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누군지 알아?’

by 이경오

꽤 인기를 끌었던 어느 누아르(noir) 영화 속의 한 장면, 교단 앞에 몇몇 학생을 세워 놓고서 선생님이 차례로 묻습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아마도 조금만 비딱하게 쳐다본다면, 아버지가 뭘 하시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부터 앞설 것 같기도 합니다. ‘왜,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라도 되면 뭐라도 바라는 게 있으신가?’ 우리네 인생사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려 들다 보니 오해가 생기곤 합니다. 맥락(脈絡), 즉, 전체적인 흐름이 중요하다고 하는 건 그래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 장면의 앞뒤 흐름을 살펴 맥락을 짚어보자면 시험성적이 시원찮은 학생들에게 ‘아버지는 네 학비를 대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일하시는데 자식인 너는 이렇게밖에 공부를 안 하느냐’, 뭐 이런 선생님의 근심 어린 충고가 들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예전 상황이었기에 가능할 수도 있었던 일이겠습니다만,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까지 휘두르는 선생님의 모습은 비슷한 시절 비슷한 모습으로 교단에 섰던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의 죄의식까지 느끼게 한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점이긴 합니다만.


어찌 되었든 아버지(부모)가 가진 부와 권위가 자식들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일종의 기득권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니, 요즘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노라면 아직도 여전히 그러한 그릇된 의식 속에 살아가는 안타까운 이들이나 조직이 우리 주위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듭니다만. 그래도 요즘이야 개인 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본인 입으로 직접 이야기하기 전에는 아예 사적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만, 어디 예전에야 그러했답니까. 사실 교단에 선 사람들조차도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아이 아버지의 직업을 보면서 소위 ‘사’자라도 달릴 참이면 편견의 색안경을 꺼내 들고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KTX 햄버거 진상녀’라는 제목의 기사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아빠가 누군 줄 아느냐’고 뜬금없이 내뱉던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차렸던지 공개 사과를 했다고는 합니다만, 사회적 공분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는 모양새입니다. 이젠 자신의 아버지(부모)가 어떠한 지위와 부를 가진 사람이든 그것과는 상관 없이 소위 공정한 세상의 틀을 만들어가자는 시대의 목소리를 무심히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유념하여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관련 기사 : "우리 아빠 누군지 알아?"…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말 / 머니투데이 (2021.03.04.) https://www.mt.co.kr/society/2021/03/04/202103031545007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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