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림을 대하는 방송의 갈래는 무척이나 달랐다. 생각해 보면 그림이라는 갈래도 여러 가지였다. 만화 또는 웹툰 원고를 그리는 사람, 단순히 낙서를 그리면서 소통에 포커스를 맞춘 사람, 물론 선정적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거기서 조금은 특이한 그림을 그리는 다람쥐 ‘D'가 있었다. 다람쥐 캐릭터를 내세운 방송이었는데 인스타 툰으로 볼법한 귀여운 그림체였지만 그와 반대로 거친 색감이 마음에 들어 방송을 구경했다. 'D'의 방송은 그림만 그리지 않았다. 낙서를 그리다가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간단하게 소통을 나누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시청자의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막상 채팅을 치자니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상황으로는 시청자와 'D'가 주말에 있었던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떤 채팅을 치는 게 매너를 지키는 건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W'씨의 방송에서는 시청자가 'W'씨를 놀리고 게임에 훈수를 드는 상황이 많아 온전한 채팅을 보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가만히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그림에 대해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천천히 입력했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들어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오글거리는 채팅 중 하나다. 채팅을 보고 'D'가 답변을 한다. '밀린 님 감사합니다~' 신기했다. 내가 채팅을 치니 실제 사람이 반응을 해준다. 이게 실시간 채팅이구나 싶었다. 채팅이 한 번 입력되고 나니 그다음 채팅을 치는 것은 조금씩 쉬워졌다.
채팅을 치며 방송을 자주 구경하다 보니 전형적인 대화의 흐름은 가벼운 잡담에 가까웠다. 날씨에 대한 얘기나 작은 행사 소식들, 밥을 먹었는지에 대한 얘기와 같이 말이다. 이러한 잡담은 다른 방송을 하러 가더라도 똑같이 흘러가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방송을 자주 들리게 되니 점점 나누는 대화들이 많아지고 다른 방송을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이 빨간색 다람쥐 방송에 정착했다.
한 번은 ‘D'씨가 방송하다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따분해하며 자기 대신 수다를 떨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 맥락을 보아하니 '디스코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쓰는 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인터넷에 '디스코드 사용법'을 검색해 조금씩 프로그램을 익히기 시작했다. 분명 내 세대는 인터넷에 능통한 세대라고 했는데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히는 내 모습이 아재 같으면서도 젊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다들 잘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나 혼자 쩔쩔매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단순히 통화를 한다는 것 만으로는 긴장감을 주지는 않지만, 컴퓨터를 통해 보이지 않는 대상과 벽을 보며 대화하는 그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벽을 보면서 누군가가 거기 있는 것처럼 통화를 하고 그것이 고스란히 방송으로 송출된다는 것이 긴장감을 조성시켜 주었다. “여보세요??” 내가 말하는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밀린 님? 잘 들리시죠?”
“아 네... 잘 들립니다..”
처음 시도하는 통화는 그런 느낌이었다. 채팅은 분명 쉽게 쳐지는 것 중 하나였는데… 무언가 많은 사람에게 내 통화를 공개하는 느낌이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썰을 가져오셨나요??”
아 맞다 대화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필요했구나. 잠깐의 생각을 해보고 생각나는 대로 썰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쇼미더머니]를 나간 썰,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를 짝사랑했던 썰, 이야기하면 채팅으로 내 이야기에 대한 반응을 흘깃 보게 된다. ‘ㅋㅋㅋㅋ’로 도배가 된 채팅창과 내 얘기를 집중하는 사람들 채팅을 보며 그때 느꼈다.
‘이래서 방송을 하는구나...’
그 후로도 종종 ‘D'는 시청자들과 대화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칠 때는 ‘OO님은 방송하면 잘할 것 같다’는 얘기를 끝에 붙이기도 했다. 그것이 그저 빈 얘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부추김이 조금씩 늘어나니 갑자기 ‘진짜 방송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 ‘D’의 방송 빈도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줄어들기 시작하고 조금씩 방송을 보는 사람들도 사라지게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재밌게 소통을 나누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일찍 컴퓨터를 끄려고 할 때 'D'의 시청자들이 역으로 방송을 시작하는 기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개인 방송은 이런 흐름으로 가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방송을 보고 나도 한 번 방송을 해볼까?' 하는 그런 느낌말이다.
나도 잠깐 방송을 해보았지만 시청자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3일 만에 방송을 접었다. 그렇게 시작되는 1년의 방랑기 동안 다양한 방송들을 눈팅하듯이 구경하며 다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봤던 ‘D'의 방송은 친목적인 성향이 강한 방송이었고 의외로 격식을 차리고 방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특정한 방송을 참여한다는 느낌보다는 멀리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들 의외라서 놀랐던 점들을 하나하나씩 얘기하고 싶다.
우선 가장 충격을 받았다는 것부터 시작을 해본다면 아마도 현실과는 다른 '돈'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