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그배나무 May 22. 2021

운명처럼 다가온 음악,
베토벤의 운명

유학생활 중 겪은 놀라운 음악체험

베토벤 교향곡 '운명' (Israel Philharmonic Orchestra, Zubin Mehta 지휘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

미국 코넬 의대에 post-doc (박사후 과정)으로 연구과정에 있을 때이다. 당시 거주하고 있던 뉴욕시의 동네 도서관에서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봤다. 이스라엘 관현악단의 주빈 메타 (Zubin Mehta)가 지휘했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연주 실황 녹화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유명한 곡이라 편한 마음으로 감상했다. 당시 미국 연구자 생활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던 시절이었다. 수없이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게 되었다. 어느 날,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다. 매번 듣다 보니, 개별 연주자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첼로 연주자들의 표정이 제각기 달랐다. 한국에서 관현악 연주회를 보면 연주자들이 한결같이 엄숙하다. 검은 정장인 데다 표정들은 똑 같다. 무표정하다. 외국의 연주실황을 보면 어떠한가? 표정들이 살아있다. 연주자들의 표정이 저마다 달랐다. 음악을 연주하다기보다 즐긴다는 느낌이었다. 생동감이 물씬 배어나왔다. 연주에 매이는 것이 아니다. 흥에 겨운 연주인 것이다. 놀이판에 신명 나게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남성 첼로 연주자를 보자. 커다란 첼로를 연주하면서도 부드러운 어깻짓을 한다. 마치 한국에서 사물놀이 공연자들의 신명 날 때와 같은 느낌이 묻어 나왔다. 여성 첼로 연주자는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몰입했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프린스턴대학교 인근의 호숫가에서 점심먹으며 찍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 당시 연주 테이프를 구하려 했다. 도무지 구할 수 없었다. 주빈 메타의 베토벤 운명 교향곡 실황 동영상들은 많았다. 미국에서 보았던 그 녹화 동영상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아쉬운대로 주빈 메타의 다른 관현악 연주 동영상으로 감상해보았다. 그때와 같은 감동은 추억 속에 머무를 따름이었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에서는 바이올린 현에서 울려 나오는 쇳소리의 마력이 제대로 느껴진다.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 올라갈수록 고요한 물결의 일렁임이 있다가 이내 출렁거리는 바다가 연상된다. 연주가 고조되면서 광풍이 휘몰아치듯, 거센 파도가 거듭 몰아친다. 밀려오는 파도가 사라지기 직전에 또다시 밀려오는 파도로 요동친다. 조각배 타고 숨 쉴 겨를 없이 떠밀려간다. 자칫 정신 줄 놓으면 바다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 같은 아찔한 긴장감. 이내 바이올린이 낮은 음의 부드러운 곡조로 바뀐다. 태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걷히고 햇살 가득한 미풍의 바다가 된다. 마음속을 헤집는 명곡의 묘미다.

작가의 이전글 안녕? 아그배나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