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패랭이
갯패랭이
장미가 가고 장마가 오고 있습니다.
작년에 쑥섬 고향집 빈 마당과 빈 화분에 잔뜩 뿌려 놓았던 갯패랭이 씨앗이 올해는 움을 틔어 순이 올랐을까 궁금합니다.
올 여름에는 갯패랭이 꽃이 만발하였다고 쑥섬에서 기별이 오면 서울의 누님 두 분을 모시고 쑥섬행을 할 겁니다.
장마가 가고 나면 말입니다.
작년부터 몸이 불편하시어 멀리 거동을 못하시는 큰누님도 저만큼이나 고향 쑥섬을 그리워하고 좋아하여서 그런 중에도 쑥섬은 마다하지 않고 다녀 오시더니 원기를 회복하시어 다시 씩씩해졌습니다.
겨울도 거뜬히 넘어오신 큰누님과 창신동 둘째누님을 모시고 다시 한번 고향 쑥섬을 다녀와야 올 한해를 거뜬하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병통치약입니다. 고향 쑥섬은.
그리고 큰누님이 앉아계셨던 '건몰짝 선창가' 그 자리에 갯패랭이 꽃대가 올라 있으면 누님 두 분을 거기 모셔다 놓고 사진을 멋지게 찍어 드릴 겁니다.
어머니와 누님이 앉아서 그간에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던 그 마지막 돌담길 가에도 갯패랭이 꽃대가 올라와 여름 더운 갯바람에 흔들리고 있을지도 확인해 보고 싶어집니다.
쑥섬을 떠나가 객지에서 주름을 키우고 있을, 쑥섬을 고향으로 하고 있는 뭇 영혼들을 불러 들이는 꽃,
갯패랭이 꽃들이 쑥섬의 빈 집 돌담 아래에서 장마가 오고 가는 중에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워 물기 시작하면 어쩌든지 마음이 동하여 쑥섬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을 모든 영혼들에게 어여 오라고 손짓을 하는 꽃, 갯패랭이를 만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무더위와 함께 찾아들 쑥섬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입니다.
갯패랭이
우리 누님 앉았던 그 자리에
올해는 갯패랭이 피어나 있을까
오고가고
피고지고
우리 엄니 앉았던 그 자리에
올해도 갯패랭이 피어나 있을까
바람이 지나가고 있으랴
구름이 건너가고 있으랴
꽃도 사람도
잠시 잠깐이더라
오늘은 또
누가 거기 그 자리에
앉았다가 떠나갈까
보고 지고
보고 지는 꽃.
2025. 06. 15
꽃섬 쑥섬은,
이제는 만인의 섬이 되어서 수많은 꽃들이 그리고 수국이 사람들을 불러 들이는 섬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흥이 난 수국들이 함박 웃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섬이 되었습니다.
수국도, 탐방객들도 웃음꽃을 만발하여 쑥섬 ‘앞멘/앞면‘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겁니다. 적어도 장마가 오고 가는 얼마까지도 수국은 쑥섬을 화안하게 밝히우고 있을 겁니다.
탐방객들이 온통 쑥섬을 채우고 있는 수국에 넋을 놓고 휩쓸려 다니고 있는 사이에 비좁은 틈바구니에서 누구 하나 키워내지 않아도 소리 소문없이 아주 조그맣게 꽃을 피워물기 시작하는 꽃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빈집 돌담 아래에서는 요란하지도 소란하지도 않게 다문다문 꽃대를 올린 갯패랭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장마가 무성해지고 모든 들풀들이 사그라져 가고 있을 때 척박한 돌담 틈에서 그리고 오래된 시멘트길 틈에서 순을 틔워 꽃대를 올린 갯패랭이 꽃들이 하나둘씩 피어나기 시작할 겁니다.
떠나간 이들을 반겨 맞으려 하고 있을 겁니다.
내 집, 내 고향을 한 번이라도 다녀가야 다시 한 해를 버텨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이야 탐방객들로 온갖 꽃으로 철철 넘쳐나고 있을 터이지만 한때는 정적만이 가득하던 섬이었습니다.
적요만 가득하였던 섬이었습니다.
칡넝쿨과 쑥대밭으로 섬은 다시 원시로 향하고 있었는데 쑥섬 '뒷먼' 바위틈에서 자생하던 이름도 잘 모르던 순들이, 꽃들이 어느 시간대에 빈집 돌담 틈바구니에서 순을 틔워 질긴 목숨줄을 부지하면서 왕성하게 꽃대를 올린 것들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갯패랭이였습니다.
누구 등에 붙어 뒤에서 앞으로 넘어 왔을까요?
어찌하여 '새집앞끄터리'와 '노루바구', '팽널이' 같은 비렁에 간간이 보이던 '갯패랭이'가 사람들 떠나간 빈집 돌담과 시멘트 길 틈바구니로 씨앗이 건너와 터를 잡고 꽃을 피워물기 시작했을까요.
언제 어디서 건너왔는지 모를 너구리 형제였을까요?
우끄터리 통안에 있는 '노루바구'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던 노루가 정말 돌아와서 그 씨앗을 옮겨왔을까요?
모처럼 고향집을 가면 생전의 아버지가 가꾸던 빈 화분에까지 갯패랭이 씨앗들이 옮겨와 꽃대를 올렸고 마당 여기저기 빈틈에도 씨앗들이 옮아와 꽃대를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십 년도 넘은 어느 여름에 고향집에 어머니를 뵈러 고향집을 찾아 들어갔을 때도 갯패랭이 꽃이 길가 틈바구니에서 잔뜩 꽃대를 올려 이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어미와 자식이 만나 길가에 주저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배경 속에서도 갯패랭이꽃은 함께 해 주었습니다.
한 몫을 해 주었습니다.
누님들과 어머니는 그 꽃이 피어있는 길가에 앉아 어머니의 온전한 정신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웃음꽃을 함께 피웠는데 그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는 건 아마도 갯패랭이꽃이 전해주는 안부 덕분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참 행복한 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요?
어느덧 70을 넘기신 서울 누님들도 이제는 어머니가 쑥섬에서 여생을 보내시던 그 시간대로 접어드는가 봅니다.
조금이라도 운신할 수 있을 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갯패랭이 꽃자리에서 찍은 서울 큰누님의 사진을 새삼 꺼내보면서 올해에는 어쩌든지 누님들을 모시고 쑥섬행을 이루어 보려고 합니다.
쑥섬의 갯패랭이 꽃이 피는 날에 들어가 형제들이 하하호호 다시 한번 웃음꽃을 피워내기 위해서입니다.
갯패랭이꽃을 닮은 우리 누님들을 모시고 말입니다.
장미가 가고 장마가 오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