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오퍼: 사랑이라는 가장 정교한 위작

영화 리뷰

by 달리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선택했는데 보는 내내 몰입감을 선사하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짜릿하다. 단순히 미술에 관한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보기 시작했던 <베스트 오퍼>가 바로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는 <시네마천국>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2014년 작으로 호주의 중견배우 제프리 러쉬가 세계적인 명성의 경매사 역을 맡아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친다. 잔잔한 미술영화를 예상했지만, 뜻밖의 스릴과 반전이 이어지며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완벽주의자의 비밀의 방

올드먼은 모두가 인정하는 탁월한 안목으로 예술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경매사이다.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고 혼자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남의 물건에 손이 직접 닿는게 싫어 늘 장갑을 끼고 다닌다. 그런 그에게 비밀이 하나 있으니 진품을 위작으로 가장해 대리인을 앞세워 헐값에 낙찰받아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하는 것이다.

그의 저택에는 오직 자신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 하나 있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을 영화는 압도적으로 아름답게 잡아낸다. 아래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예술품들, 그것도 여인들의 초상화로만 이루어진 그만의 비밀의 방이다. 그는 그곳에 앉아 그림 속의 여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실재하는 여인과의 사랑이 아닌, 그림 속 여인들과의 사랑이다.

영화 <베스트오퍼>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초상화는 실제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언뜻 지나가는 작품들만 보아도 라파엘로, 모딜리아니, 클림트, 르누아르 등이 눈에 띄는 이 장면은 꼭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원히 예술작품으로 남은 그녀들은 올드먼이 아직 만나지 못한 완벽한 여인을 상징한다. 그는 예술품에 대한 이해만큼 여자들을 이해할 자신이 없기에 두려움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왔다.

보캉송에 대한 집착과 예상치 못한 사랑

어느 날 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부모님이 유산으로 남긴 미술품들을 경매에 위탁하고 싶다는 의뢰인은 얼굴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 신비로운 여인이다. 저택의 수많은 예술품 사이에서 올드먼은 바닥에 떨어진 기계 부품 하나를 발견한다. 그와 친분이 있는 젊은 엔지니어 로버트는 그것이 보캉송 로봇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고 알려준다. 영화 속에 언급되는 보캉송은 18세기에 실존했던 프랑스 발명가로, 자동인형 ‘똥 싸는 오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실제 오리 크기로 제작되어 먹고 배설하는 과정을 재현한 기계로, 400여 개 부품으로 이루어진 걸작으로 유명하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말하는 로봇을 보캉송이 제작했다는 기록은 없어 이 부분은 허구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캉송 로봇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올드먼의 집착은 어느새 의뢰인에 대한 궁금증으로 옮겨간다. 결국 숨어서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게 되고 예상치 못한 그녀의 아름다움에 사랑에 빠져버리게 된다. 광장공포증 있는 클레어(실비아 획스)를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올드먼은 정성을 들이는데.. 딸뻘의 젊은 여성을 향한 이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그에게는 얼마나 좋았을까. 씁쓸하고도 충격적인 결말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예술과 사랑, 진실과 거짓

이 영화의 두 축은 진실과 거짓이다. 진품과 위작, 사랑과 기만.

예리한 눈으로 위작을 항상 완벽하게 감별해냈던 올드먼은 정작 자신의 일생일대의 예술품이었던 클레어가 위작임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는 비밀의 방을 클레어에게 보여줌으로써 그의 인생을 건 최고가 제시(best offer)를 했고 그 결과 모든 것을 잃었다. 영혼까지 털린 공허한 눈빛으로 그는 그녀가 언젠가 언급했던 프라하의 시계탑 근처 카페에서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린다.


“앞으로 우리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거짓이었음을 아는데도 미련을 버릴 수 없는 건 그 시간의 온도 때문일까.

무의미했을 수도 있는 말 한 마디, 사소한 행동과 눈빛에 혼자만의 의미를 부여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나중에는 상대보다 그 시간 속에 존재했던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비밀의 방에 꼭꼭 숨겨두고 가끔씩 꺼내볼만한 추억이 될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깨닫게 된다.

그 어떤 것도 완전한 거짓, 완전한 진실은 없다는 것을.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있다”


클레어의 마음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었을까.

그 믿음을 끝내 놓지 못한 채, 그는 아직도 오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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