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허허, 겨우 만 냥으로 나라의 경제를 흔들어 놓았으니, 이 나라 형편이 어떤지 알 만하구나.”
허생은 이렇게 탄식하고는 또 칼, 호미, 실이며 베, 솜 따위를 모조리 사들여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것을 팔아 말총이란 말총은 모두 거두어들였다. 말총은 갓과 망건을 만드는 재료였다.
“몇 해 못 가서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게야.”
과연 얼마 가지 않아 나라의 갓값과 망건값이 열 배로 훌쩍 뛰었다. 그렇게 해서 엄청난 돈을 긁어모으게 되었다. (후략)』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의 「허생전」에 담긴 내용 일부를 옮겨 보았습니다. 물론 이 작품 속에는 허례허식과 허위의식에 빠진 그 시절 사대부(士大夫)들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諷刺)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만, 사실 그 못지않게 당시 조선의 경제 체제가 가진 허술함이나 취약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목소리 역시 곳곳에 잘 나타나 있다고도 하지요. 요즘으로 치자면 못된 경제사범(經濟事犯)들이나 시도할 독과점사업(獨寡占事業)을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은 채 마음대로 횡행하며, 앞세운 허생의 말마따나 단돈 만 냥으로 나라 경제가 뒤흔들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니, 아무리 작품 속 이야기라고 해도 그저 보기에 민망할 따름입니다.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 처음 이 작품을 대할 때만 하더라도 어린 마음 때문이었던지 돈 벌기가 그리 쉬울 수도 있겠다 싶어 혹한 마음이 들었던 부끄러운 기억도 떠오릅니다. 딴은 사회 교과서 속에서 보았던 수요‧공급 곡선이 그려내던 단순하고도 어설픈 경제 논리만 머릿속에 들었던지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적당한 물건을 사재기만 해두어도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뜬금없는 흑심(黑心)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던 듯하니 말입니다. 물론 그 모든 게 한낱 개인의 헛된 욕심이요, 사회 정의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거스르는 그릇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던 듯도 합니다만.
"밀가루 7개사, 5조 8,000억원 담합"
시장통을 지나노라면, 수제비니 국수니 하는 길거리 음식들이 자꾸만 입맛을 다시게 하곤 합니다. 아마도 혼⸳분식을 강조하던 궁핍한 시절을 지내온 탓에 몸속에는 아직도 그 시절 음식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남아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만 주말 기사에서 밀가루 담합과 관련한 기사를 접하고 말았으니, 그 덕에 애꿎은 「허생전」까지 소환하고 말았습니다. 상세한 속내야 심층 조사를 해보아야 할 터이나, 사리사욕을 위해 서민들의 먹거리에까지 못된 손길을 뻗치는 일은 부디 앞으로도 없어야 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관련 기사 : "밀가루 7개사, 5조8000억원 담합" / 조선일보(2026.02.21.)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6/02/21/B67SN3U33JDNDKCP4HTYUMY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