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시고, 쏘세요!’

by 이경오

“준비하시고 쏘세요!”


진행자의 힘찬 구령에 맞춰 시위를 떠난 화살이 허공을 가를 참이면 지켜보는 이의 마음도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습니다. 주말 저녁 시간만 되면 부친은 안방 TV 앞에 자리를 잡으시고는, 손에 움켜쥔 복권 몇 장과 함께 화면 속으로 조용히 빠져들어 가시곤 하셨습니다. 옆에 쪼그리고 앉았던 꼬맹이는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신이 나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TV 속 과녁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추첨 등위가 하나씩 높아질수록 방안을 휘감아 돌던 부친의 안광(眼光)은 열기를 뿜어냈고, 그저 침 넘어가는 소리만 적막한 공기의 틈새를 메울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그리 긴 시간도 필요 없이 부친은 다시 조용히 자리를 비우셨고, 순식간에 신바람이 가라앉아버린 꼬맹이는 이내 다른 만화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돌리느라 눈만 반들거릴 뿐이었습니다.


한 주가 지날 때마다 수억 원을 부도냈노라 호기롭게 큰소리치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그다지 모자라 보이지 않는 분인데 그리도 복권에 매달리시는가 싶어 의아한 눈길을 조용히 삭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지인들과 모임이라도 가질라치면, 농담 반 진담 반 섞어가며 만약 당첨되면 자신의 몫을 꼭 나눠줘야 한다며 복권을 사 와서 자리에 앉은 이들 손에 하나씩 쥐여 주곤 했으니 말입니다. 아마 이 사람 역시 그런 상황에 조금씩 물이 들어갔던지, 종종 수업 시간에 문제 풀이라도 할 참이면 연속해 여러 번 벼락 맞을 희박한 확률에도 복권을 사는데, 그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정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걸 귀찮아하면 되겠냐고 아이들에게 군소리를 늘어놓곤 했으니, 이제 와 생각해도 도무지 선생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싶습니다.


오래전 집식구와 함께 운동을 한답시고 저녁 무렵이면 아들놈이 다니던 고등학교 운동장 트랙을 돌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도대체 학교에 무슨 돈이 있기에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었더니 복권 기금을 활용해 만든 시설이라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흐뭇해했던 기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도 합니다만, 미루어 생각해 보면 종종 지인들과 복권을 나누어 쥐곤 했던 것도 그리 얼버무리면 되나 싶습니다.


‘로또 당첨금 눈높이 1년 새 껑충?…"29억→52억 원은 돼야"’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는 수도권 집값 상승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는 합니다만, 로또 당첨금의 눈높이 역시 껑충 뛰어올랐다는 온라인 조사 결과가 눈길을 잡아끕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사행심을 조장하는 제도가 아니더냐고 타박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리라도 희망의 끈을 감아쥐고서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고단함을 다독거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그렇듯 마련된 재원(財源)이 사회 그늘진 곳을 밝히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 역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아니더냐고 허튼 개똥철학도 슬그머니 얹어 봅니다.




관련 기사 : 로또 당첨금 눈높이 1년새 껑충?…"29억→52억원은 돼야" / 연합뉴스(2026.01.22.)

https://www.yna.co.kr/view/AKR20260121143600002?section=economy/all&site=major_news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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