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우리 집 거실은 짧지만 강렬한 축제의 장이 된다.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의 고단한 퇴근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정적이었던 집안은 금세 활기찬 활주로로 변한다. 첫째 아이가 "아빠!" 하고 달려가 안기면, 남편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비행기를 태우듯 거실을 한 바퀴 돈다. 엔진 소리를 흉내 내는 남편의 굵은 저음과 아이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뒤섞여 거실을 가득 채운다.
그 찬란한 풍경에서 한 발짝 비껴선 곳에,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는 작은 아이.
이제 막 첫돌을 앞둔 연년생 둘째다. 보통의 아이라면 "나도 나도!"라며 질투 섞인 조름을 부릴 법도 한데, 둘째는 그저 고요했다. 좋아하는지, 혹은 내심 서운한지 도통 내색하지 않는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대할 때면, 엄마인 나의 마음속에는 이름 모를 불안의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이곤 했다.
첫째는 모든 것이 눈부시게 빨랐다. 다섯 달 만에 기어 다녔고, 열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첫걸음마를 떼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를 먼저 내뱉어 남편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2.3kg이라는 작고 가녀린 무게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아이. 인큐베이터 신세는 면했지만, 아이의 성장은 늘 거북이의 걸음처럼 느긋했다.
돌잔치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아이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괜찮아, 우리 아이는 조금 늦는 것뿐이야."
남편과 나는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굳건한 믿음을 확인하곤 했지만, 타 들어가는 속마음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옹알이는 하면서도 배가 고파 보채지도 않고, 자고 일어나면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창밖을 보는 아이의 뒷모습. 그 정적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작은 시험을 준비했다. 늘 아이를 안아 따뜻한 우유병을 입에 물려주던 일상을 잠시 멈추기로 한 것이다. 아침 우유 이후 간식을 주지 않아 배가 출출해질 즈음, 아이의 시선이 가장 잘 닿는 곳에서 3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우유병을 놓아두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는 척, 혹은 욕실 청소를 하는 척하며 아이의 동태를 살폈다.
그때였다. 내 생애 잊지 못할 기적이 일어난 것은. 기는 법을 몰라 앉아만 있던 아이가 조심스럽게 배를 바닥에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배를 밀며 우유병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향해 온몸을 던지는 그 처절하고도 숭고한 사투. 마침내 우유병을 손에 쥐고 입에 문 아이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떨려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아이의 성장은 마치 마법처럼 가팔라졌다. 배밀이가 어느덧 배를 든 기어 다니기로 바뀌더니, 불과 일주일 만에 아이는 아무것도 잡지 않은 채 스스로 대지 위에 일어섰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아이의 뒷모습은 거인처럼 당당했다. 뒤뚱거리며 내딛는 그 한 발 한 발에서 나는 생명의 경외감을 보았다.
진정한 가르침은 평범한 저녁에 찾아왔다. 남편이 맥주 한 캔을 사러 가겠다며 큰아이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당연히 첫째가 달려 나올 줄 알았던 현관에는 뜻밖에도 둘째가 털썩 앉아 있었다. 아이는 작은 손을 부르르 떨며 낑낑대고 신발을 신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 고사리 같은 손놀림과 신발 속으로 발을 집어넣으려는 간절한 몸짓을 보며 나는 비로소 아이의 침묵 속에 숨겨진 속마음을 읽었다.
'나도 아빠랑 언니랑 저 문밖의 세상을 함께 걷고 싶어.'
아이는 그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언니가 아빠 손을 잡고 편의점에 가서 과자를 고르는 그 소소한 일상을 보며, 아이는 마음속으로 수만 번 첫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다. 한 발을 떼기 위해 아이가 홀로 감내했을 수많은 불안과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좌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마침내 신발을 신기까지 아이가 겪었을 고민의 무게가 내 가슴을 쳤다.
아이의 걸음마는 단순히 신체의 발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믿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거대한 의지의 선언이었다. 나는 부끄러운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혹은 실패가 두렵다는 핑계로 불안에 가로막혀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나의 수많은 목표가 떠올랐다. 아이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신발을 스스로 신어보려는 그 숭고한 '실행'에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둘째 아이의 돌잔치에 입힐 예쁜 한복을 고르며, 아이가 아장아장 내 품으로 걸어올 그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리고 다짐한다. 아이가 무거운 신발을 혼자 신어냈듯, 나 또한 내 삶의 문턱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첫발을 내디뎌 보기로. 아이의 느린 걸음마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성장의 속도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마음의 근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