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파도에 고기 들어온다
'한식파도에 고기 들어온다'
쑥섬 뒷먼에 '삼강망'을 3 틀을 막아 겨울과 봄철에 고기를 잡으셨던 아버지는 한식날을 깃점으로 깊은 바다로 내려갔던 물고기들이 다시 잡히기 시작한다고 그러셨습니다.
'먼바다 고기들이 돌아오는 날이여'
추자도나 여서도 근처의 제주해협 깊은 바다로 내려가 머물고 있던 회유성 물고기들이 쿠르시오 난류와 한식 즈음에 이는 파도를 따라서 남해 연안으로 돌아온다는 말이었습니다.
찬 바람이 이는 늦가을에 깊은 바다로 내려가는 농어, 감성돔, 참돔을 쫓아 손죽도, 광도, 평도를 거쳐 거문도까지 따라갔던 아버지는 겨울이 되면 쑥섬 뒷먼에 '삼강망'을 막기 시작했습니다.
쑥섬 뒷먼에 있는 '오리똥눈듸'와 '평널이' 그리고 '작은섬'에 있는 '솔밑에'에 물고기들이 이동하는 길목에 '길그물'을 막고 오가는 물고기들을 잡는 '삼강망'이었습니다.
이 그물은 '정치망(定置網)'의 일종으로 물고기들의 길목을 차단하여 바깥쪽으로 유인하는 역할을 하게 하는 '길그물'과 그 끝까지 따라 나온 물고기들이 한번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오게 하는 '분등/통그물'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사흘 정도에 한 번씩 들어 올려 '낙망'에 가두어져 있는 물고기들을 털어오는 것을 '물을 본다'라고 했습니다.
수온이 얼음장같이 찬 겨울에는 무엇이 잡힐 거 같지 않았지만 고맙게도 한류성 어류인 대구가 동해안으로부터 내려와 거제도, 통영, 남해도를 거쳐서 나로도 일원까지 내려와 준 덕분에 쑥섬의 '뒷먼'에서도 대구를 잡으며 삼동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함께 잡힌 물고기는 바다 물메기였습니다. 크게 돈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끓여 놓으면 시원한 맛으로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고, 명절 때는 살짝 쪄서 손님들 치룰 때 술안주로 안성맞춤이었기에 큰돈은 되지 않았지만 겨울을 나는데는 한 몫을 했습니다.
물때가 끼면 길그물과 통그물이 가라 앉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건져다가 한겨울에도 바닷가에서 물때를 씻느라 부모님과 형님은 고생을 하면서도 꽃피는 봄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봄날이 바로 한식날이었습니다.
한식날 즈음에는 머언 바다로부터 굼실굼실 커다란 '뉘/너울성 파도'가 밀려왔는데 폭풍우 때 이는 '짠짠구/작지만 거친 파도'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파도가 밀려들었습니다.
이를 두고 아버지는 '한식파도 한다'라고 했습니다.
'한식파도에 고기 들어온다'
한식날을 즈음해서 확실히 '삼강망'에 들어오는 물고기의 종류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물고기들은 작년 늦가을에 찬바람 따라 손죽군도와 거문도 일원에서 떠나보냈던 그 농어와 감성돔과 참돔들이 나로도 인근까지 다시 들어와 쑥섬의 뒷먼에서도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들어오는 회유성 물고기들은 아주 민감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연안으로 들어와서 5월 즈음에 산란을 하는 이들 어류들은 이동 중에 연안에서 낚시로 잘 잡히지 않을 만큼 조심성이 높고 민감해져 있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식날 즈음에 이는 너울성 파도로 해서 수중의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먹이활동을 위해 조류를 따라 이동하는 이들 물고기들이 이동 중에 '길그물'에 막혀 속절없이 '통그물' 쪽으로 유인되어 '낙망(落網)'에 모여들어 있었습니다.
'낙망'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도록 깔때기 형태로 되어 있는 '비탈그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지막 물고기들이 모여지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낙망'이 삼각형 꼭지점에 하나씩 있다고 해서 '삼강망'이라고 했습니다.
'한식파도에 고기 들어온다'
이 말은 결국 산란을 위해 깊은 바다에서 다시 연안으로 물고기들이 돌아온다는 의미와 한식 즈음에 자주 이는 너울성 파도로 인하여 바다가 뒤집어지면서 '정신없이' 조류를 따라 이동하던 물고기들이 '통그물'로 많이 들어온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한식날을 시작으로 싯가가 좋은 물고기들이 잡히기 시작하였고 그리고 물 반 오징어 반이라고 할 만큼 갑오징어가 많이 잡혔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봄철에는 고향 쑥섬에서 '삼강망'에 잡힌 갑오징어를 쪄서 반건조 상태로 보내와 기숙사 생활을 하던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그 맛이 좋아서 40년도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맛을 추억하는 친구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그 갑오징어들도 한식날 즈음에 이는 파도에 밀려서 '정신이 나간' 상태로 수면으로 떠올라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살아있는 상태로 물 위를 떠다니는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었습니다.
쑥섬에서는 뜰채로 물 위를 살아있는 상태로 떠다니는 갑오징어를 건지기 위해 작은섬 목넘에 자주 넘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물속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몰팎지/해초의 일종 '몰'이라고 함'와 함께 떠다니고 있는 갑오징어들이 많았습니다.
만물이 움을 틔우고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워내는 쑥섬 몬당의 생장의 세계와도 같이 바닷속에서도 온갖 생명들이 먼바다로부터 멀고도 머언 유영의 길을 멈추고 산란을 위한 먹이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시기였습니다.
쑥섬 주변으로 '서바닥/서바다'와 '동바닥/동바다'에는 '참새비/대하'라고 하는 새우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시기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쑥섬사람들도 한식날이 되면 한바탕 마을 축제를 하는 '화전놀이'를 몇 날 며칠을 한식 즈음에 시작해서 한바탕 놀이를 하고서는 바로 새우잡이를 위한 출어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뭍에서는 농사를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했지만 도서지방에서는 출어준비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마침 오늘은 한식이었습니다.
한식날은 한국의 4대 명절 중 하나로,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입니다. 주로 음력 2월 또는 3월에 해당하며, 양력으로는 4월 5일 또는 6일경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식날에는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서울은 오늘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조금만 일찍 봄비가 오늘처럼만 내렸다면 중남부 지방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대형 산불도 조기에 진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오늘 오는 봄비는 단비였습니다.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
한식날인 오늘 비가 왔으니 올 한 해 풍년이 들기를 소원합니다.
더불어 고향 쑥섬에도 꽃들이 피어나는 지금부터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들기를 바라면서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는 풍어가 드는 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물 보러 가자'
- 명재신
바람이 낸 길 오늘은 얼었다.
아침 물 보러 가자시던
아버지 어디로 가셨나
물밥을 오래 먹으면
물밑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겨울 대구 몇 쌍이나 들었는지 안다 하시더니
어디쯤서 물밑 세상을 헤아리고 계실 거나
아무도 따라가지 않은 길
그래도 물 보러 가자시면
앞서 가겠는데
어디, 물메기나 좀 들었으랴
대구 두어 쌍 찾아들면
춤이라도 추겠는데
물 보러 가지시던 울 아버지
오늘 삼강망은 물때가 잔뜩 껴서
무어 하나 기대할 수가 없다고
지청구만 사실라나
바람이 가는 길 오늘은 끊겼다.
출처 : 월간시인 2025.2월호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