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저녁 식사나 함께하자며 모인 가족들의 눈이 연신 한 곳을 향해 따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네의 눈길들만 그러했겠습니까.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 모두에는 그저 신기하고도 흐뭇한 웃음이 잠시도 떠나질 않았으니, 이제 갓 돌을 지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집안 아이의 종횡무진(縱橫無盡)한 동선(動線)을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이지요. 누구에게는 손주요, 또 누구에게는 조카아이였지만, 그 상황에서 그러한 촌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사실 그 순간, 오가던 식당 손님들의 관심 역시 아이의 종종걸음에 쏠려 있었으니, 언제부턴가 우리네 세상에서는 한 아이 한 아이가 모두의 소중하디소중한 보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절감(切感)할 수 있는 장면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 기억 속의 한 장면이 겹치는 듯했습니다. 한쪽 손에는 아들놈, 또 한쪽 손에는 이모님의 늦둥이 딸내미 즉, 이 사람에게는 이종(姨從) 동생의 고사리손이 쥐어져 있었으니, 누가 얼른 보면 오누이를 데리고 가는 모양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를 노릇이었지요. 그런데 그 이종 여동생이 어느덧 결혼해서 이렇듯 예쁜 조카딸을 눈앞에 데려다 두었으니, 그저 그 보물 앞에서 감회(感懷)가 새로울 따름이었지요. 종종 무심결에 내뱉는 표현 중에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되뇌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런 뭉클한 장면을 마주하노라면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덧없는 것만은 아니지 않으냐는 반문(反問)도 해보게 됩니다만.
‘9월이 힘들었다는 직장인들…’
지난 9월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인지, 뜬금없는 기사의 표제(標題)에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성혼(成婚)의 계절답게 잇따른 지인들의 결혼식으로 힘들었다는 이야기였던 모양입니다. 사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식의 행렬(行列)은 어느덧 찬바람이 제법 여물기 시작한 11월의 저물녘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현직을 떠난 이 사람과 같은 이들에게는 더욱더 숨 가쁜 주말을 보내도록 만들긴 합니다만. 그래도 참으로 다행스럽다 싶은 건 그렇듯 가정을 이룬 우리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2세를 맞이하고, 그 소중하고도 보배로운 새 생명들이 조금씩 저물어가던 기성세대(旣成世代)의 정신을 다시금 천국 같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관련 기사 : “이어지는 결혼식, 축의금 5만원으로 통일”…9월이 힘들었다는 직장인들 / 매일경제 (202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