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졸업식…?’

by 이경오

이젠 교육 현장을 떠나 먼발치에서 학교 소식을 전해 듣는 처지가 되었습니다만, 아이들과 몸으로 부대끼던 그 시절 기억들이 드문드문 떠오를 참이면 조심스레 머릿속에서 하나씩 꺼내 들고서는 추억에 잠기곤 합니다. 며칠 전에도 차를 몰고 인근 고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교문 앞에 승용차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을 보고서 졸업식임을 알아차린 적이 있었습니다만, 아마도 그래서인지 오늘 역시도 졸업식 날 겪었던 일화(逸話) 하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드는 통에 이야기 마당을 펼쳐 봅니다.


부장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당시 교장 선생님의 부탁으로 졸업식의 의미를 드높일 수 있는 이벤트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졸업생 수에 맞추어 풍선을 준비해서 식전에 미리 하나씩 나누어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고서는 졸업식 마지막 순서에서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풍선 속에 마음껏 불어 넣어 공중으로 힘껏 날려보자고 권하는 통에 그날 식이 끝난 후 선생님들은 이리저리 흩어진 풍선을 줍느라 진땀을 흘려야만 했지요.


몇 해 전에는 졸업식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한 선생님이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 그날 식에 참석하셨던 한 학생의 할머니께서 건네신 말씀이라며 전해 온 일도 있었습니다. 사연인즉슨, 몇몇 아이들만 수시로 단상에 올라 상장과 장학금을 받는 모습에 심기가 불편하셨다는 것이지요. 하기야 귀하디귀한 손주의 졸업 모습을 보러 왔는데 다른 아이들이 수시로 단상에 들락거리며 박수받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싶었습니다. 아마도 그날 이후의 졸업식에서는 시상식은 최대한 간소화하고, 모든 학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었던 기억도 함께 떠오릅니다.


‘"왜 우리 아이가 남 들러리 서냐"…상장 시상식 사라진 졸업식’


그러고 보니 학교마다 졸업식을 치르느라 바쁜 시기가 되었던 모양입니다만, 주말 기사에서 발견한 졸업식 관련 소식 하나가 영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졸업식에서 시상식을 아예 없앤 학교들이 등장한 이유가 왜 우리 아이가 남의 들러리를 서야 하느냐는 학부모들의 볼멘 민원에도 영향받은 듯하다니 말이지요. 물론 모두가 함께 그간의 노고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인 만큼 행사의 의미를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야 마땅히 박수를 보내야 할 일이지만, 열심히 노력해 온 아이들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나 역시 앞으로 더 열심히 정진해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 역시 못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으니 말입니다.




관련 기사 : "왜 우리 아이가 남 들러리 서냐"…상장 시상식 사라진 졸업식 / 중앙일보(2026.02.0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3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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