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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섬이야기(53)

목단 그리고 마지막 출근길

by 명재신

‘목단 그리고 마지막 출근길’



이틀전에 정년퇴임식을 하였고 오늘은 마지막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포스코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근 40여년을 한 가지 업으로만 계속 해오면서 머나먼 시간 뒤에 있을 것만 같은 정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20여 년은 지방에서 서울에서는 약 10년을 그리고 지난 해까지는 약 13년을 해외 건설현장에서 보냈습니다.


고향 쑥섬에서 나고 자라고 난 뒤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출향을 하여 지금까지 지방과 서울과 중동을 오가면서 직장을 다닌 셈입니다.


그제 정년 퇴임식에서 팀원들과 가족들이 저도 모르게 근사한 퇴임기념 동영상을 합작으로 만들어서 틀어주는 바람에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감격하고 감동을 하였습니다. 가족들이 사진과 인터뷰 동영상을 제공하고 팀원들이 짬짬이 편집해서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 선사해 주어서 저를 감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작년에 정년이 도래했음에도 더 근무하도록 해 준 시간들과 함께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그간의 중동에서의 힘든 시간들이 한순간에 녹아서 감동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저만의 시간이 아닌 해외 현지에서 그리고 국내 각 현장에서 구슬 땀을 흘리고 있을 동료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격려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프로젝트 하나 쉽게 지나간 것이 없이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더 감회가 깊었습니다.


해외에서 근무를 하면서 저는 2권의 시집을 출간을 했습니다.


아부다비와 쿠웨이트를 오가며 근무하고 난 뒤에 제3 시집인 '아라비아 사막일기'를 2020년도에 출간을 하였고 사우디에서의 3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2024년에 제5시집 ‘세상의 끝에서 돌아오다’를 출간을 했습니다.


매일을 일기 쓰듯이 잡은 단상들을 모아서 시집으로 낸 것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제 3시집인 ‘아라비아 사막일기’는 동료들과 일상들의 현장감을 잘 살렸다고 해서 월간시 ‘2020 올해의 시인상’을 받게 해 주었고 그 해 여름에 KBS의 ‘우리 땅 예술기행‘의 라디오에까지 방송이 되었습니다.


함께 한 동료들과의 소중한 시간들과 사막에서 고향을 그리워 하는 우리 모두의 심경들이 독자들에게 가 닿았다는 평가였습니다.


그때 라디오를 통해 소개되고 낭송된 시 2편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목단’이라는 시였습니다.


아래에 소개를 해 드립니다.


‘목단’


고향 빈 집에

목단 피었으랴

바람, 햇볕, 구름

다녀가다

하루가 무료하지

않게

언젠가

주인어른들 떠나가시고

빈 집 되어

적요만 가득한 집

자식들 언제라고

한 번이라도 들를까 싶어

날을 기다리고

해를 기다리길

올해는 어쩌랴

싶어

꽃대를 올릴까

말까

출처 : 명재신 제3시집 ‘아라비아 사막일기’ 108p


생전에 아버님이 심어 놓은 목단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적에는 해마다 화사한 꽃을 피워서 고향집 마당을 화안히 밝히던 꽃이었는데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는 집에 아무도 살지 않았기에 목단이 홀로 꽃을 피우는지 아니면 사그라져 버렸는지 늘 봄 이맘때가 되면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해 봄에 고향을 찾아 들어간 빈 집에 커다란 꽃을 잔뜩 피워 놓은 목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빈 집에서 마치도 머언 사막의 땅으로 일하러 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의 화안한 얼굴만 같이 반겨 맞아주었던 것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다시 뵌 듯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다시 해외로 들어가서도 해마다 그 목단이 순을 올리고 꽃대를 올려서 꽃을 피우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어렵고 힘겨운 해외 생활을 견디고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돌아가 다시 너를 보리라‘


퇴임을 4월 30일자로 하게 되면서 마침 5월 연휴가 시작되는 이번 주에는 가족들과 함께 고향 쑥섬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이맘때 즈음에 쑥섬 고향 빈집을 훠언하게 밝히고 있을 목단을 가서 만나보고 싶어서입니다.


쑥섬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반겨할 것이 바로 고향 빈집에 ‘목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올해에도 꽃대를 올려 가족들이 빈 집에 왁작지껄하게 드리 닥칠 것을 기대하면서 이 봄날 좋은 봄볕을 받으며 하루하루 꽃대를 올리고 꽃망울을 달고 있을 것입니다.


머나먼 중동 땅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늘 마음을 지켜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던 고향 쑥섬과 고향 빈집을 지키고 있을 목단 덕분에 완주를 할 수 있었기에 이번 정년퇴직과 함께 쑥섬과 목단은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 2막의 여정을 밝혀주는 꽃등을 화안하게 켜 앞길을 열어 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그제 회사의 퇴임식에서 최고의 선물과 박수로 응원해준 회사와 동고동락을 함께 한 모든 팀원 및 동료 여러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함께 힘든 시간을 견뎌 준 우리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쿠웨이트현장에서 직원들과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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