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초사리 미역
<삼월 초사리 미역>
지난 삼월 삼짇날 늦은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저기요 명 시인"
뜻밖의 전화에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전화를 당겨 받았다.
"쑥섬 미역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년 전, 사우디에서 휴가 차 들어와 쑥섬에 다녀오는 길에 '삼월 초사리 미역'을 구해서 가지고 올라 왔었다.
그중에 미역 세 가닥하고 마침 쑥이 고향집 텃밭에서 마악 올라오고 있기에 직접 캐서 올라온 참이어서 집 근처에 살고 계시는 선배 시인께 적지만 쑥섬의 향이라면서 '쑥섬 쑥' 한 봉지를 쑥스럽게 함께 드린 적이 있었다.
선배 시인께서는 그 미역을 찾고 계신 듯했다.
"스승님 세 분께 드시고 기력을 찾으시라고 좀 보내드리고 싶어서요"
늦은 시간이어서 우선 간단하게 미역 좀 구해 달라는 말씀만 하시고 스승님 세 분의 주소와 간단한 인사 말씀을 써서 보내줄 터이니 미역 보낼 때 동봉을 해 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하지만 삼월 초사리가 되려면 좀 더 있어야 했기에 적어도 사월 초순은 넘어야 할 거라고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시인님의 연세도 팔순을 넘으셨는데 스승이라니, 그럼 그분들은 연세가 대체 얼마란 말인가?
선배 노 시인께서 찾고 계시는 햇 미역은 바로 쑥섬 갯바위에서 채취한 삼월 초사리 미역을 말하는 거였다.
이른 봄이 되면 쑥섬에 있는 바위란 바위에는 모두 미역 줄기가 붙었다. 어린 미역 줄기가 물 속에도 물 가에도 수없이 붙었고 그걸 기다렸다가 음녘으로 삼월 초사리가 되면 미역을 따기 시작했다.
'사리'는 바닷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고 많이 빠지는 시기로 음녘으로 1일~3일 사이와 15일~17일 즈음을 말하는 것으로 '초사리'는 음녘 1일과 3일 상간을 말하는 거였다.
달력을 따져보니 올해에는 양력으로 4월 1일부터 4월 3일 상간이었다.
미역은 이때가 가장 연하고 맛이 좋았다. 이때 나는 미역을 '삼월 초사리 미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역철이 되면 갯바위가 아주 미끄러웠고 '궂늬/너울성 파도'가 자주 일어서 자칫하다가는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기도 했었다.
미역철에는 '새끼줄을 허리에 둥치고/감고 미역을 해야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있었다.
미역을 채취하다가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면 허리에 감아두고 있던 새끼줄에 신고 있던 신발이나 짚신을 묶어 던져 주어서 얼른 건져 올렸다는 말이었다. 일종의 구명줄이었다.
그만큼 미역철에는 위험이 뒤따랐다.
갓 채취한 생미역은 무겁기 때문에 미끄러운 갯바위에서 베어서 위로 올리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따서 올린 것을 '본마당/동네마당'까지 운반해 오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룻배와 개인 배를 동원해서 쑥섬 '뒷먼/뒤편'에서 운반해 왔었고 그것들을 다시 '덕석/멍석'에 생미역을 그대로 하나하나 '붙여서' 말려야 했었다.
행여나 날이라도 궂게 되면 애써 따온 미역들을 제대로 건조시키지 못하여서 누렇게 색이 떠 버리게 되면 상품가치가 낮아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잘 말린 쑥섬 미역은 인기가 좋았다. 나로도 오일장에서나 객지에서 찾는 분들이 많았다.
아내도 울진에 십여 년을 살 때 근처에 궁궐 진상품이라는 '고포 미역'을 구해서 먹거나 친정 근처에 있는 잘 알려진 '기장 미역'을 구해서 먹었지만 이제는 '쑥섬 초사리 미역'을 으뜸이라며 쑥섬 미역만을 찾았다.
쑥섬 미역도 요즈음은 '생미역'을 그대로 말리지는 않는다.
살짝 데치고는 찬물에 바로 씻어서 줄에 걸어 말린다. 그러다 보니 불순한 일기의 영향을 적게 받고 미역을 해 먹을 때 끈끈한 진액을 씻어내는 수고도 덜 수 있어 이전보다 말리는 것도 좀 수월해졌고 맛도 더 좋다고 했다.
관건은 어떻게 미역을 제철에 따서 마을로 가져올 수 있느냐였다. 미역을 하는 철에는 여전히 바다가 사납고 미끄러워서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어서 젊은 장정이 아니면 쑥섬 뒷먼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을 미역들을 채취를 할 수도 옮겨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우끄터리나 마당널이 그리고 노랑바구 근처에서 나는 미역 정도만 채취가 되고 평널이니 배밑에 그리고 오리똥눈듸 등에서 자란 미역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대로 묵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침 쑥섬에 집안 형님 두 분 부부가 미역을 철마다 채취를 해서 쑥섬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특산물로 팔고 계셔서 해마다 구해서 잘 먹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나는 쑥섬에 전화를 넣어서 두 분 집안 형님께 지금 미역을 구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어쩐 일인지 삼월 초사리가 다 되었는데 아직 미역이 많이 보이지 않은 데다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미역도 해 걸이를 한다는 말이었다.
적은 양이라도 하게 되면 첫출을 좀 보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왜냐하면 선배 시인께서 보내온 글을 보고서 어쩌든지 쑥섬 초사리 미역을 꼭 구해서 팔순이 넘으신 선배 시인의 스승님 세 분께 보내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스승님께
이제 삼월인데 아직도 날씨는 봄 기지개를 켜지 않는 듯
찬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따스한 햇볕에 개나리 진달래 방끗 웃겠지요
선생님 겨우내 어찌 지내셨는지요. 노구에 괴로우셨으리라 생각되옵니다.
새봄에 모든 초목이 솟아나도록 머지않아 공기도 따뜻해질 터이니
조심조심 바깥 외출도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되옵니다.
선생님 우선 식사를 잘하셔야 합니다.
여기 저의 문우 고향 고흥 쑥섬의 맛 좋은 미역 한 오리 보내드리오니
입맛을 돋우시고 회춘하소서
늘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도 시원찮은 건강 상태 쑥섬 미역국 끓여 먹고 기운 차리겠습니다.
찾아뵐 때까지 안녕히 계셔요.
팔순을 넘어서도 스승님 세 분을 챙기시고 위하시는 선배 시인님의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기 때문이었다.
<쑥섬 이야기>
고흥 쑥섬은
질 좋은 쑥으로 이름이 드높아 쑥섬이랍니다.
남풍이 불면 쑥섬 몬당 양지바른 곳에서
아리따운 우리 누님들 삼삼오오 쑥을 뜯으며
아지랑이 살랑거리는 여자 산포바위까지 나아가
서울로 돈 벌러 간 언니 오빠 이름 부르며
머언 하늘바라기를 하였드랬지요
내 고향 고흥 쑥섬에서는
음력으로 삼월 초사리 미역을 으뜸으로 쳤지요
허리춤에 새끼줄 둘러맨 섬 아낙네들
쑥섬 뒤 마당널이ㆍ팽널이ㆍ노루바구ㆍ중빠진 굴
사람 가기 어려운 곳 아랑곳하지 않고
먼 바다 너울 속에서도 초사리 미역 따러
훌렁 훌렁 바닷물로 뛰어들었지요
쑥섬 보리마당에 초사리 미역이 지천으로 널리우고
몬당 섬 쑥으로 만든 쑥 지짐 향기 가득하여
보릿고개도 절로 절로 넘어갔더랬지요
제4시집 '쑥섬 이야기' 중 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