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양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1.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착각과
2. 자유와 흡사한 형태의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자유 의지를 강연했다
오늘 나는 자유 의지에 대한 나의 생각과 올바른 사랑이란 무엇인지 얘기해보려고 한다.
이번 명절에 하염없이 티비를 보던 중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자연인을 보며 되려 아쉬움을 느꼈다
나는 자연인이라는 사람이 씻고 싶을 때 씻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겨울을 천천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왜냐하면 현세에 있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산으로 돌아와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장면이
내가 정말로 원하던 자유의 형태가 아니였기에 괜시리 허무함을 느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도달하고 싶은 자유의 모습은 각자 다를 것이며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만끽하는 것은 좋은 자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내가 원하는 자유로움는 오히려 더 많은 전제 조건이 필요해 보였다
우선 시간이 흘러도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싶다
그래서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다면
'내 가족들에게도 명분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 안정적인 집과 여행을 가고 싶을 때 바로 승낙해 줄 수 있는 평안한 직장은 덤일 것이다
이러한 나의 자유로운 생각들은 슬라보예 지젝이 얘기했던 것처럼 틀 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유롭기 위해 강제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며
나는 그 틀을 부숴야 하는지 또는 약하게 바꿔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자유 의지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반면 그 어떤 자유 의지도 강제되는 것일까 생각하며 내 의지대로 오른팔을 들었다
만약 강제되지 않는 자유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습관보다 작은 행동이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다음 주제로 넘어가보려 한다
올바른 자유를 생각하며 사랑의 경우도 이와 비슷할까 고민했다
본래 사랑은 형태가 없고 아름다운 것들로 포장되는 복잡한 감정 중 하나인데
아마 완전한 사랑이라면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미 공통적인 관심사의 연결과 둘 중 하나의 고백을 통해 시작된 사랑은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을 일부 전제로 한 완벽하지 않은 사랑일 것이다
나 또한 사랑과 자유를 착각하며 살아오다 점점 그 의미를 깨달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와 사랑은 닮아있다
예를 들어 지금의 단짝 친구에게 우물쭈물 떨리는 말로 고백을 했던 적이 있었다(조금 더 정확히는 어... 버버.. 였다)
하루 종일 고민하던 단짝 친구가 내 고백을 받아준 뒤 삼 일간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길에 흔히 있는 평범한 잡초에 물을 주고 싶을 정도로 신난 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또 성인이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지면서 나는 이 세상의 주연이라 필연적으로 생각했고
세상 거만하게 신입생을 보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생각하던 사랑과 자유는 조금씩 다름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조금씩 당연하고 편안해지는 것이었고 자유는 사회 속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울타리였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과 자유는 나를 느슨하게 만들지만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하는 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해결 방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들은 아이가 처음 맛보는 콜라처럼 짜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