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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7)

오줌싸개

by 명재신


큰어머님은 하얀 옥양목에 백발의 수염을 기른 노인이 툇마루에 앉아 대숲을 망연히 건네다 보고 있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점심으로 준비하고 있던 겉보리를 절구통에서 까불라 대던 일을 멈추지를 못했다.


겉보리가 하얀 보리알갱이가 되고 그것들이 이미 오래전에 하얀 빛깔을 내어놓고도 다시 문드러지도록 도굿대 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노인네는 저녁 해가 이슥해서야 당숲으로 되돌아갔고 큰어머님은 절구통이 있는 감나무 아래에서 감꽃 여나무 개가 절구통 안에 보리알갱이와 함께 보릿가루가 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렇게 있었다.


큰어머님의 병은 그렇게 왔다. 당할아버지의 존재는 그런 연유로 큰어머님 눈에 비추어졌고 그것은 바로 계고(戒告)였으니 큰 병이 들 거라는.


말로만 전해오던 당할아버지의 강신(降神)이었다.


당할아버지의 출현은 그렇게 섬마을에서 나서 태를 묻고 자라 나왔거나 자식을 낳고 태를 큰산 아래 동네 대밭 위에 항아리에 담아 바쳐온 생령들에게 꿈이거나 생시처럼 찾아와서 화복(禍福)을 점지해 주고 당숲으로 되돌아가곤 한다고 믿었다.


큰어머님이 병을 얻고서부터 큰아버님은 먼바다까지 고기잡이 나가는 배를 타는 것을 포기하셨다.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어떻게든 구완을 하려고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고 다니던 끝에 집을 옮겨보라는 이야기에 당숲 바로 아래 있던 집을 비우고 마을 가까이 내려왔던 것 같고 그리고는 다시 다른 처방을 위해 함께 섬을 떠나가셨다. 순전히 그 곱기만 하던 큰어머님의 병구완을 위한 지극한 수발을 위해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그렇게 섬을 떠났던 두 분은 아마도 부산 주변에서 어떤 돌팔이 한의사에 의존하여 머물렀던 것 같고 치유방법을 찾지 못할 거라는 마을 사람들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지악스럽게 치료 방법을 찾아낼 요량으로 다시 뭍 용하디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셨던 모양이었다. 그러기를 몇 년이었을까? 섬을 떠나 뭍 어디 어디를 떠돌아다니시다가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뒤에야 쑥섬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러나 되돌아오신 큰어머님의 예전의 곱던 자태들은 이미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모습이었고 큰아버님은 큰아버님 대로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 역력하셨다. 어느 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방문을 여시고 내내 빗장을 채워놓으셨던 서릿문을 여시고는 큰아버님은 집으로 건너오셨다.


"아야, 니 좀 이리로 와 보그라!"


그랬다. 큰아버님은 다짜고짜 나를 끌고 큰집으로 가서는 아랫목에 누워 계시는 큰어머님 머리맡에서 오줌을 죄다 꺼내 놓기를 원하셨다.


".............."


"얼른 꺼내놓거라!"


심한 열패감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나를 채근하여서 기어코 지린내 지독한 오줌 한 사발을 받아서는 김이 아직도 모락거리는 오줌사발을 큰 어머님에게 권하셨고 큰어머님은 그 권유에 못 이겨 눈앞에서 벌컥대며 마셔댔다.


"이거시 다아 약이여. 니가 큰 어미를 살릴 수 있는 야악!"


아아, 오줌을 마시다니. 오줌을 마실 수가 있다니. 그것도 가장 정갈하고 곱기만 하던 큰어머니에게 오줌을 마시게 하다니. 나는 그 황당한 모습에 질려 있었다.


오줌 수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큰아버님이 부르는 횟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고 날이 더할수록 더 많은 양의 오줌을 원하셨다. 그토록 정갈하던 매무새를 흐트러뜨리고 그리고 온몸이 점점 해체되어 가도록 하루에도 몇 번을 큰아버님 손에 이끌려가서 하얀 사발에 참고 있던 안에 것들을 쏟아주고는 행여 누가 볼세라 잰걸음으로 집으로 되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줌 수발을 끝으로 큰어머님은 섬을 영영 떠나가셨다.


큰아버님은 무슨 까닭이셨던지 큰어머님을 땅에다 묻지 않으시고 한 줌의 재로 안고 돌아와서는 큰어머님을 바다로 보내셨는데 그때 바다를 향해 겅중한 체구로 울음 울던 모습들은 아직도 생생했다.


큰어머님이 떠나가시고 매일을 가위눌림에 시달려야 했다.


밤마다 꿈속에서 당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당숲으로 따라 들어가는 큰어머님의 하얀 모습들에 시달렸었고 기억의 끝에 매달려 있는 것들을 따라 들어가 보면 그곳은 수령 사오백 년이 넘은 잣밤나무며, 가시팽나무며, 후박나무며 동백나무 등이 원시림으로 남아있는 그 당숲 안이었고 그곳에서 혼자 길을 잃고 이리저리 벗어나려 몸부림을 쳐대다 보면 그곳은 다시 뎅그마니 서있는 감나무였고 거기 옆에 큰어머님이 겉보리를 찧었다던 도굿통(절구통)이 나를 향해 커다랗게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릉 다 꺼내 놓거라!”


오줌싸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밤마다 절구통에 가득 오줌을 싸고 잠을 깨고 나면 여늬 없이 흥건하게 이불에 오줌이 가득하였다. 그리고는 어쩔 줄 모르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고 날이 밝으면 하구헌 날 나는 소금을 얻으러 마을을 돌아다녀야 했다. 챙이(키)를 뒤집어쓰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바가지에 소금을 얻어서 돌아올라 치면 뒤에서 쏟아지던 물벼락과 그리고 그 섬뜩하던 웃음소리들과 또래 아이들의 차가운 조소들을 사무치도록 기억하면서 왜 하필이면 큰아버님은 큰어머님의 구완을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나를 끌어들였는지에 대해 원망하였고 원망하였었다.


는 왜 그토록 정갈하고 아름다웠던 큰어머님에 대한 기억들에 내 유년시절의 그런 부끄러운 기억들이 얽혀 있어야 했는지를 안타까워 했었다. 큰어머님을 생의 마지막까지 따라붙으며 일구월심 소생시켜내려 했던 큰아버님의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 끝에 내가 서 있어야 했는지 말이다.


그 나이가 되어서,


부끄럽기만 하던 유년의 기억들이 이제 그 모습을 바꾸어지는 때가 되어서야 한 사내가, 아니 한 지아비가 병든 지어미를 위하여 쏟았던 사랑이야기의 매개였음을 깨닫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큰아버님을 찾을 수 있었음을 이제야 밝히면서.


<벽 바르기>


팔순을 넘어서도 홀로 정정한

백부님 생각으로 문득

古宅 문간에 명태 두어 마리로 들렀더니

북어같이 마른 한 줌이 되어 백부님은

풀을 쑤고 벽지를 사 오고

낡고 닳은 벽지를 발라내며

문 활짝 열어 쳐 놓고 벽을 바르고 있다


섣달그믐을 바르고 있다


숭숭 구멍 뚫린 흙벽으로 온갖 얌체가 드나들고

가슴속 情恨같이 마른 쥐똥이 잡혀 나오는 흙벽 어디선가

지난 한숨만큼이나 숱한 먼지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눈 한번 끔쩍 않고

몇 올 남지 않은 수염 같은 붓으로

주름 앉은 늙음을 때우고

바랠 대로 바랜 기억의 문양을 되살리고

하늘의 높이로 일어나 천정을 바르고


팔순을 넘어온 그 머언 눈에 밤마다

천정을 넘나드는 저승사자가 보였는지


눈꽃만 같던 첫날밤이 생각 나서였는지

199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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