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근성 vs 무쇠솥 근성’
라면으로 출출한 속이나 채워 볼까 싶어 냄비 하나를 꺼내 들고 보니, 오래전 학창 시절의 수업 장면 하나가 덩달아 떠오르는 통에 그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냄비 근성’이란 단어 하나로 인해 교실 전체가 분통(憤痛)을 터뜨렸던 수업이었으니 말입니다. 냄비라는 용기(用器)가 불 위에서 확 끓어오르다가도 금세 식어버리는 것처럼 조선인들 역시 무엇이든 진득하게 집중하질 못하고 금세 달아오르다가 또 쉽게 포기해 버린다며,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하(卑下)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수업을 듣던 아이들 모두가 화를 삭이질 못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바로 ‘무쇠솥 근성’이란 말이었던 듯합니다. 사실 우리네 전통을 제대로 이어온 이들이라면 마당 한가운데에다 무쇠솥을 걸어 놓고서 오래도록 설설 끓여내곤 했을 터이니, 우리네 정서(情緖)로는 무쇠솥 근성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겠냐는 것이었지요. 그러고 보면 시골 할머니 댁에서도 종종 무쇠솥에다 오래도록 국을 끓여 오가는 이들을 불러 대접하곤 하던 흐릿한 기억이 남아있긴 했습니다만.
‘모방 & 창조’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일본은 정교한 모방(模倣)을 거친 창조(創造)를 통해 전후(戰後) 국가 경제력을 키워 왔으며, 당시 상황으로는 우리와의 격차가 수십 년에 이른다는 이야길 듣고서 다시 한번 분을 삭여야만 했습니다. 우린 왜 그들처럼 기민하게 세상에 대응하질 못하느냐는 자괴감에 더불어 꼭 조만간 그들을 따라잡고 말리라는 다짐도 아이들의 표정에 결연히 떠올랐던 듯합니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작금(昨今)에 이르러 이젠 우리네 MZ 세대들이 일본의 국력을 우리와 견주어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당당한 상황에 다다랐으니, 참으로 반가울 따름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경제력이 이렇듯 탄탄한 경지(境地)에 다다른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가 쉴 새 없이 변해가는 지구촌 문화를 앞장서서 이끌 만큼 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독특한 성향에서 비롯된 게 아니던가 싶어 묘한 감회(感懷)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스낵의 생애는 ‘한입’으로 결정된다···‘
초단기 유행이 연속되고 있다는 스낵 시장에 관한 주말 기사를 대하며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당사자인 제과업계에서야 숨 막히는 경쟁이 벌어질 터입니다만,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결국 그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는 내공(內功)으로 쌓여갈 게 아닌가 싶어 묵묵히 응원의 박수만 보낼 따름입니다. 그러고 보면 ’냄비 근성‘이란 말이 그리 분개할 대상만은 아니었던 듯하고 말입니다.
관련 기사 : 말차·한정판 등 떴다하면 ‘화력쇼’···스낵의 생애는 ‘한입’으로 결정된다 / 경향신문 (2025.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