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m vita est, spes est.
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과거에도 참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꿈꿨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사실은 결국 그만큼 힘든
삶의 조건이 인간의 모든 세대마다 있었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희망이 없는 현실 가운데에서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꿈꾸는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영원이 신의 시간이라면 유한은 인간의 시간일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고통스러우나 신의 시간 속에서 보면 그저 흘러가는 한 점과 같을 것이다. 인생에는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 악보가 주어지고, 그것을 어떻게, 무엇으로 연주하는지는 개인 각자에 달려 있다.' (p280 라틴어 수업/ 한동일/ 흐름출판)
탄생 이전
하늘 아래 단 하나인 고귀한 존재, 나.
부모 혈액형의 조합과 DNA 23쌍으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존재는 오로지 나 한 명뿐이다. 자아가 형성되어 나를 뒤돌아봤을 때, 비로소 나는 은하계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알았다.
가깝게는 부모와의 인연이다. 아버지의 정자가 어머니의 난자와 수정되어 이 순간 이 자리에 살아남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몸,
어머니의 몸,
어머니의 몸에 아버지의 몸이 들어간다.
아버지가 보낸 대표가 우리 조상 가문, 아니 인류 태생 이후 중단 없이 넘겨준 몸 정보를 23쌍 염기서열의 DNA에 밀도 있게 담아 어머니 난자의 DNA와 만나게 한다. 이렇게 나는 아버지의 몸과 어머니의 몸이 만나 나의 몸을 갖게 되었다.
탄생이란?
태어나는 순간 울음이 있다. 세상에 나의 존재를 신고하는 것이다. 태어날 때는 우렁찬 소리였으나 죽는 순간은 침묵이다. 입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생명의 시작은 소리이고 생명의 끝은 영원한 침묵이다. 첫 숨은 마지막 숨을 향한 역사적 출발이다. 유한한 나의 삶은 영속적인 가문의 연결고리가 된다.
아버지는 타인이었던 어머니를 만나 나를 나았다. 나 또한 타인이었던 아내를 만나 자식을 낳았다. 자식 또한 타인을 만나 손주를 나을 것이다. 개인은 타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후손이 이어져 문중을 잇게 되고 국가의 국민이 된다.
내 몸은 어디에서 왔을까?
부모의 몸에서 내가 태어났다. 분명하다. 부모의 부모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끝까지 거슬러 가보자.
드디어 모든 생명체의 출발점이 되는 공동조상인 '원시 단세포'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 단 세포가 다세포로 발전되고, 포유류, 영장류를 거쳐 인간에 이르렀다. 그 인간 무리 중 어떤 일부는 아프리카로 어떤 일부는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민족의 시원을 이루었다. 늘어난 집단은 가계 혈통을 이어가면서 특정 성씨를 갖는 몇 대손인 오늘의 내가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삶은 죽음을 향한 빛나는 여정이다. 태어나는 순간, 죽음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삶의 여정을 채워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헛것이 형태를 지어 일시에 머무는 것이요, 그 형태가 다시 흩어져 헛것으로 돌아감이니 죽음을 너무 서러워하거나 애통해하지 말 일인 것이다…(아리랑 3권/조정래/해냄/2016)'
삶의 시작과 끝이란?
태어날 때, 대통령도 무수리도 일성一聲,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자기의 존재를 알린다.
죽을 때, 최고의 권력자도 거지도 한 숨을 거두며 일생을 마감한다.
일생의 시작은 숨으로 시작해서 숨으로 끝난다.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 부모 간 사랑 행위의 결과물에 따른 것이다.
부모의 교합 속에 아버지 조상들의 DNA가 담긴 정자가 어머니 조상들의 DNA가 담긴 난자를 향해 뿜어져 나가는 사정은 인간 최대 쾌감이다. 이렇게 두 조상 DNA를 한 몸에 물려받은 태아는 10개월 뒤 세상 세계로 진출한다. 이때 신생아는 울음을, 부모는 감사의 기쁨이 터져 나온다. 탄생은 부모의 축하 일색이지만 성장과정은 근심이 태반이다. 신생아 시절에는 포대기에 싸여 해맑은 미소뿐이다. 성장하면서 겪게 될 희열과 우환의 총량은 이 미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태어나는 것도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역사는 시작된다.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인간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사라져도 인간의 역사는 진행될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는 요람에 수평으로 누워 있다. 자라서 활동할 때는 땅에 수직이며 죽은 다음에는 땅속에 수평으로 눕는다.
누구나 영원한 침묵으로 들어간다.
태어나는 순간과 죽는 순간을 나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어떤 이에게 기쁨과 슬픔을 안겨준다.
태어날 때는 부모가 기뻐하고 죽을 때는 자식이 슬퍼한다. 나는 알 수 없다. 태어난 다음, 이루어지는 한 평생은 나 자신이 가장 많이 아는 영역이다.
죽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되기도 한다. 계획을 세워 건강 관리를 잘해서 장수하는 것은 나의 의지의 결과요, 갑작스러운 사고사 당하는 것은 나의 의지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더 많다. 지옥이 두렵고 사후 심판받을 것이 두렵다지만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선업善業, 공덕公德을 쌓기도 쉽지 않다. 사후 세계가 두려워 종교에 기대기도 한다.
내 몸의 노정
몸을 움직이는 것은 근육과 뼈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 삭신이 아프다는 소리는 근육과 뼈를 혹사했다는 것이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것은 노심초사해온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눈으로는 나와 관계 맺은 모든 인연들의 상像을 담아 왔다.
코로는 내게 근접해오는 사물의 냄새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대상인지 아닌지 판단하였다. 혀는 평생 내 몸속으로 들어간 생명체들의 맛을 겪어 보았다. 손은 내가 살기 위해 접촉해야 했던 모든 사물의 질감을 겪어 보았다. 입은 날 먹여 살리기 위해 평생 음식을 씹어 삼켰다.
심장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 뱃속에서 박동 치다가 눈을 감는 그날까지 쉼 없이 일했다. 폐는 사는 동안 쉼 없이 숨 쉬었다. 산소를 받아들여 세포에 공급해서 몸이 살아 있도록 하고 이산화탄소를 몸 밖으로 배출했기에 질식하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위장이 없었으면 아무리 입속으로 맛있는 음식이 들어와도 영양 흡수를 못했을 것이다. 항문과 요도가 없었으면 그 수많은 음식찌꺼기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면 독성으로 몸이 망가졌을 것이다.
성기가 없었다면 하늘이 내려 준 선물, 운우지락과 내 자손을 남기는 가문의 역사를 어떻게 남겼을 것인가
생물학적 개인사
내 몸의 역사는 시작과 끝이 다른 생명체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시작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요,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어머니의 출산에 따른 것이다. 살아가는 에너지는 음식으로 섭취되었던 또 다른 생명체인 식물과 동물이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병은 아주 조그마한 몸밖의 미생물이요, 죽어 몸이 해체되는 것 또한 미생물에 의한 것이다.
자녀가 한 살 먹는다는 것은 부모도 한 살 먹는다는 것이다. 자녀가 한 살 먹는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부모가 한 살 먹는다는 것은 남은 수명에서 1년을 덜어내는 것이다. 자녀가 자라는 것은 부모의 뒷바라지가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뒷바라지는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것이요, 마음을 써서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 되어 태아의 심장박동이 시작되는 순간 한 살이 된다. 반면에 잔여수명 남자라면
78세에서 D-78년, 여성이라면 D-83년이라는 생명의 시계가 카운트 다운되는 것이다.
부모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으로 출근한다. 생존의 전쟁터이다. 스트레스받으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생명의 시계에서 잔여수명 중 하루를 차감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자녀는 하루 동안 성장하고 대를 이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먼 훗날 부모의 심장이 멎고 세상과 하직하는 날 자녀가 집안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한 집안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와 부모
자녀가 한 살 먹는다는 것은 부모도 한 살 먹는다는 것이다.
자녀가 한 살 먹는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부모가 한 살 먹는다는 것은 남은 수명에서 1년을 덜어내는 것이다.
자녀가 자라는 것은 부모의 뒷바라지가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뒷바라지는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것이요,
마음을 써서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근육과 뼈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이들어 삭신이 아프다는 말은 근육과 뼈를 혹사했다는 것이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것은 노심초사해온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조상을 모시는 시제 행사에서 절을 하고 있는 모습
죽음이란
심장의 첫 박동으로 시작된 생, 삶의 역사는 심장의 마지막 박동으로 끝난다.
생명체로서의 시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체부터이고 마지막은 세포 활동이 멈춘 때이다. 생의 시작은 부모의 사랑 행위로 비롯되었으나 생을 마감하는 방식은 부지기수이다.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할 수도 있지만 질병사, 사고사 등 마지막은 다양할뿐더러 예측하기도 힘들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의 시계가 작동된다. 인생이란 유치원, 초중고대를 거쳐 사회생활, 결혼, 육아, 자녀 결혼을 거쳐 무덤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주어진 수명에서 1년씩 차감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 활동공간으로부터 작별할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명심할 한 가지! 내가 남은 수명을 소모하는 동안 내 자녀는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음이 두려운가?
우리는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니까. 멀리는 진시황의 불로초부터 가까이는 현대의학의 노화 장수 연구까지 시대를 초월한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면에서 살펴볼까?
우주의 역사를 보면 생명체의 탄생 극적인 드라마도 있지만 '멸종'이라는 비극도 함께 한다. 이것은 우주 자체의 탄생 자체가 그러하다. 약 137억 년 전에 '빅뱅 Big bang'을 통해 출현해서 각종 은하계가 생겨났지만,
한편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이것은 지구가 속한 은하계 또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영겁에 걸친 세월 동안 지구는 태양을 돌고 또 돌았다. 그러한 사이에 산맥, 바다, 대륙이 출현하고 또 사라지기도 했다. 국가도 흥망성쇠가 있으되 개인은 더욱 그러하다. 성공을 위해 피눈물 흘리지만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가 늘 있을 수밖에 없다.
죽음은 슬픔만은 아니다
태어나고 죽을 때 모두 울음이 있다.
태어나 세상에 대한 첫 신고는 '나의 울음'이다. 죽는 순간은 가족들의 '울음'이다. 태어날 때 나의 울음은 가족들의 웃음이 된다. 죽는 순간은 나는 침묵하고 가족들은 '슬픈 울음'이 나온다. 태어날 때 세상에 대한 신고는 울음이다. 의미 없는 외침이다. 세상을 하직할 때는 유언을 남긴다. 나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압축된 표현이다.
태어날 때 기뻐하는 사람은 가족을 중심으로 몇 명에 한정된다. 죽을 때 슬퍼하는 사람은 더 많을 수도 있고 더 적을 수도 있다.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슬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만큼 내가 살아온 역사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덕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이 따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