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친구들 그리고 오리똥눈디
쑥섬에는 참 재미있는 지명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빠진굴, 배밑에, 평널이, 마당널이, 솔밑에, 오지안, 노랑바구, 노루바구, 갈매기도팎, 우끄터리, 새집앞끄터리, 통안, 도런바구…..
오리똥눈디는 그중에 하나입니다.
‘오리똥눈디’의 좀 더 정확한 현지 발음은 ‘오리똥눈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름은 아직도 불리고 있는 쑥섬의 뒷먼(쑥섬 뒤쪽 벼랑이 있는 곳을 ‘뒷먼‘이라고 부름)에 있는 벼랑의 이름입니다. 풀어서 쓰자면 ‘오리가 똥을 누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오리는 바다가마우지를 말합니다.
주로 겨울철에 쑥섬까지 내려와서 주변에서 먹이활동을 하면서 쉬는 곳으로 오랜 시간을, 어쩌면 쑥섬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이전부터 그곳에서 서식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마우지가 집단으로 서식을 하면서 겨우내 싼 똥은 한해동안 그곳에서 하얗게 빛을 내면서 남아 있어서 멀리서도 뱃사람들에게 ‘저기가 쑥섬의 오리똥눈디‘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해 주었고, 컴컴한 밤에는 이 하얀 가마우지 똥에 섞여 있는 인 성분으로 해서 인광이 난다고 해서 목포 방면에서 여수 방면으로 밤에 이동을 해야 할 때에는 뱃사람들에게는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고 쑥섬 어른들이 그러셨습니다.
이곳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머언 쑥섬까지 함께 한 동창 친구들이 있었는데 당시에 그곳 오리똥눈디까지 다녀왔었습니다.
여수까지 와서 하루를 자고 다시 여객선으로 나로도항으로 가서 쑥섬으로 들어가야 하는 머언 길이었는데도 포항에서 따라 나섰고 함께 쑥섬에 들어가서도 다시 어쩌자고 가장 어려운 비렁길을 타고 오리똥눈디까지 내려간 친구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끝까지 함께 간 친구들이었습니다.
오리똥눈디 가는 비렁길이란 벼랑의 바위틈에 난 좁은 길입니다. 그 길들은 아무나 갈 수 없고 혼자서는 찾아들어갈 수 없는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쑥섬에서 뒷먼에 있는 오리똥눈디를 가기 위해서는 '옹삭한 비렁길/어려운 벼랑길‘을 타고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 길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구요.
하지만 저는 그 길을 알고 있었기에 그 친구들과 대나무 낚싯대를 메고 벼랑을 타고 오리똥눈디까지 내려가서 물고기를 주렁주렁 낚아서 다시 벼랑을 타고 넘어왔던 그 기억들로 해서 40여년이 되어가도록 서로의 세상에서 나뉘어 살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죽마고우라고 하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들을 저는 쑥섬의 형님들 또는 누군가와 함께 다녀오면서 익혔던 거 같고, 저는 또 저 밑에 동생들을 데리고 가면서 그 길을 익히도록 해 주려고 동생과 조카를 동행시켰던 것 같고 거기에 모처럼 머언 남쪽바다에 작은 섬이었던 친구의 고향섬에까지 함께 한 포항친구들에게 쑥섬의 명소 중에 명소인 그곳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이야 낚싯배로 잠시 돌아가서 내리면 될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오리똥눈디로 가는 길이 워낙 ‘옹삭해서‘ 쑥섬사람들조차도 가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가기만 하면 많은 ’갯것/해산물’과 좋은 물고기들을 잔득 잡아서 섬을 넘어올 수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 날도 포항친구들과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을 어렵사리 내려가서 물고기도 잔득 잡아서 넘어왔고 그 여정에서 사진도 남겨 놓았기에 아직도 저의 앨범에는 귀한 사진들이 여러장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반갑다 친구야’
그 뒤로도 여러 포항친구들이 머나먼 섬의 쑥섬을 다녀갔고 함께 오리똥눈디까지 동행을 해 주었기에 언제나 어느 때나 전화를 걸면 이렇게 반갑게 맞아 줍니다.
살아오는 일들이 늘 객지를 떠돌면서 하는 일이었기에 그리고 오랜 시간 해외에 파견근무를 나가 있었기에 전화를 자주 해서 안부를 주고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그렇게 환대를 해 주는 고향 친구들같은 포항 친구들.
이름하여 세상의 끝 오리똥눈디까지 다녀온 죽마고우 포항친구들
아직도 서울에서도 포항에서도 모임을 하고 있는 포항친구들입니다.
전국에서 모여들어 고교시절 기숙사에서 내내 한 솥밥을 먹었고 그 우정의 힘으로 험난 한 인생의 뱃길을 잡아 멀고도 지난한 인생의 항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쑥섬 오리똥눈디를 이정표 삼아 함께 항행을 해 준 친구들과의 우정으로 해서 따뜻하고 행복한 여정이었던 것입니다.
'친구야 잘 있나?'
그래서 이제는 세상의 끝에서 돌아왔으니 내년 봄에는 한번 쑥섬을, 오리똥눈디를 함께 다녀오자고 할 생각입니다.
'그래 잘 있다 친구야. 내년에 오리똥눈디 한번 다시 가보자 친구야.'
<포항 친구들>
아무나 가지 않는 길
아무도 가지 못하는 길
머언 쑥섬
험한 오리똥눈디까지 다녀왔으니
세상 어디라고
못 갈 데가 있으랴 싶어
베트남, 쿠웨이트, 아랍에미레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세상의 끝에서 돌아와
잊혀져 있다가 돌아와서
그래도 오랜만에 전화를 걸면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인사
아무도 묻지 않았던 안부
반갑다 친구야
잘 지내고 있제
고맙다 고마워
친구들아, 포항친구들아.
2020. 12.8
포항친구들과 쑥섬 오리똥눈디에서 낚시를 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함께 오리똥눈디로 나서면서 동백꽃길에서 친구와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