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 성분(性分)과 한방: 기미(氣味)/ 귀경(歸經)
한방의 기미론(氣味論)을 이해하기 위하여
'봄기운이 완연하다' 할 때 봄기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을 단풍이 울긋불긋하다' 고 할 때 과연 어떤 색깔을 말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한의학의 추상적인 개념을 과학적 근거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봄기운이 완연하다는 것은 주관적인 정서이다. 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실체는 무엇일까? 겨우내 나뭇잎 하나 없이 헐벗은 상태로 있다가 가지마다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연두색을 띤 잎이 하나 둘 늘어간다. 봄이 시작된다는 것을 나무의 변화에 비춰보면 연둣빛으로 가득 채워져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연둣빛 나뭇잎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것이 멀리 떨어져서 보면 나무가 연둣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가을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것은 울긋불긋하다는 색깔로 표현된다. 울긋불긋한 색깔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나뭇잎이 붉어진다는 것은 카로틴 물질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노랗게 물들어간다는 것은 크산토필이란 물질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즉 정서적인 표현에는 그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한방의 기미론과 귀경론은 한약과 인체를 기(氣)라는 측면에서 설명한 개념이다. 추상적이지만 임상적으로 인체에 적용하는 것이기에 그 실체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한약이 가지고 있는 기미론(氣味論)에 따른 약성(藥性)과 주치(主治)는 성분(compound)이라는 약리활성물질(藥理活性物質)이라는 실체가 체내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양방의 용어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이고 한방은 광의적이고 추상적이다. 예를 들어 한방에서 열증(熱證)이라 하면 상열감(上熱感), 도한(盜汗), 자한(自汗)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양방에서는 고혈압처럼 질환명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다. 약물도 그러하다.
한방 양방이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과 접근법이 다르다 할 지라도 모두 인체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면에서는 모두 실제적이다. 한양방 의학사를 보면 환자 치료에 대한 수많은 임상을 통해 체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날까지 굳건히 전승돼 올 수 있었던 것은 치료 성과로서 그 존재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기미론/귀경론있다면 양방에서는 성분(成分)이 있다
한방의 약물치료는 한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양방은 양약이다. 한약은 치료기전은 기미론과 귀경론이며 이에 따른 효능(效能), 주치(主治)로 설명한다. 본초서에 잘 나와 있다. 기미론은 약성을 기와 미로 설명하는데 기는 한열온량평(寒熱溫涼平)이고 미는 감고함신산(甘苦鹹辛酸)이다. 즉 약물이 가진 약성이 기와 미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는 차고(寒), 뜨겁고(熱), 따뜻하고(溫), 서늘하고(凉), 따뜻하지도 차지도 않은 중간 정도(平)를 의미한다. 미(味)는 약물이 가진 맛이다. 달고(甘), 쓰고(苦), 짜고(鹹), 맵고(辛), 시다(酸). 약물은 이러한 성미를 바탕으로 경락을 타고 각기 고유한 장부에 작용을 한다는 것이 귀경론이며, 이에 따른 효능(效能)이 발생하여 주로 치료(主治)하는 증세가 있다는 것이다.
양약의 성분(compound)을 중심으로 약물이 표적 하는 대상인 수용체(receptor), 효소(enzyme)를 통한 세포신호전달(cell signaling)로 치료기전을 설명한다.
한양방 치료의 접근방식과 분석의 논리가 다르다 하더라도 공통점이 있다. 질환이 치료되는 것은 몸속에 들어가 작용하는 실재적인 물질 즉 성분(compound)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분에 따른 약물의 발현기 전이나 치료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양방 상호 소통되는 접맥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한방의 귀경론(歸經論)을 양방의 성분(成分)으로 이해하기
한약 중 자소엽이 있다. 꿀풀과(순형과 Labiatae)에 속하는 차조기를 말하는데 들깨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감기나 소화 처방에 많이 사용된다. 기미론으로 보면 온(溫: 따뜻하다)한 성질이며 미는 신(辛: 매운맛)하다. 귀경은 폐(肺), 비(脾)로소 폐경과 비경락에 작용하며 효능 주치는 해표산한(解表散寒)으로서 표(表)에 작용하여 풍한의 사기를 발산시켜 감기, 기침, 가래 증세 등을 치료하는 것이다. 보통 기미가 신온(辛溫)한 약물은 혈류량 증대를 통한 위축된 근육을 풀어내어 압박된 신경의 해소로 증세를 치료한다. 즉 매운맛을 가진 약물은 따뜻한 성질이 있는데, 이것은 혈류량 증대 즉 혈관 확장이나 강심작용(强心作用)을 통해 몸을 따뜻하게 한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자소엽이 갖는 신온(辛溫)한 성질((氣味기미)이 폐경락과 비경락(歸經귀경)에 작용하여 기표(肌表: 피부 가까운 부위)의 울체된 상태를 풀어줌으로써 감기 같은 증세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중국,일당귀는 甘辛溫 즉 辛味가 있기에 발산효과가 지만 한국산 당귀는 辛味가 없어서 발산효과가 없다. 발산효과가 있어서 발한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기에 효과(발산 작용이 있어서)가 있으나 한국 당귀는 그렇지 않다.
한약의 특정한 성분은 인체의 특정한 부위에 작용한다. 예를 들어 한약에 함유된 사포닌은 호흡기계에 거담작용을 한다. 호흡기계는 한의학에서 수태음폐경에 해당한다. 즉 사포닌이 함유된 한약은 수태음폐경에 작용하는 것이 많다.
가래 증세가 있을 때 인삼, 길경(도라지), 원지 등을 달여 마시면 가래가 잘 배출된다. 이것은 위 약재들에 함유된 사포닌(saponin)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삼은 대표적인 보기제로서 기운을 북돋는 약이고 원지는 뇌신경 작용이 있어서 기억력을 증강시키는 총명탕에 사용된다. 길경은 도라지를 건조한 것으로 가래 증세가 있을 때 사용된다. 가래 증세에 길경이 사용되는 것은 납득이 되지만 보기제인 인삼이나 뇌신경 작용에 쓰이는 원지 또한 가래 배출에 효과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공통적으로 사포닌 saponin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포닌은 벤젠링이 5개인 구조로 되어 있는데, 당귀, 천궁, 전호 같은 미나리과(umbelliferae)에 많이 들어 있다. 이 사포닌은 우루산계(ursolic acid)의 약물로 (사포닌 구조에서 19,20번에 각각 methyl기가 있다.) 수태음폐경인 호흡기 점막(mucosa)의 섬모운동을 촉진시켜 가래 배출을 시키는 거담(祛痰) 작용이 있는 것이다. 이때 사포닌은 점막을 통과해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점막 표면에 붙어 있는 이물질이나 가래가 점막으로부터 분리해서 체외로 배출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길경의 사포닌은 인삼 사포닌에 비해 거담 능력이 더 뛰어나지만 용혈 작용이 있다. 따라서 인후부에 염증이 있는 상태에서 길경을 투여하면 각혈을 할 수 있다. 이때에는 용혈 작용이 없는 인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한방의 약성(藥性)을 양방의 성분(成分)으로 이해하기
방약합편에 약성가(藥性歌)라고 있다. 약물(藥物)의 성미(性味), 효능(效能), 주치(主治) 등을 노래 형식으로 만들어 외우고 쓰기 편하게 해 놓은 것이다. 약성가를 보면 길경의 약성에 대해 桔梗은味苦하니療咽腫하고 載藥上升하니開胸壅하다고 나와 있다. 즉 길경의 맛은 쓰고 咽喉腫(인후종)을 治療(치료)하며, 藥氣(약기운)를 끌고 上升(상승)하여 가슴 막힌 것을 열어준다고 한다. 여기에서 길경이 인후종을 치료한다거나 약기운을 끌고 위로 향해 가슴 막힌 것을 열어준다고 할 때 그 부위는 호흡기계이며 수태음폐경에 해당한다. 이 임무를 담당하는 것이 길경의 사포닌 성분이며, 수태음폐경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길경에 함유된 사포닌으로는 트리터페노이드계 사포닌(triterpenoidal saponins)으로 platycodin A, C, D와 polygalacin D가 있다. 원이에 함유된 사포닌으로 onjisaponin A~G, tenuifolin이 있다. 세가근의 사포닌에는 senegin이 있으며 맥문동에 함유된 사포닌으로 ophiopogonin이 있다.
한편 전호는 점막에 붙어 있는 끈적한 가래를 묽은 상태로 만들어 배출을 더 용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화담약(化痰藥)이라 한다. 전호는 미나리과로서 사포닌이 풍부하다. 시호에도 사포닌계 성분인 saikosaponin A, C, D가 수태음폐경 중 상기도 질환에 효과가 좋다.
기관지염에는 시호를 통해 염증을 잡는다. 상기도 염증에는 시호 용량에 따라 치료가 빨리되고 안되고 한다.
코의 염증에 금은화 연교보다도 효과가 빠른 이유가 saikosaponin, saikoside, saikogenin A, C, D가 주성분이다. 호흡기에 염증이 온다든가. 열이 날 때 효과가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한양방 통합적인 면에서 보면 수태음폐경에 작용하는 것은 사포닌이 풍부한 약물이다. 사포닌은 특히 미나리과(umbelliferae)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사포닌 함유 한약은 호흡기계에 작용한다는 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