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가치를 찾아서
다름이 불편해지도록 살아왔다
"강남의 30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기보단, 아름다운 정원과 창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있는 나의 아늑한 집의 가치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는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에서 자라고, 똑같은 모양들의 학교에서 동일한 구조의 교육과정을 받고, 비슷한 상권 내 학원을 다니고, 의사, 변호사, 대기업 똑같은 직업 목표와 인생을 향해 살아간다.
심지어 똑같은 브랜드와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여가생활을 보내는 모습마저도 너무나 유사하며,
대부분의 친구들이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스마트폰 모델을 선택하는 의존적인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다.
태어나서 자라며, 바라보고 교육받은 획일성으로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성이 만들어진다.
우리와 조금이라도 다름이 있는 친구를 인정할 수 없어 괴롭힘 따돌림이 생기고,
같은 30평대 아파트인데 너네 집은 10억인데 우리 집은 5억이네? 비슷한 와중에도 다른 숫자만이 비교의 대상이 되고, 그것으로만 차별하고 주눅 드는 친구들과 사회
그렇게 사회에 나와서
친구가 보유한 30억짜리 강남 아파트보다는, 나만의 정원과 창틀의 빗소리가 고즈넉하게 들리는 5억짜리 단독주택을 더 좋아한다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이가 주변에 있는지?
나와 네가 다른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름이다.
우리 모두는 다 알고 있다.
행복은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을. 순간순간 삶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며 만족하며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30억짜리 아파트가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획일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아웅다웅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옆에 두고 하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