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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Jun 10. 2022

진심에 지나치게 집착하고자 하면

그녀는 왜 친구를 배신했을까

*드라마 <후궁견환전>의 스포가 있습니다. 근데 하도 오래전에 본 거라....내용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글이 약간 현실적이고 어두울 수 있으니, 읽으실 때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출처: 안릉용 https://namu.wiki/w/%EC%95%88%EB%A6%89%EC%9A%A9




청나라 옹정제의 후궁 견환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이름은 안릉용으로, 신분이 낮고 외모가 볼품없어서 원래 후궁에 간택될 수 없었으나 견환의 도움으로 후궁에 간택됐다. 그러나 입궐한 후에 안릉용은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고, 다른 후궁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뿐이었다. 견환은 안릉용이 황제의 시침을 들 수 있게 도와줬고, 안릉용의 아버지가 뇌물수수 혐의를 받자 황제에게 그녀의 아버지를 구명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견환이 다쳤을 때 안릉용은 사향이 가득 담긴 연고를 선물했고, 사향 때문에 견환은 유산했다. 훗날 안릉용의 본색을 알게 된 견환은 경악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친한 친구가 배신하는 기믹. 사극뿐 아니라 현대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안릉용의 시점으로 보면 드라마가 달리 보인다. 견환은 안릉용에게 황제의 총애,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주면서 세심히 신경썼다. 하지만 '신경써주는 사람'은 견환이었지, 견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견환의 시녀가 뒤에서 안릉용을 험담하거나, 견환과 안릉용이 황제에게 침의를 보냈을 때 견환의 친한 후배가 '황제가 견환의 침의만 입고 잤다'라고 눈치 없이 말했다. 다행이 견환이 눈치를 줬지만 안릉용은 견환의 진심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견환을 괴롭히던 후궁이 황제에게 자살하라고 명령을 받았을 때, 후궁이 자살을 거부하자 견환이 두려워하니

안릉용은 태감들을 구슬려 후궁을 죽이게 했다(아마 견환을 위했던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안릉용 역시 그 후궁에게 괴롭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견환이 그녀 몰래 '릉용이가 독하다고' 말하니, 뒤에서 몰래 듣던 안릉용은 실망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때 황후는 견환과 안릉용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안릉용은 순하고 고상한 황후를 믿고 견환을 배신했다.


드라마 <후궁견환전>의 안릉용(출처: 나무위키)


결말을 살짝 스포하자면, 안릉용의 끝은 좋지 않았다. 독수공방하며 조용히 지내던 황후는 알고 보니 악덕사장일 뿐이었고, 안릉용은 아이도 낳지 못하고 목소리도 잃은 채 비참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친구의 진심을 의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했지만, 그녀가 새로 만난 사람이야말로 진심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나는 2021년 2월 8일 브런치에 입성하기 전 블로그에서 글을 썼었다. 이웃도 거의 없고 말 그대로 일기장 수준이었기에 쓰고 나면 고달프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 없는 블로그에 가끔 댓글이 달렸다.


글 잘 봤습니다. 시간 나시면 제 블로그에 놀러오세요~
(링크)

기대감에 차서 링크를 누르면, 글과 전혀 관련 없는 업체 이름이 나온다. 소위 말하는 광고성 댓글이다. 피식하고 댓글을 무시했다. 댓글 단 사람이 하트를 눌렀지만 진짜 내 글을 읽고 눌렀을 가능성이 몇 프로일까?


브런치에는 광고가 없기에 보다 진심을 담아 라이킷을 누를 수 있다. 진짜 글이 좋아서, 재밌어서, 잘 써서 라이킷을 눌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처음 라이킷을 받았을 때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진심을 담아' 라이킷을 눌렀고, 라이킷을 눌러준 작가의 글에 똑같이 라이킷을 눌러주기도 했다. 진심이 통했던 건지, 글 한 편에 10개 눌릴까 말까 했던 라이킷이 어느새 100개 가까이 늘어났고 구독자도 900명을 넘겼다. 그래서일까. 라이킷이 눌려도, 알림이 와도 점차 무덤덤해졌다. 설령 알림이 와도 제때 보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고 있었다.


최근 어떤 사건이 있었다. 브런치에서 이웃 작가님이 출간 소식을 전했다. 자주 뵙는 작가님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가끔 소통하는 정도였다. 나는 작가님께 라이킷을 누른 뒤 출간을 축하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작가님은 내게 감사하다고, 내 책이 기대된다고 답댓을 달았다. 이렇게 댓글을 남긴 날, 어떤 작가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작가가 진심도 아닌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구토를 했다'.


좀 당황스러웠다. 난 그 작가님께 축하한다고 댓글 남겼던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의심을 했다. 내가 정말 진심으로 그 작가님을 응원했는지.


그날 이후 나는 이웃 작가님들이 출간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 난 선뜻 라이킷을 누르지 못했다. 출간을 축하한다고 했다가 책을 사지 않으면 작가님들이 실망하는 건 아닐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점점 움츠러들었고, 마감이 점차 다가오면서 브런치에 좀체 들르지 않으니 스스로 고립되고 있었다. 스스로 '창살 없는 감옥'을 만들고 있었다.


'사주지 않으면 응원하지 못할까?' '재밌게 읽지 않으면 라이킷을 누르지 못할까?' 대놓고 광고를 하는 블로그와 달리 브런치는 '나 광고해요'라고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라이킷을 누르는지 알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렇다. 읽었다는 표시로 라이킷을 누르기는 하나, 글의 퀼리티가 별로이거나 재미가 없을 때 끝까지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라이킷을 다시 회수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수준 낮은 글이 발견됐다 해도, 내 글의 퀼리티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충고를 해주기도 어렵다(게다가 난 브런치판에서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한다;;;).


작가님들이 진심으로 내 글을 좋아해주기를 바라는가? 진심을 담아 라이킷을 눌러주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작가님들이 보고 싶어하는 글을 '잘', '재미있게' 쓰면 된다. 다만, '모든 사람'이 내 글을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라이킷을 품앗이로 이용한다고, 진심이 아니라고 구토를 하면, 도리어 진심을 보지 못하게 된다. 진심을 갈구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자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 친구의 진심을 의심하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된 안릉용처럼.




*매거진의 이전 글, 청산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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