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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린 Nov 15. 2023

재수생들의 마지막 공부(수능 D-1)


나는 스터디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기에 하는 일도 간단하다.


주로 하는 일은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난 책상을 수건으로 가볍게 닦고 

주변 정리를 하는 간단한 청소와도 같은 것이다.


간단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이 카페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 늦게까지 남아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으면 

정오가 넘어 퇴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곤 했다


요즘은 특히나 더 학생들이 일찍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오는 11월 16일 즉, 내일은 수능이다

2024년도 대학능력수학시험.


요즘도 문 앞에 합격 엿을 붙이는지, 

아니면 모르는 사람들도 시험생들의 등굣길을 응원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내가 보았던 재수생들의 얘기에 포커스를 맞춰 얘기를 끄적여보려 한다




수능을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성인들만 이용이 가능하기에 

수능을 처음만 보는 친구들은 없는 게 맞긴 할 것이다


그렇기에 주로 재수나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나이대도 20살부터 23살, 또 어떤 경우에는 이십 대 후반까지 수능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쉽게 비키지 않는 그들을 보며 열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고는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글쓰기 레슨에서 만난 지인들도 대부분 이번 수능을 치른다.


극작과, 영화제작과, 문학과에 가기 위해 글쓰기와 공부를 병행하던 친구들

그래서 올해는 수능을 치르지 않고도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어땠는가...?


예체능을 전공한 게 이유에서인지
나는 한 번도 독서실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에 아예 담을 놓지는 않았다

아마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중학교 때 일 것이다

서울대학교 입학이 남얘기 같지 않고
조금만 공부를 하면 인서울은 쉽다는 생각을 했던 그 시절,

엠베스트와 단어장을 활용해 열심히 공부를 해도
내가 받은 시험지 모두가 100점이 아니라는 사실에
공부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자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집중을 하는 것이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자연스럽게 집중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자리를 뛰쳐나와 일을 키우는 말썽꾸러기 중 하나였다


이런 내가 지금은 스터디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한 자리에 묵묵히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대한민국에서 자격을 얻기가 참 힘들다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얻어야 하는 자격...

나는 대한민국에서 자격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뜻이 깊은 학생들은 아침 9시 전에 자리에 앉아

내가 퇴근하는 12시간 직전까지 공부를 한다.


반면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어려운 사람인데

이들의 절실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런 모습을 증명이라도 해주듯

오래 머물러 있는 자리에는 흔적들이 크게 크게 새겨져 있다


문제를 풀었던 흑연의 얽힘과 주변에 튀어나간 지우개 가루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묵묵히 자리를 치워주는 것이기에

아침이 밝아오면 다 시큼 열심히 공부할 학생들에게 

깨끗한 자리를 만들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일과를 마친다


첨언하자면

중간에 1시간 정도 저녁시간이 있다

나 또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밖으로 이동한다


한없이 조용한 공간에서 

한없이 시끄러운 밖으로 이동하는 그 간극이 참 아이러니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사람들은 청춘을 즐기기 위해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나이인데

그런 유혹들을 모두 참아가며 이 날만을 준비하는 게 슬프다


수능이 끝나면 많은 학생들이 짐을 뺄 예정이다


다른 시험들과는 달리 유독 과목도 많고 풀 것도 많은 시험이기에

1인당 제공하는 라커 1개로는 부족하다.


그 많던 라커들이 비워지면 또 조금씩 차는 것이 이치라는 생각이 들며,

인사성이 바른 학생들에게 재수라는 모진 시련을 준 '수능이라는 시스템'


실력과 운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아니러니 함 속에

수능이라는 날은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안겨주는 날이지 않을까...?


수능을 앞두고 있는 부모님들도, 입시를 담당했던 선생님들도

마치 경기장에 앉은 관중석처럼 초조하고 긴장될 것이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나는 수능을 앞둔 친구들이

그냥 하던 대로 보고 오기를 바라고 있다


예전에 시험을 한번 망친 적이 기억난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직업상담사 필기시험에 긴장이 너무 되어,

아무런 생각 없이 커피를 한 잔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심장이 쿵쾅대니 문제 하나하나에도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본래대로라면 붙었을 시험에 한 문제 차이로 통과하지 못해 억지로 잠을 청했던 적이 있었다


긴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너무 긴장이 심하다면 우황청심환도 하나 정도는 괜찮고)


과학적으로 적당한 긴장은 나에게 몰입을 주는 것이라 배웠다


물론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긴장과

자신과의 부담감에 대한 긴장 둘 중에 하나를 꼽아보라면 당연 후자인 것 같다


그 압박감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던 나도 고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긴장이라는 것이 한번 이겨내고 나면 나머지는 술술 풀리게 된다


결국에는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고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에

잠이 오지 않는 이 밤에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수능이라 떨리는 가?


그리고 잘 보고 싶은데 그것이 맞아떨어지는지 궁금한가?


우리는 어쩌면 긴장이 흐르는 세상 속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방심하면 그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세상에서

긴장을 그저 받아들이고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임을 알고 있기에

내가 봐왔던 학생들이 수능 본 이후로 다음 단계를 무탈 없이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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