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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린 Nov 24. 2023

1,200만 원짜리 복수


새벽 05:00


알람이 울리고 있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새소리가 들어간 자연의 소리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람은 짜증 나게 시끄러웠다.


'이게 2시간 뒤에 맞춰놨던 알람이었나...'


눈을 뜨지도 못하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팔을 뻗은 채 알람을 껐다.


마침 깊은 잠에 들려할 때, 알람이 울렸다는 사실에 조금 괴로웠다.


학교를 가기 싫은 나의 마음을 뒤로한 채,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부스스한 채로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본다.


'어... 머리를 감는데 5분이고...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는 게 10분, 

까치산역까지 걸어가서 교대역을 가면 7시 30분...'


대학교 종강을 앞둔 나는, 

서울에서 두 시간 걸리는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몸을 움직여야 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며 생각했다.


'오늘 시험이 끝나면. 학교를 안 가도 되니까.. 그걸로 된 거겠지..'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씻으면서 틀 노래를 찾기 위해 핸드폰의 뒤적거리다가 무언가 허한 느낌을 받았다.


'어... 이게 뭐지..?'


새벽부터 빨간색 알림으로 가득 차야만 했던 학과 톡방들이 오늘은 유독 조용한 게 이상했다..


분명 그 자식과 친구들이 통학버스를 언제 탈 지,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는 등, 


별별 얘기가 카톡에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잠잠한 톡방을 보며 '어쩌면 얘네 시험을 못 볼 수도 있겠는데'라는 희망회로를 돌리며 학교를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컴컴한 작업실을 나와, 사람이 바글거리는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서까지, 그 녀석들의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불현듯.. '이대로 그 자식이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


왜 이렇게 그 녀석을 미워하게 됐을까..



마침 자리가 빈 지하철 의자에 앉아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그 친구와 재밌게 다녔지... 서로 좋아하는 음악도 같고.. 얘기도 잘 통했는데..'


순간 그 녀석의 과거를 착하게 포장하려는 나를 바로잡으며, 그날의 일을 상기시켰다


'그때는 몰랐지.. 그 녀석이 주변 사람들한테 나를 험담하고 있을 줄은..'


그 친구를 싫어하게 된 이유


그 녀석은 내가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바보 같아 보인다' 또는 '감자만 좋아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친구'라며 동기들에게 이상한 선입견을 씌우고 다녔다.

그 얘기를 듣고 그 녀석의 뒷담에 거리를 둔 친구도 있었지만,

또 반대로 그 얘기에 동조하며 나를 보며 의미 없는 미소를 날리는 친구들도 생기게 되었다

양아치 고등학교에서 뒷담 까는 것만 3년을 해왔던 건지,

침을 찍찍 뱉고 담배를 피우며 나를 험담했을 그 녀석의 모습에 나는 동기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되었다  

양아치 고등학교.

흔히 있는 문과, 이과로 나뉜 것이 아니라 예체능에 특화되어 있는 그 자식이 다니던 고등학교는

예체능보다 담배를 먼저 배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판이 나쁜 학교였다

그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 동기들을 보더라도 모두가 애연가인 것을 보면 그 소문은 사실임이 확실했다.

그 녀석이 양아치인 것은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내가 거리를 두어도 뒷담을 계속하는 것은 큰 잘못이었기에,

언제부턴가 저 녀석과 친구들을 참교육 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 나를 욕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날부터, 


학교에서 그 녀석 얼굴을 마주치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곤 했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녀석을 혼내줄 수 있는 방법을 종종 생각해보곤 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기에.. 가급적 눈에 띄지 않는 복수를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이성이 생겼을 때, 당사자에게 진실을 전할까..'


'지갑을 잃어버리게 해서 집을 가지 못하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첫 번째로는 내가 생각보다 화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번째는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라 생각했기에, 


그 녀석이 먼저 인사를 건네도 그냥 모르는 척 지나갔다.


그런데 바로 오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아침 07:00


그 녀석과 친구들은 전날 거하게 술을 마셔 방금 숙취로부터 깨어났고,


8시 막차를 겨우 겨우 탈 수 있을 거라는 단서를 입수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그 버스를 타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 07:50


이미 교대역에 도착한 나는 버스 기사님에게 버스가 몇 대 남았는지를 물어보았다


"늘 그렇듯 8시 막차고.. 이 버스 가고 나면 2대 더 있어.."


기사님의 얘기를 듣고 찰나에 계획을 세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계획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막차에 한꺼번에 탑승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와 같이 버스를 타기로 했던 친구들과 그리고 덜 친한 친구들에게 같이 버스를 타자고 짧은 시간 영업했다.


그리고 열 명을 모은 시점에 그 녀석이 있는 단체 톡방에 오래간만에 얘기를 남겼다 


'생각보다 사람들 많이 없어서 천천히 와도 될 듯'


'오오 땡큐 ㅋㅋ' 


나는 나와 같이 가려는 친구들에게 급해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핑계와 함께 주변 상황을 살폈다


내 친구들이 빨리 타자는 얘기에 미안함을 연기하며, 저 멀리서 막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원활한 이해를 위해 우리 학교의 특징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우리 학교는 1. 본교2. 서통이라는 것으로 나뉘어 있다


본교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뚜벅이를 뜻하며, 반대로 서통은 서울에서 통학하는 것을 뜻한다.


작년에 입학한 나는, 집안 형편상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없었기에


본교 기숙사에서 1년간 대학 생활을 했다.


서통과는 다르게 본교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있어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다.


지금 학교를 같이 가려는 친구들 역시 본교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친구들 뿐이었다



아침 08:00


그렇게 막차가 오자마자 나는 열 명의 친구들과 한꺼번에 버스에 탑승했고,


갑자기 버스 자리가 빨리 차버려 서둘러 와야 될 것 같다는 얘기를 톡방에 남겼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만석이었다)  


기사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버스는 진짜 막차였고 톡방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학교 근처로 가는 남부터미널 버스가 있는지를 확인하며,

가장 빠른 버스가 11시 임을 알고 한시름 걱정을 덜었다.


톡방을 보면서 뿌듯해하던 중.. 

그 녀석 무리 중 한 명이 택시라도 함께 타야 할 것 같다는 얘기가 내 기분을 망쳤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돈을 많이 쓰면 이 방법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못됐다고 생각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 녀석이 톡방에 시험 시간이 언제인지를 물어보았고, 

그 녀석의 지인이 10시와 12시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사실은 틀린 정보다. 


우리가 보는 시험은 10시에만 볼 수 있었고,


12시 시험은 본교에 거주 중인 학생들만 볼 수 있었던 시험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소식을 톡방에 올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 녀석의 무리들이 안절부절못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학교로 이동했다.


두 시간 정도 잠을 잔 게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인지 바로 쪽잠을 청했고,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시험을 보기 위해 교실로 이동했다.



아침 10:00


교수님은 시간 관리에 엄격하신 분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 녀석들이 혹시라도 일찍 도착할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문 밖에서 교수님의 대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저기 학생! 시험 시작할 거니까 이제 들어와..."


가장 마지막으로 교실에 입장하면서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하기 위해 문을 잠갔다


"철컥"


시험을 보고 20분 정도 흘렀을 즈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녀석들이 문 앞에 붙어있는 <서울: 10시 시험 / 본교: 12시 시험> 종이를 보고 경악을 한 것만 같았다.


목소리는 분명 그 자식과 친구들이었다.


시험을 지금이라도 봐야 하는 건지 고민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내 주머니에서 울리고 있는 다급한 진동과 그중 누군가가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시험 시간이 흐르며, 시험을 다 풀었으면 나가도 된다는 얘기에 조금씩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하면서,


열리는 문 틈사이로 조마조마하고 있던 그 친구들이 보였다.


나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아래로 떨군 뒤 씩 미소를 지었다


많은 학생들이 시험을 거의 다 끝 마쳤을 즈음.. 그들이 쭈뼛쭈뼛 앞 문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미 시험을 다 풀었지만 그들이 교수님께 어떤 변명을 하는지 궁금했다


"시간을 헷갈렸어요"


"들어오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못 들어왔어요"


"혹시 다른 날에 시험을 볼 수 있나요?"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 속에


교수님은 화를 내며 단호하게 얘기했다.

"시간은 사전에 공지를 했고, 시험 시작 시간에 맞춰서 와야지 그게 무슨 근본 없는 소리야!!!"


다른 날에 시험을 볼 수 있냐는 그 녀석에 물음에는 의외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종강이 코앞이라 다른 날에 시험을 보는 건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내년 강의를 듣는 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얘기를 교수님이 직접 해주시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그냥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그들에게 여유를 주었을 뿐인데


그 대가가 재수강이라니 생각보다 거대했던 나의 노력에 조금은 무서움을 느꼈다


그 녀석들이 갑자기 나를 찾아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나도 운이 좋았다는 얘기로 퉁치면 되는 말이었으니까..


'한 학기에 400만 원, 3명이니까 대략 1,200만 원 정도 하겠지'


그 정도면 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에 좋은 비용이라 생각하며,


버스를 함께 탄 친구들과 학식을 먹으러 이동했다.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한 학기를 남겨둔 채, 군입대를 위한 휴학 신청서를 제출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그 녀석의 소식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군대 일과를 마치고 본 페이스북에 유독 좋아요가 많았던 게시물이었다


클릭해 보니 그 녀석의 '엠티 인증 글'


'2년제 대학에 3번 엠티 참여하는 나 같은 흑우 없제'라는 글을 보며 


'이 녀석 생각보다 더 멍청한 사람이구나'라 회상하며 거리 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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