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백수의 하루루틴

백수의 하루 일기

by myeong


본격적으로 백수의 루틴을 쓰려고 하니 살짝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이 인간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저하나만 행복할 뿐입니다. 오늘의 하루는 이러했다. 우선 눈을 뜬다. 주식창을 킨다. "아 오늘은 내 반려주식 얼마나 더 떨어졌으려나?.. (확인 후)아. 답이 없네.." 핸드폰 다시 원래 위치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겨우 몸을 일으킨다. 거실에 나가면 아빠가 거실에서 사이드 테이블에 앉아 일본어 공부를 하고 계신다. 최근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신 아버지. 몇 달째 진행 중이시다. 이 백수 딸은 면목이 없습니다. 아빠와 간단히 아침 인사를 나누고 주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가 아빠가 아침 일찍 달여놓은 버섯차를 컵에 덜어 마신다. 아 따뜻하다. 아침에 무조건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뜨뜻한 물을 찾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방에 들어가 가방을 싸기 시작한다. 첫 번째로는 내 소중한 하늘색 악보집. 이번에 피아노 학원을 새로 등록하게 되면서 까만색 악보집에서 하늘색 악보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피아노 진도표. 어릴 때의 추억 속의 진도표와 신기하게도 동일하다. 거의 30년 동안 피아노의 진도표 방식은 어떻게 그대로일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그런 거겠지? 그리고 이제 운동복. 피아노 학원을 갔다가 바로 헬스장에 가야 하기 때문에 함께 챙겨준다. 여기까지 가방 챙기기가 끝이 나면 피아노 학원으로 출근한다.


피아노 학원을 가면 요즘 내가 항상 첫 번째 연습자인가 보다. 피아노 현관의 문이 잠겨있다. 선생님께서 첫날 알려주신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아무도 없는 적막한 피아노 학원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이 적막함을 좋아한다. 연습실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서서 캡슐커피 하나를 커피머신에 넣고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 한 잔 들고 내가 애용하는 2번 연습실로 입장해 준다. 2번 연습실 피아노는 1번 피아노 보다 부드럽게 쳐지는 느낌이라 항상 2번 연습실 피아노를 쓰고 있다. 내가 피아노 연습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딱 1시간. 지금 감성을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시간에 피아노 연습실에서의 시간이 지나간다. 피아노 연습이 끝나면 이제 헬스장으로 갈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을 안 먹어서 매우 허기진 상태라 헬스장 건물 1층에 있는 이삭토스트로 향한다. 원래 운동 직전에는 뭐 안 먹는데, 이날은 정말 힘이 없었다. 이삭토스트서 내 최애메뉴는 무조건 햄스페셜토스트.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 헬스장으로 올라가서 오늘은 유산소 + 하체운동을 약 한 시간 반 정도 해준다. '오늘 자극이 좀 괜찮네?' 이렇게 행복한 오전루틴이 끝이 난다.


자 이제 내 작업실 공간으로 넘어갈 차례이다. 오늘은 현관문을 열고 한낮에 방에 들어와 보니, 뭐야. 여기 뉴욕인가? 날씨가 심하게 화창해서... 하늘이 너무 맑아서... 미치겠네.... 4월은 이렇게 하루하루가 행복하구나. 이 날씨는 피아노의 날씨이다. 이 시간을 놓칠세라 얼른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쳐 본다. 이 방에 있는 피아노는 전자피아노라 건반의 느낌이 안 살기는 하지만 모든 연습은 옳을 뿐이다. 피아노 악보 뒤로 창밖의 맑은 하늘도 함께 보인다. 한 번 치고 진도표에 동그라미 색칠, 또 한 번 치고 색칠. 피아노 연습에 지쳐갈 때쯤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와 노트북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본다. 그리고 노트북 앞에 앉아 이렇게 오늘 하루도 기록을 해 본다. 이렇게 써보자니 너무나도 특별할 것 없는 한가한 일상이다. 그래도 이 한가한 일상 속에는 내 작은 환희가 섞여 들어가 있다. 그거면 됐다. 작은 환희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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