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갑자기 비싼 와인을 가져왔다
나는 와인을 내 또래에 비해 많이 마셔본 편이다.
술을 좋아하는 것이 그 이유일까? 하지만 와인을 선택할 수 있는 장소는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저렴한 와인인 경우가 많았고, 한 번은 마음을 먹고자 와인 가게에 들르게 되면 생각보다 가격이 높은 와인을 보고는 이 정도 금액이면 다른 것을 몇 병은 살 수 있다는 가성비 그득그득한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둔다.
'비싼 와인이면 다를까?'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와인을 제대로 즐겨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그 기회를 기다리던 도중 동생이 가게에서 판매하는 와인을 가져온 것이 화두가 되었다.
눈이 조금씩 올 듯 말 듯한 영하의 날씨 속에서 나는 조금 이른 퇴근을 했다.
항상 저녁에 출근을 했었던 나는
오랜만에 가져보는 하루의 여유에 저녁이라도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연말이니 하루 정도는 좋은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살고 있는 남동생에게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일단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요새 일은 어떤지 요새 어떤 것에 재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렸을 때부터 싸움을 싫어하던 나의 성격 탓에 그럴 수도 있으나 동생에게 저녁을 제안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동생의 퇴근 시간이 길어지며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다는 느낌이 드는 찰나 동생이 등장했다. 그것도 시꺼먼 병을 들고 있는 상태로 말이다.
"이거 가게에 있는 와인인데 오늘은 이게 좀 필요할 것 같아서 가져왔어"
동생이 말했다.
어떤 음식을 먹는 게 제일 괜찮을까?
비싼 와인에는 그에 맞게 비싼 음식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나의 생각
동생은 그런 나를 나무라며 와인이 이미 비싸기에 그에 맞는 메뉴만 선택하면 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 어떤 음식이 괜찮을까?' 이내 고민하다 얘기했다
"피자?"
"아니 나 피자 얼마 전에 먹었어"
"그러면 대방어?"
"연어면 상관없는데 해산물은 연어 밖에 못 먹어"
대방어가 나름 씹는 식감이 고기 같아 내 의견이 통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것 역시 무리였다.
결국 얘기는 돌고 돌아 날도 추우니 집에 남아있는 재료로 요리를 하기로 했다.
가지 한 덩이와 애호박 그리고 싹이 곧 자라날 것 같은 양파, 마지막으로 파스타 면과 토마토소스.
이 재료로 어떤 요리를 만들지 고민하다가 결국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추가로 냉동실에 있던 연어를 해동시키기로 했다)
동생은 나와 다르게 요리를 좋아한다.
연말에 모임이 있을 때면 동생은 지인들에게 '라따뚜이'나 '수제쿠키'와 같은 정성이 듬뿍 들어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이래도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는다라며 불평하는 것은 덤이지만)
화이트와 블랙 그리고 로제 와인에 무난하게 어울리는 파스타.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양을 만들었고 나는 허기진 속을 달래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인스타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빠르게 찍고 한 입 맛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입을 먹으면서도 이미 시선은 와인으로 고정되었던 것은 흠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 나는 이번 시음에서는 최대한 우아한 사람처럼 와인을 마셔보겠노라 다짐했다.
비싼 것은 처음 순간부터 다르다
코르크 마개로 동봉되어 있지 않기에 굳이 와인 오프너를 찾을 필요도 없었고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동생과 건배를 하며 시음을 하기 전 향을 맡아보았다. 그 향은 은은하게 올라오는 커피와도 같았다.
내가 그전에 마셨던 와인은 알코올이 급하게 들어간 것이 그 이유에서인지 코를 툭 치는 듯한 향이 먼저 올라왔는데 같은 도수의 와인이어도 다른 향을 머금을 수 있음에 신기했다.
그리고 첫 모금을 가볍게 넘겨 보았다.
'부드럽다'
와인이 분위기를 마시기 위해 마시는 술이었다면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와인은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완벽한 촉매제 역할을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한 잔 두 잔 마셔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 바로 생각나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다.
'드라이하지 않다', '바디감이 좋다', '블랙베리의 향이 잘 느껴진다'
이런 전형적인 얘기가 아니라 나의 느낌으로 이 맛과 향을 단어로써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와인이 절반 정도 남았음 즈음, 카메라로 와인을 찍어 검색하며 그 설명을 확인했다.
'제이제이한의 웨스턴 릿지 쉬라즈'는 포도의 퀄리티를 끌어내기 위해 손수확하며 프랑스산과 아메리카 오크를 혼합해 숙성향에서는 바닐라 모카 다크초콜릿이 느껴는 게 특징이다. 레드베리, 자두, 신선한 산도, 벨벳 같은 타닌, 긴 여운과 복합미가 특징인 와인.
설명을 좀 더 간단히 풀어보자면 내가 맡은 향에서는 '바닐라와 모카 그리고 다크초콜릿'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레드베리와 같은 타닌, 긴 여운이 느껴지는 와인이라고 한다.
그렇게 정보를 파악하고 다시 향과 맛을 보니 조금은 더 다채롭게 그 풍미가 다가왔다. 내가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던 이유는 조금은 낯선 단어였던 '산미' 때문이었다. 한 모금에 이리 긴 여운이 느껴지는 이유는 바디감이 익숙해져 지루함을 느끼기도 전에 호주식의 산미가 잔잔히 그 여운을 길게 늘여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계속 곁들이면서도 오묘한 맛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혼합된 오크를 사용했던 것이 그 이유였고, 조금씩 향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아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 먼저 맛과 향에 집중한다
● 이후 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상대방과 의견을 공유한다
● 정보를 찾아보고 다시 시음해 본다
이처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음식들이 아래와 같은 절차로 이유를 찾기 시작했을 때, 조금은 더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동생과 와인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많은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와인의 향을 더 느끼고 싶다면 상온에서 목 넘김을 위한다면 차갑게 마셔야 한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동생이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때도 있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