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추억 글 마당 - 2022. 01. 14.(금)에 쓴 글입니다.>
폐지를 모으러 다니시는 분들이야 어느 동네에서나 쉽게 눈에 띕니다만, 특히나 연세 많으신 노인분들이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다니시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내리누르곤 합니다.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려고 아침마다 학교 앞 건널목에 서 있다 보니 이런저런 모습의 행인들과 조우(遭遇)하게 됩니다만,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손수레를 끌고 앞을 지나가시는 할머니 한 분은 그래서 더 마음을 짠하게 만들곤 합니다. 얼른 눈으로 봐서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학교 앞 도로가 다소 오르막 경사가 있는지라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노인 혼자서 끌고 가시기에는 힘에 부치지 않을까 싶어 얼른 달려가 끌어드리곤 하다 보니 어느새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지요.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이 보이는 친절에 의아해하셨던지 다소 경계의 눈빛을 보이시던 할머니도 언제부터인가 곁으로 쫓아가면 당연히 그러했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수레의 손잡이를 내어주시니 모자란 사람에게는 그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만.
방학에 들어가던 날 그 할머니께 당분간 뵙지 못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희미한 웃음을 흘리시던 그 모습이 떠올라 개학날이 얼른 다가와야 할 터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 건널목에서 아이들의 아침 등굣길을 지키시는 학교 보안관 어르신께서 이른 아침 대접해 드린 쓴 커피 한 잔의 대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지 그것도 일종의 보시(報施)라며 이 사람을 부추겨 주십니다. 참으로 민망한 말씀이라 손사래를 치면서도 비록 가톨릭 신자이긴 하지만, 불가(佛家)의 보시를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이라 여기는 사람으로서 그리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다 싶어 흐뭇한 마음에 젖어 드는 못난 행세도 하게 됩니다.
‘보시의 으뜸 무외시(無畏施)’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시의 의미를 좀 더 알아보고자 이리저리 살피다 ‘보시의 으뜸 무외시(無畏施)’라는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서는 목덜미가 뜨끈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재물을 나누는 재보시(財布施), 지혜를 나누는 법보시(法布施), 두려움(畏)을 주지 않는 무외시(無畏施)가 있으니 이 가운데 으뜸은 ‘무외시’라는 것이지요. 묵묵히 드러나지 않게 남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전하는 무외시는 흡사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과 닮았다 싶은 중에 그 별것 아닌 자그마한 일로 혼자서 거들먹거렸던 이의 앞선 그 못난 모습이 떠올라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나 싶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찰을 찾을 때마다 보았던 부처님의 그 온화한 미소에도 무외시가 들어있다니, 다음 기회에 또 사찰을 방문할 참이면 좀 더 지그시 부처님과 눈빛을 맞추며 그 속에 담아두신 무외시의 마음을 본받으려 노력할 일이다 싶습니다.
관련 기사 : 보시의 으뜸 무외시(無畏施) / 한국일보(20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