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잃은 자에게 바치는 글
[1월 첫 주 주제]
두 편의 동화를 읽고 내용을 연결하여 이야기 만들기
아이작 교수의 왕국구원기(王國救援記)
폭군의 등장....고통 받는 백성들
0000년 0월 0일, 마션이 화성 공국에서 군대를 끌고 토성 왕국을 공격했다. 새턴 대왕이 죽은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군사령관 알렉스는 마션의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 왕궁으로 진격했으나 패배하고 종적을 감췄다. 승리한 마션은 군사령관의 일가친척을 몰살한 뒤, 앨런 국왕과 마리아 왕태후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 군사령관의 편에 섰던 신료, 왕족들은 거리로 도망을 쳤다. 마션은 군사령관의 지지자들을 찾기 위해 군대를 거리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거리가 불타버렸다. 백성들은 시체를 끌어안고 울부짖었고, 타이탄, 엔셀라두스 등의 위성국으로 피난을 떠나는 백성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사키오스 2세
이사키오스는 소아시아의 군사귀족 가문출신으로 아버지는 안드로니쿠스 두카스 앙겔루스였고 어머니는 황제가문의 먼 친척이었다. 그는 황제 안드로니쿠스 1세의 분노를 사서 안드로니쿠스는 그를 죽이려고 심복을 보냈는데 이사키오스가 그 심복을 죽여버렸다. 1185년 9월 안드로니쿠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잠시 비운 틈을 타서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사키오스는 그 반란에서 시민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당시 비잔티움 제국을 침략한 굴리엘모 2세의 시칠리아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300 km 떨어진 모시노폴리스까지 진격해왔는데 이사키오스는 즉위 즉시 이들을 상대하여 알렉시우스 브라나스를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격퇴하였다. 제위 초기 그는 시칠리아 노르만인을 몰아내고 헝가리 왕 벨러 3세와 협정을 맺고 그의 딸 마르가리타를 황후로 맞았다. 또한 자신의 여동생 테오도라를 몬페라토의 코라도에게 시집보내 제위를 튼튼하게 했다. 1185년에 불가리아에서 반기를 들었고 결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이 세워졌다. 1187년에는 장군 알렉시우스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사키오스는 매제인 코라도를 시켜 이를 진압하게했다.
1187년 10월 예루살렘이 살라딘의 손에 떨어지자 제3차 십자군이 조직되었다. 1189년 이사키오스는 독일에서 십자군을 이끌고 오는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긴장상태에 들어갔으나 결국 1190년 2월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프리드리히의 십자군을 보스포루스 해협대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로 가게 했다.
십자군을 보내고 난 뒤 이사키오스는 불가리아와의 전쟁을 계속했다. 그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원정에 참여했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1190년에는 군대를 버리고 혼자 도망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1195년 이사키오스가 다시 한번 불가리아 원정을 준비하는 사이 이사키오스의 형인 알렉시우스 앙겔루스가 동생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이사키오스는 붙잡혀 눈이 뽑히는 벌을 받고 폐위되어 감금되었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