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곧장 출근안하고 내가 ***으로 가버린다면?'
다들 한 번씩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출근하다가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가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 '이대로 곧장 출근 안 하고 내가 ***으로 가버린다면?' 여기서의 ***은 각자가 가고 싶은 공간이겠지. 나는 백수가 되기 전 출근길에 하루는 이런 적이 있다. 차로 출근을 하는 길이었다. 나는 날마다 달라지는 도착예상시간을 알기 위해 매일 네비게이션에 한번 찍어보고 출발하는 습관이 있었다. 당시에 차 네비게이션에 즐겨찾기로 해 둔 주소가 3가지가 있었는데, '회사', '집' 그리고 '헬스장'이었다. 이 날은 이제 차를 타고는 네비게이션에 '회사'를 누르려는데 잘못하고 손이 미끄러져 밑에 있던 즐겨찾기 '헬스장'을 누른 것이었다. (자, 여기서 헬스장의 의미는 나에게 조금 남다른데, 이 당시 헬스에 미쳐 하루에 두 번씩 가던 시절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아 '이대로 출근을 안 하고 헬스장으로 가버린다면?'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상상에 그쳤지만, 그 0.5초의 행복했던 상상은 눈물 날 정도로 간절했고,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현실에 순간적으로 나를 좌절시켰다. 이때 약간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시절이라 저 순간이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간 순간이 아니라 정말 눈물이 날 뻔했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백수에게 상상만 했던 그런 순간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이제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가고 싶은 어느 곳이든 다 갈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눈을 뜨고 어디를 갔냐면, 피아노 연습실에 갔다. (요즘 내 인생은 헬스와 피아노로 가득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 피아노 레슨을 받은 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녁시간 말고 낮에 오시면 더 좋으실 거예요. 요즘 날씨도 너무 좋고, 낮에 오시면 저희 스튜디오 앞이 나무가 많아서 엄청 예쁘거든요." 그래서 오늘 저녁시간에 연습실 예약해 둔걸 취소하고 오전에 곧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1층에 위치해있는 우리 피아노 학원.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하나의 모퉁이를 돌면 이제 학원이 보인다. 모퉁이를 돌아 안쪽의 학원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가는데 가까이 갈수록 눈앞에는 풍성해진 잎사귀들로 가득한 푸르른 나무들이 점점 가득 찼다. 나무의 뒤 배경으로는 짙은 녹색의 산이 받쳐주고 있고 그 산 뒤로는 아직 오전이라 연 하늘 색의 하늘이 배경이 되었다. 눈이 저절로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름이 오는 냄새. 생명이 돋아나는 냄새. 이러한 세상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익숙함에 바로 적응해버릴 것 같아서 무섭지만 그래도 우선 오늘은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는 점. 내일 오전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내가 생각했던 또 다른 상상, '날씨 좋은 날의 아침, 서울의 어느 핫플카페에서 아아를 손에 들고 멍 때리기'를 실현하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