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명화…

by 이경오

‘주말의 명화…’


토요일만 되면 멀쩡했던 그 시절 까까머리 소년의 가슴은 왜 그리도 콩닥거렸던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즐거운 일이 있어서 그러한 것도 아니었는데, 몸 구석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그 기묘한 설렘은 왜 그리 또 간질간질하던지요. 반공일(半空日)이란 이름에 걸맞게 점심시간에 앞서 수업은 끝났고,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하굣길인데도 햇살은 유난히도 흐뭇하게 눈꺼풀을 간지럽히곤 했습니다. 다음날 등교에 대한 부담이 없는 탓이었겠지만, 평일에는 그렇게도 무겁게 짓누르던 눈꺼풀의 완력은 어둠이 짙어갈수록 오히려 점점 더 느슨해져만 갔고, 부친의 눈치를 살피며 그만 들어가서 자라며 보내는 어머니의 간절한 신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애꿎은 TV만 몸살을 앓게 했지요. 하기야 그렇게도 주말 저녁 TV 곁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늦은 밤이 되어야 시작하던 ‘주말의 명화’라는 프로그램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일요일 저녁에도 그와 비슷한 종류의 영화 프로그램이 있긴 했습니다만, 월요일 교문 앞에서 마주할지도 모를 선생님의 엄한 눈빛이 떠올라 어디 선뜻 다가갈 수나 있었겠습니까. 어쨌든 소위 ‘명화(名畫)’라 불리던 영화 한 편과 함께하는 주말 밤이면 까까머리 소년은 잠시나마 진득한 공부의 굴레에서 벗어나 제 딴에는 온갖 상상을 펼쳐가며 불면(不眠)의 열병 속에서 헤매곤 했습니다.


‘아카데미 주제가상…’


한 해 한 해 나이를 더하며 생긴 무디어져 가는 감성의 변화 탓이기도 할 터이지만, 이젠 주말이 되어도 도무지 예전과 같은 그런 저릿한 전율은 경험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아마도 종편 방송이 생겨난 뒤로는 채널만 돌리면 세계 각국의 영화를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니, 그 시절 같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과 신비감을 느끼기는 어려워진 탓이기도 할 터입니다. 그래도 근래 들어 심심찮게 들려오는 우리네 영화계의 쾌거는 무디어져 가는 초로의 감성을 자극하곤 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 영화들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출품해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에 흡사 제가 이루어낸 일인 양 한껏 들뜬 마음에 흥분했던 터입니다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주제가상까지 받았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지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케데헌' 수상 소감 '뚝' 자른 오스카…’


그런데 그 경사스러운 상황에서 ‘K-팝’에 대한 소회(所懷)를 밝히려는 순간 진행이 끊어져 여러 사람의 눈총을 샀다는 소식이 사족처럼 따라붙어 헛웃음을 짓게 합니다. 그게 고의든 진행상의 실수든 이미 우리네 문화의 위력이야 지구촌 만방에 떨쳐 보인 터에 그게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은 건 이 사람만의 모자란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더불어 애꿎은 김구 선생의 말씀을 모셔 와 함께 나누어 보기도 합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케데헌' 수상 소감 '뚝' 자른 오스카…"K팝 팬들 분노할 것" / 연합뉴스(2026.03.16.)

https://www.yna.co.kr/view/AKR20260316114200075?section=theme/empathic/index&site=empathetic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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