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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8)

만식이 그리고

by 명재신


만식이.


만식이는 엿장수 이름이야. 우리 면내 이름난 엿장수였지. 우리보다 근 열 살은 더 먹었지 아마도.


소싯적 세상에서 젤로 부러운 사람이 있었다면 만식이었을 거야. 늘 번지르르한 양복을 빼입고 성능 좋은 자전거로 수협 공판장을 왔다리 갔다리 하던 수협 상무보다 그는 우리들의 우상이었지.


아마도 장래 희망을 적으랬다면 우리 초등학교 3학년 때 여자 담임 샘 하고 결혼하여서 우리를 절망케 했던 수협상무보다는 만식이 같은 엿장수가 되고 싶다고 적었을 거야. 얼마나 자유롭게 엿을 먹을 수 있을까 그게 부러운 까닭이었기에 늘 만식이 주변에서 맴돌았던 기억이 또렸해.


초등학교 어느 해 봄 소풍날이었던가 봐.


고학년이 되었다고 어머니는 거금 50원을 뭐 사 먹으라고 주셨어. 역시 사람은 고학년이 되고 볼 일이야. 난생처음 받아 든 거금이었어. 하지만 쫌생이 기질이 어디 가나? 들뜬 소풍기분으로 행여나 아이들하고 쌈치기로 다 잃어버릴세라 아예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말았지. 잘 간수한답시고 어디 깊숙한 데 넣어 두었을 거야. 기억은 아니 나지만. 거시기 밑은 아니었든 것 같고. 양말 밑이 가장 유력해.


그런데 문제는 소풍을 가서였어.


만식이가 따라온 거야. 만식이. 그 튼튼한 어깨의 소유자이며 엿가락처럼 질긴 만식이가 그 고학년이라지만 조무래기들이 받은 용돈들을 모두 회수해 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만년 장사꾼 만식이가 놓칠 수 없었지.


봉래산 그 꼭대기 봉홧대 놓는 곳에까지 올라간 우리를 따라붙은 거야. 엿판 두 개나 들쳐 매고 말이야.


만식이만 없었으면 아무런 갈등 없이 가져온 김밥이나 몇 개 죽이고 아무런 사심 없이 보물이나 찾으면서 맘을 다스리고 있었을 것을. 거금 50원을 고이 가져다가 무얼 하든지 꼬불쳐 놓을 수 있었을 것을.


엿을 사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의 연속이었지. 거기다가 만식이 엿 밖에 아무것도 사 먹을 것이 없었어.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해발 500미터까지 하는 봉래산 정상까지 무얼 팔아먹겠다고 왔겠어?


그러고 보면 내 전생에는 아마도 엿장수였던가 봐. 엿만 보면 사죽을 못쓰는 내력을 들여다보면. 지금도 어디를 가면 간식으로 엿을 사들고 가는 걸로 보면, 오래전 울진에 살 적에는 오일장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엿판을 들르는 것이었어. 만약 내가 못 가는 날이면 아내에게라도 당부해서 엿봉지를 사들고 오는 걸 보면 괜한 말은 아닐 성싶어.


덕분에 지금은 성한 이빨이 남아나지를 않았긴 해.


그래도 내가 누구야? 나는 만식이 엿판에 강엿보다도 더 질긴 기질이 있었지. 나는 결단코 양말 밑에 가둬어 놓은 50원은 손도 대질 않았지. 내가 이겼지. 만식이 엿판 주변을 얼씬도 안 하는 것으로 내 소중한 50원은 굳은 거였지. 대단했다는 생각이야. 그 본능적인 욕구를 찍어 누르고 만식이가 밤 내도록 두어 되의 침을 발라 만들었을 거라는 엿을 사 먹지 않고 봉래산 그 하염없는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서 콧노래를 불렀었어.


그런데 50원 그거. 내 것이 될 운명이 아니었나 봐.


축정 수협상무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만 아니었다면 그건 내 손 안에서 굳었을 것을. 건너올 쑥섬 나룻배를 기다린다고 동네 조무래기들 하고 수협공판장 주변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다가 기막힌 것을 발견한 것이 사단이었어.


지금이야 '쑥섬호'를 타면 5분이면 닿는 거리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나룻배를 놓치면 건너가서 1시간 건너와서 1시간을 축정항에서 기다려야 했기에 지루한 시간을 기달릴 수가 없었지. 우리는 바로 옷을 벗어서 머리 위에 동여매고 바다로 뛰어들었겠지. 왜냐하면 우리는 고학년이었거든. 축정항에서 쑥섬까지 수영을 해서 바로 건너갈 수 있도록 적어도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우리는 수영을 해서 건너가는 법을 터득하거든. 토요일 반나절만 수업을 하고 축정항에 나와서 하릴없이 나룻배가 건너오기를 기다리기 무료하면 몇몇 짝을 지어서 그냥 가방보따리는 저학년들한테 맡겨두고 첨벙첨벙 뛰어들었어.


왜냐하면 우리는 적어도 쑥섬의 초등학교 고학년이었고 나는 애향단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내 돈이 안될라고 그랬나 봐. 바닷물로 뛰어들어 말어 하고 어슬렁 거리는 그때 바로 눈에 띄는 게 있었다는 거야.


자전거였여. 수협 상무가 타고 다니는.


그 단단해 보이던 수협 상무도 잠시 정신이 없었던지 키를 채워놓지 않고 자리를 비우고 있었어. 그런 것을 나 같은 고학년이 그냥 지나칠 수 없었지. 나는 애향단장이었거든.


고학년으로서 동네 조무래기들 앞에서 포옴을 잡으렸던지 아님 여자 아이들 앞에서 사나이로서 날쌔고 멋진 모습으로 휘날리고 싶어서였던지 나는 친구 권희를 꼬드겨서 그놈의 고삐를 잡아챈 거야. 뒤에서 잡아주기로 한 나의 단짝친구 권희를 의심한 건 아니지만 권희는 분명 대충 잡았던 거 같고 나의 꿈틀거리는 욕망은 대단했어.


그래. 그날 사고는 그렇게 일어났어.


혼자 잘 나갈 것 같던 자전거가 방향을 잃고 어어, 하다가 문희네 할머니 상점 유리창으로 돌진하게 된 것은 순전히 예정되어 있는 그날의 운명 탓이라면 탓이었지 결코 뒤에서 잡어주기로 했던 친구 권희의 잘못은 아니었어.


아아, 만식이 그 엿판을 지나치치 말 것을. 줄줄 흐르는 침을 단속할 생각만 했지 돌출한 만용을 제어하지 못하였던 탓에 결국 피 같은 50원은 유리창 변상비용으로 문희네 할머니 호주머니로 들어가 버렸고.


오그라진 자전거를 질질 끌고 수협상무에게로 가야 했던 나는 그때까지 전혀 존경하지 않았던 수협상무로부터 '괜찮다'는 말을 듣고부턴 나는 지금까지 그 수협 상무님을 존경하고 있어.


만식이 형님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 하매 70줄이 넘어있을 만식이 형님.


쑥섬에 건너오면 모든 집에 금속 붙이는 죄다 쓸어가고 아니면 할머니의 머리카락까지 잘라내 달라고까지 했었던 그 만식이 엿판은 지금도 나로도 어디쯤에서 그 좌판을 벌이고 가위를 쟁강대고 있을까?


바깥에 비가 오네?


갑자기 입이 궁금해지는 이 하염없는 비요일. 오후 다섯 시 시간은 더디 가고. 어디 엿 먹을 데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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