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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Oct 22. 2021

난세에 고군분투한 충신들의 일대기

에필로그: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글

<배경: 1204년 십자군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우리의 역사를 가지고 뜸들이면 슬픔이 더 극심해질지도 모르니, 전자의 설명을 마치고 어서 후자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할 것이다."
-니케타스 코니아테스, 『연대기』 647장에서
(1204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일대기로 들어가면서)


"나는 왜 이런 불운을 아낌없이 늘어놓아 혀를 쉬지 못하게 했는가? 어찌하여 나는 이 글을 저 멀리 있는 이들에게 소리 높여 전했는가? 오, 나는 이런 불운을 기록해야 하는 불운한 작가이며, 이제 내 가족과 동포의 불행을 글로 남겨서 갚으리라!"
-니케타스 코니아테스, 『연대기』 635장에서
(1204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기술하면서)



1204년,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니케타스 코니아테스는 4차 십자군의 참극을 목격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십자군은 닥치는 대로 도시를 파괴하고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코니아테스도 사랑하는 형과 헤어지고 니케아로 망명을 떠나야 했죠. 그는 조국이 무너지고 동포들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을 떠올리고 비통해 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좌절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글로 남겨서 후대에 전해야 했죠. 그는 니케아에서 글을 집필합니다. 12세기 동로마 제국의 역사를 집대성해 21권의 책으로 펴내니, 그 책의 이름은 바로 『연대기』였습니다.


흔히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부릅니다. 패자의 기록은 왜곡되거나 잊히지요. 왜 패자는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못할까요. 사람들은 남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주인공의 승리를 바라죠. 바라던 대로 승리하면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패배하면 씁쓸함과 허무함만 느끼고요. 독자든, 저자든, 모두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역사가도 사람이기에 패자의 일대기를 읽으면 가슴 아파합니다. 그래서 패자의 고통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연대기』에는 1204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코니아테스는 어떻게 아픈 과거를 글로 남길 수 있었을까요. 후대에 조국의 비극을 알리겠다는 목적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비극을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 더 괴로워서, 그나마 글로 남겨야 고통이 해소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만일 전자가 목적이었다면, 코니아테스의 목적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4차 십자군은 적어도 교과서에서 한 번씩 언급되고 지나갈 정도이니까요. 후자가 목적이었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코니아테스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저도 브런치북을 발간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자료를 조사하면서,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씁쓸해하기도 했거든요. 능력이 있었고 노력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휘말리는 충신들의 모습을 보면서요. 어릴 때는 성공한 인물만이 위대하다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노력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난세: 충신의 탄생」의 인물들에게 잘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능력 있고 목표를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었거든요. 필란트로피노스는 반란을 일으킨 전적이 있고, 피트는 프랑스와의 전쟁에 지나치게 집착해 국고를 탕진했습니다. 스틸리코는 수도를 지키느라 속령의 군대를 끌어다 써서 속령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았지요.


이들이 살았던 시대도 지위도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나라를 위해, 주군을 위해, 백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시대에 휩쓸려, 타인에 의해, 운이 나빠서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는 점'이지요. 그나마 피트의 경우 후임 장군이 나폴레옹을 물리쳤으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정작 피트는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요. 조국의 안녕을 위해 황위를 마다한 브리엔니오스도 당대에는 충신이라고 칭송받았지만, 위대한 역사가였던 아내의 그늘에 묻혀 까맣게 잊혔고요. 악수흐도 당대에는 이름 날린 명장이었지만, 악수흐 사후 가족들이 반역자로 몰려서 죽거나 망명을 떠났지요.


하지만 이들을 마냥 패자라고 규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업적을 과장되게 치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들의 인생을 그대로 기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난세: 충신의 탄생」 을 브런치북으로 발행했습니다. 아직 필력이 부족하고,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아니기에 역사 속 인물들을 다루어도 될지 고민했지만, 저 또한 성공한 사람이 아니기에 이들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충신들의 일대기가 「난세: 충신의 탄생」 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브런치북에서 다룬 인물들의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구분해 시대순으로 배치했습니다(목차는 주제별로 배치했습니다).


<동양>

중국(명나라): 해서

중국(청나라): 임칙서


<서양>

서로마(고대):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동로마(중세): 소(小)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 요안니스 악수흐, 알렉시오스 필란트로피노스, 요르요스 스프란체스

영국(근대): 소(小) 윌리엄 피트




<참고 문헌>

Choniates, Nicetas, 『O City of Byzantium, Annals of Niketas Choniatēs』,  Detroit: Wayne State University Pres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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