'서 그물일을 하다가 그렇게 거들었다.


괜한 말은 아니었다.


소문이 난 낚시꾼 형제는 쑥섬 어디라고 안 다니는 곳이 없을 만큼 쑥섬 뒷먼 벼랑을 타고 다니면서 온갖 물고기들을 낚아 날랐었다. 대나무 낚시대로 못 낚는 물고기가 없었다.


노랑바구, 안몰짝 방파제, 건몰짝 방파제, 솔밑바구, 마당널이, 평널이, 배밑에, 오리똥눈디, 중빠진굴, 도런바구, 노루바구, 새집앞끄터리, 노래미도팎를 돌아다니며 철마다 참숭어, 감쉐이, 깔때기/농어, 껌철구/볼락, 바닥 노래미/쥐노래미, 노래미, 우럭 등을 낚어냈다.


"중빠진 굴로 넘어가 보께라?"


'새집앞끄터리'를 거쳐 '노루바구'하고 '도런바구'까지 뒤졌는데도 '풋노래미' 두 마리라면 쑥섬의 뒤편에 있는 '중빠진 굴'까지 넘어가 본들 별 재미가 없을 거였다.


그래도 '본마당'에서 올 봄 들어서 첫 출조를 한 형제의 조과가 궁금해서 기다리고 있을 동네어른들이 신경이 쓰였다. 분명히 뭐라고 한 마디씩을 거들 거였다.


"그만하고 뻘뚝이나 따 먹구 집에 가자구"


지금 즈음이면 씨알 좋은 '바닥 노래미/쥐 노래미'는 아니더래도 노래미 '한 뭇/쑥섬에서 물고기 세는 단위, 열 마리를 한 뭇이라고 함'은 넘게 잡어 놓고 형제는 '통안'에 '뻘뚝나무'에 붙어서 허기를 채우면서 시누대 빨대로 동백나무에 잔득 피어 있는 동백꽃에서 꿀물을 빨아 먹으며 갈증을 해결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통안'은 쑥섬의 북단에 '노루바구'와 '도런바구' 사이에 있는 몽돌밭이었다.


이곳에는 수백 년은 족히 넘었을 '뻘뚝나무'와 동백나무가 자생을 하고 있었다. '뻘뚝나무'는 '덩굴 보리수나무'로 3월 중순 즈음에 바알갛게 익었다.


"그랍시다. 뻘뚝이나 따 묵고 들어가제라"


할 수 없었다. 해가 중천을 지난 지 한참이었다. 허기와 갈증이 몰려들고 있었다.


형제가 '뻘뚝나무'에 붙어서 '뻘뚝'을 따먹으면서 허기를 채우고 다시 동백꽃 꿀물을 빨아먹어서 갈증을 해결하고서야 마을로 길을 잡았다.


'풋노래미' 두 마리를 실에 꿰서 달랑거리며 우끄터리 동백꽃길을 지나서 '본마당'으로 접어들자 아니나 다를까 동네 어른들이 그물 손질을 하다가 박장대소를 하며 형제를 맞았다.


일손 부지런한 미산이네 아부지가 먼저 한 마디를 했다.


"웬일이여 니들 형제가 사바리여? 툭사바리?"


'사바리'는 낚시를 하러 갔다가 '꽝을 쳤을 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왐마 '동각/마을회관'에 가마솥을 걸어야 쓰긋따."


풋노래미 두 마리를 두고 그물에 '동을 걸고/그물 잇는 작업' 계시던 그물의 달인 홍기네 아부지가 보탰고,


'푸욱 과서 니들 식구들 사나흘 몸보신은 하긋따.'


점잖하시던 성길이네 아부지도 한 말씀 거들며 껄껄 웃어 댔다.


얼굴이 버얼갛게 달아오른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고 대문으로 들어서자 마자 ‘본마당‘을 향해 쌍으로 주먹감자를 먹이면서 그랬다.


"에라이 갠마이 뽕이다"


그 사이 동생은 챙겨온 풋노래미 두 마리를 고양이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고 있었다.



<사바리 사바리>


우끄터리 새집앞끄터리에서

복쟁이 새끼 두어 마리에

물라고 하던 노래미도 안 물면

바다가 육지라면

노래나 목이 터져라 부르던지


웃녘으로 가는 중선배에는 손 흔들어 주고

아랫녘으로 가는 객선에는 잘 가라고 하고

통안에 뻘뚝이나 따서 먹으면서

삼월 봄날 허기를 채웠었지


왓마 가마솥에 물 채우고 푸욱 과서

니들 식구들 몇 날은 몸보신 하긋따


사바리 사바리

풋노래미 두어 마리로 지날라치면

동네 어른들 보리마당에서

다들 한 마디 거들면


에라이 갠마이 뽕이다.


출처 : 제 4시집 쑥섬이야기 95쪽


‘뻘뚝’입니다. 남해안 도서지방에 자생하는 덩쿨나무 보리수 열매이며 겨울에 꽃이 피고 맻혔다가 이른 봄에 익습니다.
형제와 조카가 뒷먼 오리똥눈디에서 잡은 물고기입니다. 세 뭇 정도로 보입니다.
필자가 서 있는 곳이 '노루바구'이고 뒤로 보이는 곳이 '도런바구'이며 그 사이가 '통안'입니다. 쑥섬아이들의 낚시터였습니다.
'새집앞끄터리'입니다. 참숭어와 바닥노래미 등 씨알 좋은 물고기가 잘 잡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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