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대상은 인체이다.
그러나 이 인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의학의 이론적 체계가 달라진다.
기존의 동서의학은 인체관과 질병관이 서로 다른 면이 많았다. 다 같이 인체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서양의학에서는 인체구조를 단위로 환원시켜 다루었고, 동양에서는 언제나 全一的 생명체로 보고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였다.
서양의학에서는 인체의 물질적 현상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분석하였으며, 한의학에서는 거시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동태적 생명현상을 중시해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서양의학에서도 생명공학과 뇌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한의학의 몸과 마음의 전일적 관계(全一的 關係)에 대한 실증적 사례들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1. 서양의학의 특징
서양의학에서는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해부학의 발달로 인체를 하나의 독립된 개체 또는 물질로 보았다.
현미경의 발명으로 세포가 발견되면서 인체는 세포를 기본단위로 형성되어 세포, 조직, 기관이라는 유기적
결합 관계를 이룬다고 보았다. 이러한 실체적 물질관은 분자생물학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면서 인체를 분자적
수준에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진단 분야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자연과학적 진단기술이 발달하면서, 의학에서도 화학적, 물리학적으로 측정하고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는 것, X선, 초음파, CT, MRI 및 fMRI, PET에 나타나는 것을 중시했다.
하지만 유명한 독일 심신상관 의학자 툴 폰 우엑스퀼(Thure Von Uexkull)은 죽음을 몇 달 앞두고 (2004년)
"요즘 현대 의학의 문제점은 질병을 규명하기 위해 세포의 결함과 유전적인 요인에 집중하면서 심리사회적
측면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심신상관 의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당시 96세였던 우엑스퀼은
‘의학의 동물학화 경향'을 우려하면서, "결국 의학에서 인간을 축출시키는 일은 없기를”바란 다고 하였다.
2. 동양의학(한의학)의 특징
동양에서는 인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이러한 생명체가 어떻게 생명현상을 유지하는가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인체는 단순한 독립적 개체가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더불어 사는 환경적 존재라는 인식 아래 인간을 소우주로 보았다. 소우주인 인체는 장부(臟腑), 오관(五官), 사지(四肢) 등 내외(內外), 표리(表裏)가 모두 그물과 같은 정체적 관계(整體的 關係)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정체적 관계는 경락이라는 기의 통로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우주만물이 기에 의해 형성된다는 기일원론적(氣一元論的) 입장을 유지하였다. 즉 인체는 정(精)·기(氣)·신(神)이 상호 의존하면서 내적으로는 음양의 동태적 평형(動態的 平衡)을 유지하고, 외적(자연환경)으로는 육기(六氣: 風寒暑濕燥火)와 조화를 이루며, 사회적으로는 심리적 조화를 이루어 정상 생활을 영위한다고 보았다.
3. 동서양 의학의 만남
근대 과학의 기초를 마련한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을 서로 다른 실체로 보는 심신이원론을 주장했고, 현대 과학과 의학은 몸과 마음을 서로 분리된 체계로 생각해왔다.
‘몸의 병'은 의학에서,‘마음의 병'은 심리학에서 연구해오게 됐다. 최근 일부 의학과 심리학에서는 몸과 마음을 서로 분리해서 보던 관점을 탈피해서 통합적으로 보기 시작하였다.‘몸의 병’을 연구하던 의사들은 환자의 심리적 상태가 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었고,‘마음의 병'을 연구하던 심리학자들은 마음의 상태는 몸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의 인지과학과 뇌과학의 발전으로 몸과 마음이 뇌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역동적으로 순환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몸과 마음을 불가분리의 관계로 보는 한의학과의 소통이 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