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무런 생각 없이 방송을 하던 날이었다.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방송을 마무리하려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카톡에 올라오는 오래간만에 연락이 오는 친구에게 갑자기 의미심장한 얘기가 올라왔다.
“밀린아 너 방송해?”
예상치도 못한 친구의 추궁에 등골이 싸늘해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부모님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얘기를 친구들이 어떻게 알아버렸다. 일단은 웃어넘겼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올 줄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랐던 건 예상하지 못했다. 평소에 그 친구도 방송을 틈틈이 시청하는 시청자였다. 오죽하면 방송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에 방송하는 것을 들키게 된다면 아마 그 친구가 먼저 파악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아니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친구에게 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물어봤다.
‘아니 방송 과정을 보고 있는데 밀린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길래 혹시나 해서 봤거든..
그런데 목소리랑 모습까지 완전히 너더라고..’
그랬다. 그게 이유였다. 내가 오래전부터 쓰던 '밀린'이라는 닉네임을 그대로 사용하던 사실이 강제로 친구에게 방송 커밍아웃을 알려줬다. 그런 면에 있어서 큰 거부감은 없었지만, 방송을 하는 것에 있어서 큰 부끄러움은 없었다. 자극적인 방송도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과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으니까...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방송한다고 고백하기에는 부끄러웠다. 퇴사하고 난 후에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 모습이 어딘가 철이 없어 보였고 창피해 보였다. 어쩌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방송이라는 도피처를 찾았던 내 양심이 어딘가 찔린 걸지도 모른다. 내 몇몇 지인들도 단순히 방송을 사회 악으로 생각하거나 기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방송을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 스트리머를 자랑스럽게 봐주는 사람이 몇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니까. 그렇게 자랑스럽지 않은 행보라는 표현이 옳겠다. 단순히 방송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나를 보는 시선이 한없이 낮아지니까 부모님에게도 온라인으로 하는 창작자들 모임이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얘기를 하기도 했다. 친구가 얘기했다.
‘야 그런데 방송 재밌더라 종종 놀러 가도 됨?’
친구가 내 방송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금세 시무룩해 있다가 갑자기 심리가 바뀌는 내 모습이 웃기긴 하다. ‘당연하지, 편하게 놀러 와~’ 친구는 방송 에티켓을 지키며 종종 방송에 놀러 와 소통을 나누기도 했다. 내 방송을 보며 응원해 주는 사람이 생겨 기분이 좋아졌다. 실제로도 자주 보지 못해 미안할 따름인데 이렇게 온라인으로 얘기를 나누니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나 다른 친구에게 들켰다. 이번에는 내 인스타그램 계정과 연동된 방송 계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알고리즘이 미웠고, 그런 알고리즘을 지워보려 했지만, 이목을 끌기 위한 인스타그램은 그것을 허용해 줄 생각이 없었다.
'젠장..'
나중에 친했던 친구와의 결혼식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내가 방송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친구도 방송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만 모르고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알고 있던 불편한 진실. 개인 방송을 하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것이 당연한 이 사회의 현실 속에서 방송을 들킨다면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것이 현명한지를 생각했다. 결론은 나의 정체를 알아버린 사람들에게 올바른 참여 문화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내가 방송한다는 사실은 알았던 아무개는 자신이 지인이라는 것을 알리며 방송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했다. ‘아니 밀린님 저 OO인데요’ 이렇게 전체적인 흐름에 엇갈리는 얘기를 연달아하다 보니 그 지인 시청자를 차단하게 되었다. 그런 느낌이다. 새로 음식점을 개업했는데 손님이 아니라 지인들만 계속 가게에 찾아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난리를 부리는 느낌이랄까? 지인들만 오는 방송이 무슨 방송일까 그냥 친목을 도모하는 회의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니 지인이 방송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조용히 지나갈 것.
괜히 잘못된 얘기를 하다가 차단받아 슬퍼지려 하기 전에 격식을 갖추자. 모두에게 볼 수 있는 방송에서 사적인 얘기를 공유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