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죽음을 향한 항해이다
삶은 '나고(出) 들어감(入)'이다
삶의 최초 출발은 정자와 난자의 만남이다.
정자는 아버지 생식기에서 나와 난자가 있는 어머니 생식기로 들어간다.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성장기를 거쳐 사후에는 무덤으로 들어간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자궁의 작은 구멍에서 나온다.
생을 마칠 때는 무덤의 큰 구멍으로 들어간다.
생의 시작은 정자와 난자로 아주 작다. 생의 과정은 몸집이 커가는 것이고 생의 종말은
줄어든 몸집이 된다.
사후에는 땅 속에서 오랜 세월 후 아주 작은 분자로 흩어질 것이다.
그 유한한 生과 死 사이에 '삶'을 엮어간다.
개인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해의 의미는 세대에 따라 다르다
새해가 밝았다.
아이는 한 살 더 먹는다고 좋아한다. 아버지는 한 살 더 늙는다고 푸념한다.
할아버지는 죽을 날이 1년
가까워졌다고 한탄한다.
아버지가 밥벌이를 위해 몸이 축나는 동안 자식은 몸집이 자라고 머리가 커져간다.
개인의 역사는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긴다
개인은 본능적 욕구 충족과 정신적 가치 실현을 위해 분투한다.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공동체 규율과의 줄다리기의 연속이다.
그 결과로 정신적인 면에서는 희로애락을
육체적인 면에서는 생로병사가 펼쳐질 것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느냐는 순전히 생물학적 과정이지만
태어난 신분에 따라 삶의 굴곡은 달라질 수 있다.
역사적인 예를 들어보자.
단종이다.
그는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났다.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철종.
강화도의 나무꾼이었다. 세도정치가 극성했던 조선 말기에 태어나 본인 능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불쑥 임금 자리에 올랐다.
삶은 죽음을 향한 '요동의 항해'이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행복의 날개를 달 것인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인가.
개인의 삶을 평가할 때 혹자는 당연한 결과라 여기는데 혹자는 운명이라 평가한다.
누구나 행복의 호르몬과 분노의 호르몬을 갖추고 있다.
쾌감을 느끼는 신경계와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계 또한 있다.
과연 평생을 살며 행복과 통증의 장치 그리고 분노와 통증의 장치 중 어느 것이 더 많이
작동할 것인가.
행복과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체내 기관이 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누릴 수 없다.
누구나 편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지만 어떤 이는 고통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뜻깊은 경구를 알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삶의 실체이다.
숨과 함께 하는 동안의 행복이나 불행은 자기 몫이지만
숨이 멎는 순간, 개인사는 타인의 평가에 맡겨진다.
생을 마감할 때 조문 온 지인들이 망자를 기릴 것이다.
망자에 대해 주로 언급되는 것에 평가가 담겨 있다.
개인사가 가문을 빛내는 역사일 수도 있거니와 민족사의 영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치욕의 장본인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의 본질: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자 사회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
평균수명을 넘기고 별다른 질병 없이 평안히 숨을 거둔다.
천수를 누리고 몸의 역사를 마친 것이다.
누군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급작스런 죽음이다. 사고사이다.
제 명대로 살지 못한 것이다.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다가
본인이 희생을 당한다.
의로운 죽음이다.
마음도 멈춘다. 몸의 역사가 끝난다.
죽음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몸의 역사가 끝나게 되는 원인이 몸밖에 있을 수도 있고 몸속에 있을 수도 있다.
출발이 오장육부 중 폐에서 먼저일 수도 있고 콩팥일 수도 있다.
모든 결과는 심장으로 귀결된다.
심장의 전기적 신호가 중단되면 심장근육의 움직임이 사라진다.
우렁찼던 고동이 멈춘다.
심장이 멈추면 오장육부, 뼈, 근육, 뇌 등 몸의 모든 시스템이 영원한 휴식으로 들어간다.
몸의 면에서 죽음은 천수를 누린 사람, 제 명에 살지 못한 사람 등 제각각이다.
생물학적 실체라는 관점에서 본 것이다.
죽음의 성격은 다르다. 숨이 멎는 순간 가족만의 슬픔일 수 있고, 온 국민의 슬픔인 경우가 있고
인류가 가슴 아파하는 경우도 있다. 몸이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의 소멸과 부활
살아생전에는 직업 활동, 사회 활동으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움직인다.
죽는 순간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땅속으로 들어간다.
사회로부터 단절 같지만 사실은 새로운 관계망 속으로 편입된다.
몸속 박테리아와 땅속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기 시작한다.
생명의 불꽃이 꺼지고 나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생명체를 이루고 있던 모든 분자들은 해체되어 다른 생명체로 이합집산
될 것이다.
생명 순환의 이치이다.
내 육신이 소유하고 있던 분자들이 다른 생명체의 일부분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체의 순환이요, 관계의 그물망이요, 생명공학적인 윤회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