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명한 기독교 강사가 자신의 예화를 들으며, 청중을 설득시키고 있다. 본인의 대단한 성공의 과정 중에 있었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강의하는 중이었다. 그분의 강의는 훌륭했지만, 그 과정을 설명하는 중에 있었던 예화는 실로 이기심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독차지하려는 느낌. 다른 믿는 이들은 어떻게 되는 상관없이 나만 하나님께 은혜받으면 된다는 예화였다. 물론 그걸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도 모르게 그분의 성공의 과정 중에 거대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지만, 치졸하고 어두운 본인 이기심 또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한 목사님이 금요일 저녁 예배 때 강단에서 전쟁의 타당성을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라크같이 강한 이슬람 국가는 전쟁을 통해서야만 선교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이 명제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악으로 선을 이루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라는 것을 얘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을 지시하셨고, 가나안 민족의 멸절을 명하셨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축등 전부다. 이렇게 명하신 게 악인가? 가나안 민족은 멸절되어야 할 죄로 상징화된다. 죄를 박멸하여야 우리는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평안의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가 애써 싸워야 하며 마침내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가나안 정복 전쟁은 결국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실 것이고 그가 완전한 평안을 주실 것이었다 (물론 최종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으로 정복 전쟁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그 자체가 선한 일이며,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다시 이라크전으로 돌아와서 정말 사담 후세인과 전쟁하는 것이 선이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금 이라크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나? 많은 이라크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나? 오히려 정치적 불안정과 많은 자생적 테러 단체의 발생으로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다.
2018년 한국 대선과 2021년 미국 대선 때, 많은 한국과 미국의 교회들이 정치적 편견과 편향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기도의 무릎과 눈물을 정치적 이슈에 담아 하나님께 드렸다. 구국기도회, 선거부정, 공산주의 추방등의 명목으로 우리는 낯 뜨거운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한 가지 이러한 과정에 순결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기독교인들이 우리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신실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말씀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성화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세상의 관념과 의식들이 성경적 가치들 위에 있거나 그것들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