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추억 글 마당 – 2019. 3. 20. (수)에 쓴 글입니다.>
오랜만에 울산에 계시는 손위 동서 댁을 방문했더니, 처형이 낮에 동네 뒷산에 올라 캐 왔노라며 푸릇한 봄나물을 한 움큼 건네십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저녁 큰 일교차에도 아랑곳없이 어느새 봄은 상큼한 봄나물 향기를 뿜어내며 산야(山野) 곳곳을 파릇파릇하게 물들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에 와서야 그 고운 자태에 한 번 반하고, 겨우내 무디어진 입맛을 돋우는 그 미감(美感)에 또 한 번 취하곤 합니다만, 먹거리가 충분하지 않았던 그 옛날에야 어디 그러했을까 싶습니다. 동장군(冬將軍)의 서슬 퍼런 입김을 피해 가며 움츠린 배를 겨우 붙들어 견디던 중에, 이맘때 만나는 갖은 봄나물은 참으로 고맙고도 반가운 존재였을 테니 말이지요. 특히나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 그 모진 겨울을 꿋꿋이 이겨낸 냉이는 투박한 된장과 함께 어울려 고단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을 게 분명하다 싶습니다.
냉이를 가리켜 뿌리잎(根葉)이 방사상(放射狀)으로 땅 위에 퍼져 무더기로 난 게 장미꽃 모양과 같다고 해서 ‘로제트(rosette)’ 식물이라고 한답니다. 혹자는 땅바닥에 납작하게 사방으로 펼친 모습이 흡사 방석처럼 생겼다고 해서 ‘방석식물’로도 일컫는다고 하지요. 어쨌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엎드려 그 혹독한 시간을 참아내고 견디어내었으니, 비록 식물이지만 참으로 대견한 모습 앞에서 혹시라도 우쭐거리며 살아왔을지도 모를 우리네 삶의 여정을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됩니다.
‘추운 겨울 이겨낸 봄나물… 강인한 생명력에 '민초'로 비유되기도’
왕조(王朝) 시절, 백성들을 가리켜 '민초(民草)'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그 질긴 생명력이 잡초와도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하니, 썩 그리 기꺼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종 냉이와 같은 봄나물을 그 '민초(民草)'에 비유해 예술 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쓰곤 하니 아마도 그 질기고도 강한 생명력을 예찬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어 그나마 위안은 됩니다. 우리네 삶, 조금만 힘들어도 쉬 포기하고 멈추려 들지는 않았는지, 무심히 엮어 온 일상에 경종(警鐘)을 울리는 의미에서라도 내일 아침에는 냉잇국 한 사발 곁들여 얄팍해진 가슴을 뜨끈하게 적셔 보아야겠습니다.
더불어 문호(文豪) 롱펠로(H.W.Longfellow)가 남겼다는 말 한 구절을 옮기며, 봄날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해 보려 합니다.
“잠겨진 문을 한 번 두드려서 열리지 않는다고 돌아서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동안 큰 소리로 문을 두드려 보아라. 누군가 단잠에서 깨어나 문을 열어 줄 것이다.”
관련 기사 : [식물이야기] 추운 겨울 이겨낸 봄나물… 강인한 생명력에 '민초'로 비유되기도 / 조선일보(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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