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수 Feb 26. 2021

철종은 알고 보니 나쁜 남자였다

-최문정,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나쁜 남자 편>

언젠가부터 나는 성공한 자가 아니라 실패한 자의 시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한 장면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약하다는 이유로 악한 인간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나의 과거가 역사를 달리 바라보게 했다. 그렇게 해석한 한 장면 한 장면이 모여 한 권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의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자는 상사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버티며 일을 다 끝냈지만, 성과는 커녕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으로 변해버린 저자. 약한데 할 일은 많아 사람들에게 자주 신경질을 부렸고 약자였던 저자는 악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국 저자는 스트레스 누적과 우울증으로 휴직을 하게 되었고 그때 <조선왕조실록>과 역사서를 접했다.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는 인물들에게 매료되었고, 저자는 약자와 패자들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그렇게 해서 집필된 작품이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나쁜 남자 편>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자의 생각일 뿐이다. 나의 경우, 정말 우연히 접했기 때문이다. '나쁜 남자'의 심리, '나쁜 남자' 되는 법, '나쁜 남자'와 연애하면 벌어지는 일 등. 로맨스 소설을 잘 쓰기 위해 '나쁜 남자'를 검색했다가, 이 책이 보였다. 그러자, '실록에 나쁜 남자가 있다고? 재밌겠는데'라고 생각한 뒤, 도서관에서 빌렸다. 오로지 '나쁜 남자'에 대한 환상으로, 역사와 결부시킨 연애물이라고 생각하고 보았다. 그러나 작품을 완독한 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인물들의 대사가 자꾸 머릿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쁜 남자를 사랑했던 여인들, 사랑하는 여인을 가까이하지 못한 나쁜 남자의 삶은 너무나 아련하고 비참했다. 그들의 심정에 몰입하느라 꺼이꺼이 울었다. 마치, 소설 속 인물이 된 것 같았다.




이 소설에는 7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양녕대군, 소헌왕후, 문종, 연산군, 단경왕후, 궁녀 김원미, 봉이. 이들은 사랑의 당사자이거나 제삼자(주변 인물)이다. 전자는 소헌왕후, 문종, 단경왕후, 봉이, 후자는 양녕대군, 연산군, 궁녀 김원미이다. 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역사는 어떻게 달라 보일까?



창덕궁 전경(출처: 픽사베이)


왕위를 버린 남자-양녕대군(원경왕후와 태종)

나 양녕대군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존경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왕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남편을 충실히 내조한 아내이자, 2차 왕자의 난 때 무기를 준비하고 갑옷을 끌어서 이방원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던 여장부였다. 그러나 보위에 오른 후 아버지는 어머니의 공을 깡그리 잊었다. 아버지는 여색을 탐해 끊임없이 후궁을 들였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투는 날이 잦아졌다. 더구나, 아버지는 왕권에 대한 집착도 엄청났다. 아버지는 외삼촌들이 전횡을 부린다는 이유로 사사했고, 어머니의 집안을 풍비박산 냈다. 외척이 왕권을 위협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나를 견제하려는 대책이었다. 내가 외삼촌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왕권에 회의감을 느꼈다. 이복형제, 친형제를 죽이고, 친아버지와 칼을 맞들고, 전우였던 외삼촌들을 자결하게 만든 아버지의 집착에 소름 끼쳤기 때문이다. 외삼촌들이 죽자 어머니는 앓아누웠고 나는 아버지를 닮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처럼 아무 여자나 품고 사냥과 연회에 집착하고 조정의 하례나 강연을 소홀히 했다. 내가 비뚤어지자 아버지는 야단치기 시작했고 결국 폐세자가 된다. 이렇게 양녕대군은 무능하고 여색을 탐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된다. 아버지를 증오했으나 결국 아버지를 닮아버린 양녕대군. 업적조차 없이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된 양녕대군에게 일말의 연민을 보낸다.



기도-소헌왕후(소헌왕후와 세종)

1장은 아들(양녕대군)이었던 제삼자의 시점에서 전개되었다면, 2장은 당사자인 소헌왕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소헌왕후는 죽기 전,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고 소헌왕후는 중전이 되었으나, 상왕이 된 태종은 병권을 쥐고 외척을 경계했다. 병조참판 강상인이 직접 군사 관련 사항을 세종에게 보고하자, 태종은 이를 틈타 강상인을 국문했고 결국 강상인은 심정(소헌왕후의 아버지)이 군사 관련 사항을 모두 태종이 처리하는 게 불합리하다고 토설했다. 결국 소헌왕후의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하지만 세종은 소헌왕후를 폐비시키지 않았고, 소헌왕후는 세종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항상 중전에게 예를 지키고 공경하게 대했던 세종. 하지만 세종에게 소헌왕후는 동반자일 뿐, 연모의 대상이 아니었다. 태종이 승하하자 세종은 본격적으로 여색을 탐했다. 수많은 사람을 후궁으로 들이고 30년 이상이 지난 상궁까지 취했지만, 소헌왕후는 모른 척했다. 투기는 칠거지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소헌왕후는 내명부의 수장이자 만백성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임영대군, 휘빈 김 씨, 순빈 봉 씨 등 자식이든 며느리든 가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판결해 내치고 한여름에 고생하는 집현전 학자들을 위해 얼음 식혜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병이 들어 일찍 승하하는 소헌왕후. 국모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사적인 감정을 토로하지 못했기에 병이 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만 몰랐던 사랑 이야기-문종(현덕왕후와 문종)

3장은 문종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나쁜 남자이자, 후회 남주의 정석이었던 문종은 세 명의 여자를 세자빈으로 들였다. 첫 번째는 휘빈 김 씨. 하지만 문종은 휘빈 김 씨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박색인 데다 문종의 눈에 들기 위해 몰래 뒤에서 수작 부리는 모습이 꼴사나웠기 때문이다. 결국 압승술(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주술)을 했던 휘빈 김 씨는 폐출되고, 두 번째 세자빈 순빈 봉 씨를 맞아들인다. 순빈 봉 씨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성격이 좋지 못했다. 세자가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며 궁녀들을 괴롭혔다. 순빈은 지나치게 색을 밝혔다. 후사를 가져야 한다는 핑계로 달려들거나 사랑의 증거를 보여달라 칭얼거렸다. 음주가무를 즐기고 열녀전을 가르치던 상궁을 때리기도 했다. 결국 세자는 순빈에게도 질리고 말았다. 그때 마음에 든 여인은 순임(훗날 현덕왕후)이었다. 순임이 문종을 볼 때마다 수줍어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문종이 책을 읽을 때 요깃거리를 챙겨주는 모습, 내 곁으로 오라 하면 괜찮다며 거절하는 모습이 어여뻤다. 하지만 동성애를 저지른 순빈을 폐출한 후 순임을 세자빈으로 맞아들일 때, 문종은 순임에게서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 미색이 뛰어난 궁녀 양 씨를 만났기 때문이다. 순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녀가 임신을 했을 때도 찾아보지 않았고 병이 났을 때도 그녀를 소홀히 했다. 얌전하게 굴며 조용히 기다리는 순임의 인내를 당연시했다. 순임이 세손 홍위(훗날 단종)을 낳고 죽자 비로소 후회하는 문종. 결국 문종은 39세로 승하할 때까지 다른 세자빈을 맞아들이지 않는다. 오로지 순임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하지만 그는 울 수 없었다. 사내란, 왕이란 쉬이 눈물을 보여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 부부와 아들 단종의 비극적인 운명이 떠올라서 그럴까. 이상하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던 단락이었다. 사랑해도 함부로 사랑을 표하지 못했던 나쁜 남자 문종과 순애보 순임이 저승에서라도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붉은 적삼-연산군(폐제헌왕후와 성종)

4장은 연산군의 눈으로 어머니와 아바마마의 사랑을 바라본다. 친절한 정현왕후 밑에서 귀하게 자란 세자 연산군. 그러나 그는 예의 바른 정현왕후에게서 차갑고 건조한 거리감을 느꼈고, 진성대군과 정현왕후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세자와 대군의 차이라고 애써 위로했는데... 성종이 승하한 후 어머니 폐비 윤 씨의 존재를 알게 된다. 상궁, 내관들의 증언과 기록에 따르면 투기에 눈이 멀어 비상이 묻은 곶감을 들고 다니고 용안에 상처를 낸 투기에 눈먼 악녀였다. 그러나 외할머니에게서 어머니가 모함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연산군은 외할머니에게서 피 묻은 적삼을 받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로 결심한다. 물론, 연산군이 어머니를 복권한 이유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 내면에는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소외감이 묻어 있었다. 이후 연산군은 피바람을 일으켰다. 어머니의 죽음에 가담한 신하와 후궁들에게 복수를 하고 할마마마(인수대비)를 밀치며 한을 풀고, 폐비 복권에 반대한 신하들을 유배, 참살했다. 어머니를 보기 위해 어머니를 닮은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대거 사들이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부재는 여전히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채우지 못했던 연산군은 여색을 탐하기 시작한다. 천여 명의 흥청과 스물이 넘는 후궁을 들이면서. 결국 지나친 폭정으로 인해 폐위당한 연산군. 죽기 전, 자신의 곁을 지켜준 중전 신 씨를 그리워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유배당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한다. 나쁜 남편들 때문에 고생하다가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한 양녕대군과 연산군의 모습이 비슷하다. 역사에 무능한 인물로 기록된 것, 실록에 실리지 못한 이들의 쓰라린 감정도.



다홍치마-단경왕후(단경왕후와 중종)

5장은 단경왕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명문가의 딸로서 대군이었던 중종과 혼인했으나 권력다툼에 휩쓸려서 7일 만에 폐비가 된 인물이다. 기록이 부족한 탓일까. 5장의 단경왕후는 왜인지 모르게 관찰자 같다. 시장 바닥에서 노비들이 중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단경왕후는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담하면서 무심한 듯한 목소리에는 그녀가 겪었던 모질고 비참한 세월이 느껴졌다. 칠거지악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단지 역적(신수근은 중종반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했고 이후 중종이 왕위에 오르자 반정세력에 의해 몰살당한다)의 딸이라는 이유로 폐비가 되고, 30여 년이 지나서야 몰래 남편 중종의 임종을 지켜본 단경왕후. 중종의 '미안하오'라는 말 한마디를 기억하며 꾸역꾸역 죽을 삼켰던 그녀의 삶이 너무 안타까웠던 탓일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곤혹이었다. 제삼자인 나도 이리 슬픈데 단경왕후는 어떻게 그 긴 세월을 견뎠을지. 저승에서라도 지아비를 만났으면 좋으련만. 정작, 지아비였던 중종은 신하들에게 휘둘리느라 폐비를 복권시키지 못하고, 폐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못했으니... 중종이 비록 다른 여인을 중전으로 맞이했으나, 그 여인들에게도 사랑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인생이 더 씁쓸하게 느껴졌다.       



장옥정전-궁녀 김원미(장옥정과 숙종)

6장은 제삼자였던 궁녀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희빈 장 씨를 보필하는 궁녀 김원미다. 당사자나 가족의 시점에서 전개하다가, 갑자기 궁녀 시점으로 바뀐 것이 새로웠다. 아마, 작가는 <인현왕후전>을 비판하기 위해 궁녀를 내세운 것 같았다. <인현왕후전>은 장희빈이 악녀로, 인현왕후를 선한 피해자로 묘사한 소설이다. 그러나 최근 실록 기록에 따르면, <인현왕후전>은 역사적 가치가 전무한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장옥전전>이라는 새로운 소설을 내세운다. 소설에 관심이 많은 궁녀 김원미가 새롭게 쓰는 <장옥전전>을. <장옥전전>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우리가 흔히 보는 장희빈 드라마가 아니었다. 선악구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인현왕후와 숙빈이 악녀이고 장희빈은 숙빈과 서인 세력의 모함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패자였다. 실록의 기록도 자세하고 유명한 시대이다 보니 가장 분량도 많고 재미있는 파트이다. <장옥전전>에 따르면, 숙종은 여인에게 휩쓸리는 우유부단한 인물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여인들과 신하들의 판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절대군주이다. 인현왕후는 사대부의 예에 찌들어 중인의 딸인 장희빈을 무시하고, 숙빈은 무수리라는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장희빈을 몰아내려고 수를 쓰는 악녀이다(동이는 판타지였나). 특히, 장희빈 곁을 숙빈이 지나갈 때 떨잠이 떨어지자 일부러 바르게 꽂아주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다. 떨잠을 바른 모양으로 꽂을 수 있는 인물은 대왕대비, 대비, 중전 세 사람뿐이라는 것을 알고 희빈을 모함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의 일화에 불과하지만, 왜 이런 일화가 퍼졌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 같다. 정말, 장희빈이 패자이기 때문에 모함당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악녀였을지는 역사서마다 평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첫사랑-봉이(봉이와 철종)

7장은 강화도에서 이원범(철종)과 사랑을 나누었던 봉이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나무꾼이었던 이원범이 감시관에게서 얻어맞는 것을 봉이가 지켜주고 봉이의 집에 몰래 땔감을 얹어주는 원범. 이들은 혼인도 약조하지만, 한양에서 원범에게 왕위에 즉위하라는 교지가 내려오면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봉이는 처음에 후궁이 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으나, 백일, 이백 일, 삼백 일이 지나도 원범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봉이는 원망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힘들어하지 않는지, 낯선 예법에 당황해 아랫사람에게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낯선 사람들 곁에서 외로워하지 않는지 걱정할 뿐이다. 그러나 원범, 아니 철종은 봉이를 부를 생각하지 않았다. 안동 김 씨 세력에 눌려 힘을 펼치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다른 여인을 사랑한 탓일까. 결국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다가, 양반들에게 희롱당한 후(전하와 비볐다는 살맛 보겠다. 전하와 구멍동서가 되는 거냐.. 듣기만 해도 역겹다) 몸을 내던진 봉이. 애처롭다. 슬프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철종실록은 부실하다는 점이다. 강화도에서의 생활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상상의 여지가 많다. 소설의 내용과 달리, 봉이가 다른 남자와 혼인해서 잘 살았기를...




권력 앞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실록은 역사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하였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록 속에는 패자의 심정과 그들의 삶이 녹아들지 못한다. 저자도 이를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약하기에 악한 사람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자의 심정을 깨달을 기회를 주기 위해 역사소설을 집필했던 것 같다. 왕은 한 여인만 오롯이 바라볼 수 없다. 왕에게 혼인이란 정치적 세력을 키우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자유연애가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일제강점기다) 함부로 연애를 할 수가 없다. 권력다툼에 휩쓸린 여인의 삶도 비참하고, 왕도 연민이 간다. 무엇보다 중전은 왕의 아내이면서 신하였다. 왕의 운명에 따라 휩쓸려야 했다. 자신의 의사를 쉽게 제기할 수 없었다.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한 남자와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는 21세기여서 다행인 걸까. 비록 취업이니 뭐니,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데 장애물이 많지만 동등한 관계를 열망할 수 있으니 다행인 것 같다.



<참고도서>

최문정,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나쁜 남자 편>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55554


*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란한 무신 정권에 피어난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