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다소 뜸해진 듯도 합니다만, 한때 일선 학교에는 ‘새터민 초빙 강연’이란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런 종류의 활동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만, 유독 그 무렵에 관련 협조공문이 늘어났던 건 아마도 시대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었을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미 ‘탈북민’이란 용어가 사실 앞서 사용되고 있긴 했지만, 그 말속에 내포(內包)된 ‘탈출(脫出)’, ‘북한’ 등과 같은 다소 억세고 부정적인 어감(語感)이 부담스러웠던 탓인지, 당시 정부가 여론조사를 거쳐 내놓았던 새 이름이 ‘새터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찌 되었든 TV 속에서나 그런 분들을 대했던 게 전부였던 이들에겐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이거니와, 가슴 한편으로는 묘한 긴장감이 오도카니 도사리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맞이한 강사님은 오히려 더 활기차고 유연한 모습이었으니, 무슨 대단한 이벤트라도 벌어질 것처럼 기대했던 이들에겐 차마 드러내지 못할 부끄러움을 숨기는 게 더 급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새터민’이란 말은 자칫 경제적 어려움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온 이들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으냐는 볼멘소리를 들으며, 다시 원래의 용어로 되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평생 국어 선생의 역할(役割)을 감당하며 살아오다 보니, 교과서 관련 단원마다 남북한 언어의 동질성(同質性)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되뇌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언어란 사회성과 함께 역사성을 가진 존재이니, 세월이 흐를수록 남북으로 갈라진 두 집단의 간극(間隙)은 더욱더 멀어져 언어 역시 이질성이 심화할 것이라는 그럴듯한 설명까지 덧붙여가면서 말이지요. 그게 마땅한 대안(對案)도 없이 그저 기계처럼 반복되는 공허한 메아리라는 사실은 에둘러 숨긴 게 아닌가 싶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긴 합니다만.
‘英 옥스퍼드대가 분석한 북한말 특징...’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는 연구 관련 기사가 눈길을 잡아끕니다. 특히나 북한말에는 일상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말이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니, 그저 가슴만 먹먹해질 따름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마음도 그저 흐뭇하게 녹아내릴 수 있는 게 우리네 인간사인 걸, 왜 그곳에서는 그리도 서로의 마음을 옭아매고 암울하게만 만드는 것인지 그저 또다시 소리 없는 아우성만 되뇌게 됩니다.
관련 기사 : "北선 '사랑한다' '행복하다'는 말 안 쓴다"... 英 옥스퍼드대가 분석한 북한말 특징 / 조선일보 (2025.12.01.)
https://www.chosun.com/politics/north_korea/2025/12/01/QJ5GA26USNAVNOALIHVHH3PL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