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그런 수업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초등학교 시절 콩나물시루같이 빽빽이 들어앉아 있던 아이들에게 소문(所聞)의 엄중(嚴重)함을 일깨워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맨 앞자리 아이에게 종이에 쓴 간단한 이야기 하나를 보여주고서는 차례대로 뒷사람에게 귓속말로 전달하게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고 나서 마지막 아이가 나와서 자기가 들은 이야길 옮길 참이면 아이들은 모두 배꼽을 쥐고 웃기 바빴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가 한 이야기는 처음 앞자리 아이에게 보여주었던 내용과는 다른, 엉뚱한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기 일쑤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중간에 잘못 듣고 전달하는 통에 달라진 내용도 있었겠지만, 아이마다 가진 생각의 기준이 다르니, 조금씩 첨삭(添削)이 이루어지며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겠지요. 그리고 선생님은 그게 말과 글의 차이라며, 말은 그때그때 쉽게 옮길 수는 있지만, 자칫 원래의 사실이나 생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달될 수도 있으니 남의 말을 옮길 때에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도 하셨던 듯합니다.
오래전 교단에 발을 들여놓던 시절, 학교 도서관 자리를 옮기느라 많은 양의 책을 폐기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새파랗게 젊은 신입 교사가 눈치도 없이 달려가 주섬주섬 책을 주워 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사실 세 들어 살던 비좁은 집에 딱히 들여놓을 공간도 없었으면서도 그리 유난을 떤 걸 보면 책 욕심이 많았던 건 분명합니다. 아직도 창고 구석 공간 어디쯤에는 그렇듯 모아놓고서 오랫동안 세상 빛 구경을 시키지 않은 책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 무심한 주인의 횡포를 탓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싶어 목덜미가 뜨끈해지긴 합니다만,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학창 시절의 그렇듯 비슷한 주제의 수업을 거치는 동안, 조금씩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던 막연한 가치가 말보다는 글을 좀 더 신뢰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책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게 아니었느냐며 궁색한 이유까지 늘어놓으면서 말입니다.
‘최장수 교양지 월간 ‘샘터’ 무기한 휴간…‘
수업을 마치고 잠시 교무실 자리에 지친 몸을 기대노라면, 바라만 보아도 그저 흐뭇한 웃음을 떠올리게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포켓북’이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기도 했으니, 종종 미리 도착해 기다릴 참이면 녀석을 벗 삼아 꺼내 들고서 그 무료함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주위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의 삶 속에 담긴 잔잔한 추억들이 바빠져 있던 호흡을 지그시 다독여 가라앉히곤 했지요. 그런데 이것저것 신경 쓸게 한둘이냐며, 언젠가부터 희미한 기억 속으로 밀쳐 놓았던 그 친구가 무기한 휴간(休刊)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그동안 무심했던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그게 다 디지털 문명에 몸을 맡겨 휘둘린 탓이라며 변명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그 무심함을 변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말이지요.
관련 기사 : 최장수 교양지 월간 ‘샘터’ 무기한 휴간…"2026년 1월호가 끝“ (20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