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너를 비추어보고 미래의 너를 예측해보면 그 중간 정도가 현재이다.
서울에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가 읽고 싶었던 적이 있다. 엄마에게 부탁해서 서울 자취방에 택배로 보내달라고까지 했었다. 그런데 막상 시간 내어 읽기는 쉽지 않았고 단 한 장도 펼쳐보지 못했다.
고향에 내려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읽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일기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연히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보려고 넷플릭스에서 켰던 '퍼펙트 데이트'라는 영화에서 예상치 못한 명대사를 발견했다.
18살인 아들은 아빠에게 어떤 사람이 돼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얘야 너는 아직 겨우 18살이란다
과거의 너를 비추어보고 미래의 너를 예측해보면 그 중간 정도가 현재의 모습이라고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고 자아성찰을 통해 나를 이해해보기 위해서 일기를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9년 동안의 타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루도 마음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9년 만에 내려온 고향에서 잘 적응하면서 살 수 있을까? 내가 고향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게 되진 않을까? 서울에서 살다 왔다고 사람들이 나를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진 않을까?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하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은 잘할 수 있을까?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다시 사랑을 할 수 있기는 할까?
29살의 나는 또 한 번의 고비를 맞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6개월이라는 자유시간이 주어졌지만 사실은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내가 정했다. 7월 여름에 내려와 1월에 재취직을 하기 전까지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다. 사실 난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는 믿음으로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지만 앞으로의 까마득한 미래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6개월이라는 자유시간은 지금 생각해보면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동안은 일은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이유도 포함되었다. 나중에 결혼하려면 결혼 자금이 있어야지. 욜로족은 무슨 욜로족이야? 남들은 퇴사하고 다들 해외여행을 다녀온다는데, 나는 여행을 다녀오면 사라질 내 퇴직금이 아까워서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일을 쉬고 나니, 어떻게 쉬어야 할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우선은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마음적 여유가 없어서 미루고 있던 것들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나에 대한 공부를 했다. 나는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도 있게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을 먼저 하면 좋을까?
그렇게 우리 집에 있는 일기장이란 모든 일기장을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5학년 때까지의 일기장이 나를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 6학년 때부터는 이 일기장이 선생님한테 보인다는 것을 알고 그랬는지 솔직한 이야기보다는 형식적인 하루 일과 나열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때는 학교에서 일기검사를 제대로 안 했는지 제대로 기록된 일기가 없었다.
일차원적이지만 그때의 나는 내 감정에 꽤나 솔직한 아이였다. 동생과 싸운 날은 동생이 너무 밉고 싫다고 적혀있고, 아빠가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신 날은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적어놓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바로 아빠에게 혼이 났더니 아빠가 밉다고도 적혀 있었다. 공부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부는 정말 싫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어떤 건지, 어떤 과목을 싫어하는지도 적혀있었다. 일기장을 읽고 다시 그때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너무 소중한 보물이었는데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일기장을 보관해주셨던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때의 나는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지금은 어떤가?
일기장을 읽고 나는 내가 좀 더 애틋하고 좀 더 아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내 20대를 되돌아보면 나를 많이 채찍질하고, 아껴주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 앞으로 나를 좀 더 사랑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피하지만 그때의 나의 일기장을 읽고 느낀 부분들의 일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